내가 미국에 유학와서 가장 먼저 자리잡은 곳이 필라델피아였다. 1969년 펜실베니아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아내는 탬플대 골든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우리는 주일에 걸어서 10분쯤 되는 거리에 있는 미국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인은 모두 백인이고 유색 인종은 우리 부부뿐이었다. 몇주가 지난 후 우리 부부가 앉는 의자 옆에 아무도 앉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옆은 텅 비어있었다.
예배가 끝난 후 교회 입구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던 담임목사님이 우리 부부를 옆방으로 안내한 후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했다. 우리는 처음에는 목사님이 무엇을 사과하는지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우리 옆자리가 텅 비어있는데 대한 사과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몇달 후 우리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당시 이 지역의 유일한 한인교회인 필라한인교회(담임 오기항 목사)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우리는 미국 교회에서 이른바 사회학에서 말하는 법적으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체계적인 차별'(systematic discrimination)을 받은 것이다.
나는 공부를 마치고 1971년 메릴랜드주립대학에 취직이 되어 볼티모어로 이사를 왔다. 한 대학에 한국인 김광훈(미국명 Daniel Kim) 교수가 계셨다.
하루는 김 교수가 자신이 1955년 텍사스 달라스에 있는 텍사스주립대학 유학 초기에 겪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번은 버스를 앞문으로 타려고 하는데 운전기사가 뒷문으로 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백인은 앞문으로 타서 앞 좌석에 흑인은 뒷문으로 타서 뒷 좌석에 앉아야 한다고 했다는 것.
그래서 김 교수가 “나는 황인종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백인이 아닌 사람은 모두 뒷문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텍사스주를 비롯해서 11개 남부주에서 이러한 차별은 법적으로 인정을 하였으며 이를 법적 차별(legal discrimination)이라고 부른다. 이 차별 전통은 몇몇 주에서는 1968년까지 지속되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1809-1865)은 첫 임기 중인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선언은 의회가 2년 후인 1865년에 수정헌법 13조를 통과, 비준함으로써 법적인 효력을 발휘했다.
다시 말하면 흑인은 해방과 동시에 백인과 동등한 법적 대우를 보장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숱한 역경과 투쟁을 겪고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남북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난 후에도 남부 11개 주는 수정헌법을 인정하지 않고 각 주는 나름대로 흑인차별을 유지하는 ‘법적 차별법'을 ‘동등하지만 분리한다'(equal but separate)라는 원칙을 만들어 유지하고 있었다. 이를 이른바 ‘짐 크로 법'(Jim Crow Law)라고 부른다. 이 법에 따라 흑인은 백인과 동등하다고 하면서 여러 사회 현상에서 차별 분리해 왔다.
흑백 분리 공중화장실, 공원, 극장, 학교, 주차장, 식당, 엘레베이터, 기차, 버스등에서 흑백을 분리하는 것이다.
김광훈 교수가 버스에 받은 차별은 바로 ‘짐 크로법'에 의한 것이다. 1968년 ‘짐 크로법'이 미주 전역에서 폐지되면서 법적으로 전혀 제재를 받지 않는 ‘체계적인 차별'이 지금도 미국 여러 지역에서 성행하고 있다. 우리 부부가 받은 차별대우는 바로 여기에 속한다.
미국은 2월1일부터 3월1일까지 ‘흑인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로 정하고 흑인민권운동의 발자취를 역사적으로 다시 조명하는 계기를 가지는 반면 흑인 고유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전통 예술 등을 되새기며 증진시키는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2024년 ‘흑인역사의 달'의 주제는 ‘흑인 예술'(the arts)이다.
‘흑인역사의 달'의 전통은 흑인역사 학자인 카터 웃슨(Carter G. Woodson) 이 1926년 매년 2월을 “흑인역사의 주”로 정한 후 일부지역에서 지켜왔다.
2월로 정한 이유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생일이 2월 12일과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 폐지와 사회개혁을 주창했던 프래드릭 다글러스(1818-1895)의 생일이 2월14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38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1976년 ‘흑인역사의 달'을 연방기념의 달로 선포, 지금까지 매년 전국적으로 지켜오고 있다.
한인들을 포함해서 미국 소수민족들이 지금과 같은 민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어느 면에서 남북전쟁을 계기로한 숱한 반노예제도 및 노예해방운동에 가담했던 투사들, 특히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많은 민권운동가들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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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 전 전 볼티모어대교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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