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합보험·공제’ 가입하면 기소 면제하고, 형 감면
▶ 정부 “다른 나라 유례없는 법 추진, 진정성 알아달라”
▶ 환자단체는 “의사 특혜” 반대…의협도 ‘필수의료 패키지’ 무효화 요구
(서울=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행동을 이어가고 있는 2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인이 ‘선애치환(先愛治患)’이라고 적힌 붓글씨 작품 앞을 지나고 있다. 선애치환은 ‘먼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환자를 치료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24.2.25
정부가 집단행동을 하는 전공의들에게 사법처리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의료사고 처벌을 면제하는 법안 제정에 속도를 내겠다는 '당근책'을 내밀었다.
환자단체 등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의사들이 불안해하는 '의료사고 형사처벌'과 '고액 배상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인데, 집단행동의 몸집을 키우고 있는 의사들을 달래는 데 효과를 볼지 주목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7일(이하 한국시간)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오는 29일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해 조속히 입법될 수 있게 하겠다"며 "법 제정으로 책임·종합보험과 공제에 가입한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특례법 추진 계획은 지난 1일 발표한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도 들어 있던 내용이다.
이날 발표된 특례법 제정안에 따르면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보상한도가 정해진 보험)에 가입한 경우 미용·성형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 과정에서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했더라도 환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와 전공의에 대해서는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하는 데 드는 보험료를 지원할 예정이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과실로 환자 사망사고를 냈더라도, 의료진이 보상 한도가 정해지지 않은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했다면 형을 감면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도 담았다.
응급·중증질환·분만 등 필수의료 행위의 경우 환자에게 중상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이 법안을 통해 전공의들의 불안감이 큰 의료사고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며 '달래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특례법 공청회가 열리는 29일은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복귀 시한으로 제시한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정부는 집단사직을 하고 진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오는 29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면허정지 등 사법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한 상태다.
의료사고에 대한 특레법을 제정하라는 것은 의사들의 오랜 요구 사항이었다.
의사단체 등은 현장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의료사고의 법적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한 탓에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심해졌다며, 의도치 않은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전공의들의 경우 의료사고 형사처벌과 고액 배상 부담에 대해 압박이 큰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대동맥박리 증상을 보이는데도 단순한 급성 위염으로 판단해 퇴원시켰다가 뇌병변 장애를 앓게한 의사 A씨에게 업무상과실치상·의료법위반 혐의를 적용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는데, 이 A씨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1년차였다.
하지만 이 특례법은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환자단체 등 시민사회가 "의사들에 대한 특혜"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가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환자단체연합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공익네트워크는 정부의 '의료분쟁 제도 개선 협의체'에서 탈퇴할 정도로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 단체는 당시 성명에서 "의료사고 입증 책임을 의료인에게 전환하는 내용 등도 없이, 의사의 의료사고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특례법 제정을 정부가 추진하는 데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 역시 성명을 통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부담은 완화해야 한다"면서도 "특례법이 환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고의·부주의·부실 진료에 대한 면책특권 보장법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시민사회의 이런 반응을 알고 있지만,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서는 특례법 제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이날 정부는 특례법 앞에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를 달며 의료계를 향한 정부의 '이례적인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23일 한 방송에 출연해서도 "세계적으로 의료사고에 한해 특례법을 제정한 사례는 없다"며 "정부가 우리나라 의료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해 특례법을 제정하려고 하는 것의 진정성을 (의료계가)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담겼던 필수·지역 의료 '10조원+α' 투입 방침도 강조하면서 의료계 설득과 압박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지난 7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의료계에 대한) '10조원 플러스 알파(α)' 투자 계획을 최근 발표했는데, 파업을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지지하고 동의하겠나"고 말한 바 있다.
정부가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등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전공의 복귀의 '지렛대'로 활용할 계획이지만, 이런 전략이 의사들에게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의사단체들은 패키지 발표 직후에는 환영의 뜻을 표했다가 의대증원 발표 후에는 '반대'로 기조를 바꿨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25일 결의문에서 "증원과 함께 정부가 추진하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료 선택권을 침해하고 의사의 진료권을 옥죌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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