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부는 메타버스 열풍
▶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던 가상현실
▶디지털시대 신대륙 ‘메타버스’로
▶아바타 통한 또 다른 세계 경험
▶애플 비전 등 출시로 재부상하나
1492년 10월 12일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있는 산살바도르섬에 도착해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다. 532년 전 일이다. 이는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계기가 된다. 미지의 신대륙이 나타나면서 아메리카와 인도가 다른 지역이라는 것을 유럽인들도 알게 됐다. 이 신대륙은 인류의 무모하게 보이는 도전 끝에 발견됐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온라인을 뛰어넘어 현실을 그 너머와 연결시켜주는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현실을 초월한 세계에서 가상의 신대륙을 정복한다는 또 다른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 셈이다.
그 여정의 핵심 길잡이가 바로 가상과 초월의 합성어인 메타버스(Metaverse)다. 본격적인 등장은 2021년으로, 정보기술(IT) 업계의 ‘산타마리아호(콜럼버스가 대서양 횡단 때 사용한 기함)’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여러 전문가가 얘기하는 메타버스 개념의 공약수를 뽑아보면 ‘체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나와 연결된 3차원(3D) 가상세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메타버스라는 가상세계 안에서 경제, 사회, 문화 활동이 영위될 수 있다는 뜻이다. 각국 정부는 그간 메타버스를 미래 신산업으로 육성한다며 많은 돈을 투자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실감하지 못하면서 그토록 빠르게 번진 유행은 같은 속도로 식은 것처럼 보인다. 획기적 등장 이후 2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돌아보니 메타버스가 인공지능(AI)에 밀려 이미 관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주장마저 늘었다.
그러나 메타버스와 AI의 공존에 대한 기대감도 작지 않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소비자가전쇼(CES)’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대상은 국내 기업 비햅틱스와 일본 기업 시프트올 등이 참여한 ‘메타버스 부스’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창업기업 ‘비햅틱스’는 지난해보다 더 발전된 촉각 보조장치 ‘택트글러브’를 공개했고, 파나소닉이 투자한 확장현실(XR) 기업 ‘시프트올’은 전용 마이크, 가상현실(VR) 헤드셋과 헤드폰을 결합한 올인원 메타버스 솔루션을 선보였다.
최근에 떠오른 것처럼 비치지만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30여 년 전에 처음 등장했다. 1992년 공상과학 작가 닐 스티븐슨이 그의 소설 ‘스노크래시(Snow Crash)’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소설은 디지털 분신인 아바타가 가상공간에서 활약한다는 내용이다. 소설에는 지구와 전혀 다른 세계가 등장한다. 고글과 이어폰을 통해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장소가 메타버스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야 메타버스로 들어갈 수 있다.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현실에선 마피아에 빚진 돈을 갚기 위해 피자를 배달한다. 메타버스 세계에서는 뛰어난 전사로 신종마약 스노크래시의 배후를 찾아 나선다.
가상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프랑스에 위치한 라스코 동굴 벽화는 약 1만5,000년 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최고(最古)의 메타버스로 불린다. 벽화를 그린 사람들은 사냥으로 풍요로운 먹거리를 얻기 바라는 소망을 그림에 담았다. 프랑스 당국은 세계문화유산인 라스코 동굴벽화를 메타버스로 체험할 수 있는 전시회까지 마련했다.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은 실제 동굴을 1대 1 비율로 구현한 VR로 사슴, 말, 황소, 들소 같은 동물이 그려진 600개가 넘는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컴퓨터가 들어있는 배낭과 VR 헤드셋을 착용해 45분 동안 약 235m의 동굴을 탐험하게 된다.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당 유리창에 성경 속 이야기를 담은 매개였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성경과 종교 세계로 들어가는 창이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성당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마치 환상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타고 들어오는 오색 창연한 빛이 만들어내는 성당이란 공간 자체가 현실 세계와 천국이 만나는 일종의 ‘중간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메타버스는 공간을 지닌다. 선형 원근법이 개발돼 평면에 그린 그림에서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이 시대 성당의 여러 벽면은 공간을 가진 성경의 세계였다.
이후 1881년 네덜란드의 소도시 스헤브닝겐에서 파노라마 전망대가 만들어졌다. 이 전망대의 꼭대기에 오르면 유리창 대신 원형의 그림이 펼쳐져 있다. 관람객들은 이를 감상하며 전망대에서 해변을 바라보듯 가상의 그림을 감상했다. 해변으로 여행가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가상으로 만들어낸 그림이다. 이는 우리나라 각 시도의 관광산업에도 혜안을 제시한다. MZ세대 관광 소비층을 겨냥한 메타버스 관광 콘텐츠와 플랫폼을 구축하는 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다양한 관광산업 활성화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할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해 미래 관광산업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20세기의 TV, 영화는 가상세계의 진전에 큰 획을 제공했다. 1962년에는 센소라마라는 최초의 VR기기가 발명돼 게임이 진일보했다. 사용자는 게임기 박스 안에서 화면을 보며 자전거 경주를 하고 소리와 바람을 즐겼다. 1999년 싸이월드가 등장하는데, 나만의 공간을 꾸미고 1촌 맺기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거나 기존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2003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때가 최초로 세계를 흥분시킨 메타버스 열풍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사람들은 가상세계에서 즐기는 제2의 인생에 매료됐다. 미국 스타트업 린든 랩이 만든 3D 가상세계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가 등장한 해다. 세컨드라이프에서 사람들은 아바타로 광활한 공간을 누비며 ‘린든달러’라는 가상화폐로 아이템과 부동산을 거래했다. IBM, BMW, 도요타자동차, 로이터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입성하며 기대를 모았다. 실제 생활과 흡사한 가상현실이 구현된 덕분이다. 심지어 세컨드라이프에서는 카지노 운영을 통해 불법 온라인 도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세컨드라이프의 상업화에 반대하는 회원들은 해방군을 조직, 가상세계의 의류매장 속 쇼핑족에 가상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사용자들이 떠나고 기업들도 철수하면서 세컨드라이프는 잊힌 플랫폼으로 전락했다. 2006~2007년 세컨드라이프 가입자는 400만~500만 명 수준이었는데, 사양이 높은 컴퓨터에서만 구동되는 데다 아바타 조작이 상당히 어려워 이탈이 가속화했다. 당시는 3G·LTE 네트워크 환경으로 방대한 3D 그래픽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이 빈약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굳이 사이버에서 아바타를 통해 다른 사람과 대화할 필요가 없어진 것도 이유가 됐다.
올해 기술 소비 시장은 새로운 닌텐도 스위치와 애플의 비전 프로 출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애플의 헤드셋 비전 프로는 아이폰 이후 새로운 유형의 착용 가능한 기기로 주목받고 있다. 비전 프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면 메타버스 열풍이 다시 불붙을 수도 있다. 비햅틱스와 시프트올이 각광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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