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정부 대응 중대본 체계 전환… ‘비대면진료 전면 확대’ 파격 조치
전공의 사직서 제출 80% 육박했지만, 일부 복귀도
▶ ▶ ‘중형병원’ 환자 몰리며 혼란… ‘전임의 이탈’ 조짐에 사태 확산 우려
▶ 의대생 집단휴학은 줄어, 346명 휴학 철회…전북대는 학사일정 늦춰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에 반대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계속되자 정부가 22일(이하 한국시간) 보건의료 위기로는 사상 처음으로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까지 끌어올렸다.
정부가 주동자에 대한 구속수사 원칙 등 '엄정 대응'을 강조하고 있지만,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의 수는 줄지 않고 전체의 3분의 2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상당수의 전공의가 떠난 의료 현장은 주요 대형병원들이 수술의 30~50%가량을 줄일 정도로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수술과 입원 취소, 진료 연기 등으로 인한 환자들의 불편과 불만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날부터 의원급 의료기관과 재진, 주말, 의료 취약지 등에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기간에 '전면' 허용하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 장기환 포석, 범정부 대응 '중대본'으로 전환…예비비 투입도 고려
정부는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보건의료 재난경보 단계를 기존 '경계'에서 최상위인 '심각'으로 끌어올리고,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이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했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아니라, 보건의료 위기 때문에 재난경보가 '심각'으로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수본이 복지부에 설치되는 반면, 중대본은 '범정부' 차원에서 설치된다. 정부가 그만큼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여러 부처가 힘을 모아 총력 대응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첫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국민들께서 고통을 겪으시는 상황을 의료계도 절대 원하시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계의 집단행동은 국민들의 기억에 상처를 남기고, 의료인으로서의 숭고한 사명을 망각하는 행동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중대본은 이날 설치 후 첫 조치로 의사 집단행동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비대면 진료는 그동안은 '의원급' 의료기관과 '재진' 환자를 중심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의료취약지나 휴일·야간에는 초진부터 허용됐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는 극히 일부만 가능했다.
이번 조치로 의료취약지가 아닌 곳이나, '초진'이라도 평일에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의원뿐 아니라 '병원급' 혹은 그 이상 규모의 종합병원에서도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진다.
정부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대응책으로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의료계가 반대하는 정책을 전면 시행해 의사들을 '압박'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일찌감치 사태의 장기화에 대비하는 한편, 집단행동을 하는 의료계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정부는 이와 함께 전공의 집단행동 장기화에 대응해 예비비를 투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정부는 예비비를 현장을 떠난 전공의를 대체할 인력의 인건비, 공공병원 응급실 개방 비용 등에 사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집단행동에 나서 환자들의 곁을 떠난 전공의들은 정부 집계에서는 줄지 않고 있지만, 전공의 일부가 복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대본에 따르면 전날 오후 10시 기준 주요 94개 병원에서 소속 전공의의 약 78.5%인 8천897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이 낸 사직서는 수리되지 않았다.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69.4%인 7천863명으로 확인됐다.
이는 기존에 복지부가 집계해오던 100곳의 병원 가운데 자료를 부실하게 제출한 6곳을 제외한 채 집계한 것이다.
이 때문에 9천275명(21일 오후 10시 기준)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8천24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복지부의 전날 집계보다 수치 자체는 줄었다.
집계 대상 병원 수가 줄어든 만큼 전공의 사직 자체는 오히려 소폭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복지부 설명이지만, 전공의 일부가 복귀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더 커지는 한자들 '한숨'…전공의·전임의 계약 끝나는 이달말 '고비'
대형 종합병원에서 전공의들이 대거 떠나면서 의료 공백은 더 악화하고 있다.
서울시내 주요 대학병원은 전공의의 빈 자리에 전임의와 교수를 배치해 입원환자 관리와 응급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신규 환자의 예약을 가급적 제한하고, 수술 30∼50%를 축소해 현재 인력으로 가동한 범위 내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일부 병원은 전공의 없는 응급실을 24시간 유지하고자 기존 3교대 근무를 교수와 전임의 2교대 근무로 바꿨다.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도 30∼40%가량, 세브란스병원은 50%가량 수술을 줄였다. 삼성서울병원 역시 수술의 45∼50%가량을 연기하며 대응하고 있다.
일부 대형병원은 소수의 환자만 입원해 있을 정도로 썰렁한 모습이지만, 수련병원이 아닌 더 작은 규모의 2차병원에는 환자들이 몰려들며 또 다른 의료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부산의 한 2차병원 관계자는 "인근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에 대한 문의가 하루 여러 건 들어오고 있다"며 "심부전 환자에 대한 혈액 투석 등 정기적 치료나 예후를 지켜보는 정도의 증세를 보일 경우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의 한 중형병원은 하루 평균 200여명이던 내원객이 두배가량 늘기도 했다.
전공의들의 자리는 전임의(펠로)나 교수 등 전문의가 대신하고 있지만, 피로가 누적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전임의, 전문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의료 현장에는 이달 말 계약이 끝나는 전임의들이 재계약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조만간 전임의 신분이 되는 '레지던트 4년차' 사이에서는 전임의 계약을 보이콧하려는 집단적인 움직임도 감지된다.
◇ 의대생 집단휴학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1만명 넘게 휴학 신청
의대생과 의학전문대학원생들의 집단휴학은 확산세는 일단 멈춘 모양이다. 300명 이상이 휴학계를 철회했지만, 여전히 1만명 넘게 휴학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 기준으로 전국 12개 의대에서 49명이 휴학을 신청했다.
19일 1천133명, 20일 7천620명, 21일 3천25명에 이어 총 1만1천827명이 휴학을 신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1개교에서 346명이 전날 휴학을 철회해 총 1만1천481명의 휴학계만 남았다.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의과대학 재학생 1만8천793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61.1%가 휴학을 신청한 셈이다.
11개교에서는 전날 수업거부가 확인됐다. 해당 학교는 학생 면담, 학생 설명 등을 통해 정상적인 학사 운영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교육부는 22일 40개 대학에 공문을 보내 3월 4일까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 규모를 신청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집단휴학 때문에 대학 측이 학사 일정을 늦춘 사례도 나왔다. 전북대학교 의대는 오는 26일부터 의과대 3, 4학년의 수업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학생 대부분이 휴학계를 제출하면서 개강을 1, 2학년과 같은 다음 달 4일에 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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