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혀져 가던 내 문화, 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길
▶ 맛집 투어와 호캉스, 목적 없는 유랑체험
동행의 조건
국민성을 대변하는 농담이 있다. 일본 관광객들은 모두 깃발 든 가이드 뒤를 충실히 따른다. 가이드가 앞장서서 걷다가 뒤가 너무 조용해서 걱정되어 뒤돌아보면 모두 한 줄로 서있다. 반면, 중국인들은 가이드 뒤를 왁자지껄 따라와서 안심하고 걷다 돌아보면 달랑 서너 명뿐 나머지는 온데 간데없고, 한국인들은 조용해서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다고 한다. 모두 쇼핑하러 어딘가로 가버렸단다.
성품을 알려주는 예가 또 있다. 관광버스를 따고 가다가, 가이드가 “오른쪽 보세요” 하면, 한국인들은 창문에 걸려있는 커튼으로 유리창을 바삐 닦고, 중국인들은 그래도 대국인이라서 자기 소매로 닦고 일본인들은 조용히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닦는다고 한다.
이번 고국 맛여행은 탑여행사에서 신 사장님이 직접 인솔하는 고급호텔, 고급 리무진, 유명 맛집 투어여서 다른 여행상품보다 고가였다. 단체관광의 시작은 소공동 롯데호텔에서의 하룻밤 숙박으로 시작됐다. 변함없는 호텔 모습과 폭포수 떨어지는 로비에서의 시원한 맥주 한잔이 여독을 달래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가방이 많으신 분들은 어느 호텔이나 60일간 무상으로 보관해준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관광 전 지인 집에 짐을 보관하고 떠났다. 이번 여행에 동행하신 분들의 평균 연령은 60~70대였다. 미국에서 오래 거주했던 분들이기에 동행의 조건은 모두 충족시키리라 믿었고 여유와 에티켓을 기대했지만 실망도 있었다.
카카오톡 공해
그중 하나가 버스 안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카톡 소리였다. 피곤한 여독에 버스에서 잠시 쉬려 하면 카톡이 수시로 터진다. 너무 심해서 옆에 분에게 물었다. “진동으로 놓으시면 안 되나요?” 그분 대답이 놀라웠다 ”미국에서도 연락이 오니까 들려야 받죠”.
자기 중심의 사고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통화 또한 큰소리로 떠든다. 큰 소리로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문자 메세지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내용들이건만 좁은 공간에서 옆 사람 들리게 통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가. 그런 분이 호텔에서 중년의 한국 여인이 새치기했다며 한국의 공중도덕을 질타하기도 했다. 또 다른 회장님도 큰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유명 정치가를 만나고, 누군가 자신을 마중 나온다는 내용을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보면 옆에 있는 동행분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 같았다.
반면교사
버스여행을 하면서 가장 민감한 것이 좌석배치다. 앞좌석에 앉고 싶은 심정은 다 같다. 전망이 좋은 방향, 햇살 안 드는 쪽 등등. 그러나 모두에게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여행은 없고 동행의 의미는 나를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첫날 매일 좌석을 한 줄 씩 뒤로 이동하기로 결정지어졌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침 자리 변동은 없었다. 항상 목소리 크고 영향력(?)있는 손님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의 의사에 의해 자리가 굳어졌다.
매일 버스 맨 끝좌석에 타시던 할머니가 있었다. 한 손을 지팡이에 의지하시면서 다리를 저시는 할머니는 항상 버스는 마지막에 타시고 내릴 때 마지막에 내리셨다. 당연히 대열에서 처지시기도 했고 그만큼 본인도 볼거리들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그분 탓에 버스가 늦어지거나 여행 스케줄에 지장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똑똑한 분들이 길을 잃거나 건장한 사람들이 늦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감은 늘 자신을 배신한다는 것을 아직 고찰하지 못한 탓이다.
항상 버스 맨 끝좌석에 타시던 할머니
한국에 이렇게 산이 많았는지 이번 여행에서 절실하게 경험했다. 언덕과 산과 계단으로 점철된 나라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여행이 고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분 세대들이 모두 그렇듯 민폐를 극도로 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굳은 할머니 얼굴에 그대로 묻어났고, 언제나 열심히 대열을 따랐다. 몇 분이 버스 앞자리를 양보했지만 나이와 핸디캡을 훈장처럼 여기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과 달리 요구도 안 했고 그렇다고 누군가의 제의에 언뜻 수락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으시고 묵묵히 본인의 뒷자리로 가셨다.
우리는 순간순간을 살아가면서 나를 우선하면서 살아왔다. 본능에 집착하며 살다 보면 개인의 발전과 성공은 있을지 몰라도 공동체는 상처받고 무너진다. 배려하는 마음과 상대에 대한 여유는 하루아침에 성숙되는 것 아니다.
그런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부부관계다. 배려와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크게 불협화음이 없다. 물론 그러한 것도 배움에서 온다. 형제간 먹을 것을 놓고 싸우며 자랐던 세대에게 그러한 가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40년간 지인으로 지내던 분과 나는 식사시간이면 늘 말다툼을 하고는 했다. 나는 빨리 먹는 편이라 식사시간이 짧은 반면 그분은 1시간이상 걸렸다. 명절식사 때 나는 바쁘게 먹었고 그는 한참 뜸들이다 “어? 회 다 어디 갔어?” 하며 딴청을 떨며 “또 제프구나” 하며 날 무안주기 일쑤였다. 얼마 전 그가 임플란트를 5개 했다며 힘들어했다. 듣고 보니 젊은 시절부터 치아가 안 좋아 무척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사람 입안 사정 말 안 하면 누가 알겠는가? 순간 오랜 세월에 걸친 내 자신의 배려 없는 행동을 돌아보며 큰 후회를 했다. 좀 천천히, 좀더 여유 있게 , 좀더 배려 깊은 모습을 보일 걸 하는 후회의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왔었다.
담양 죽녹원에서의 즐거운 족림욕
울창하고 푸르른 대나무숲은 미국에서 오래 살아온 우리에게 한국의 또다른 정취를 안겨준다. 특히 한국은 대나무 와 소나무숲이 우리들의 정기와 의로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데 담양 죽녹원에서의 하루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벌거숭이 야산에 아무 볼거리 없던 곳을 20여년전 군수가 대나무 숲 조성을 밀어붙여 오늘날 큰 관광명지가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각 지방 지도자들의 안목들이 눈부시게 현실화된 모습을 돌아 보면서 또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죽녹원은 한바퀴 도는데 3km 정도의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다들 둘러보고 내려와서 인원 점검을 하는데 지팡이 할머니가 안 보였다. 한참 찾고 있는데 버스 앞에 계셨다 “안 올라가셨어요?” 하고 묻자 “다 둘러봤어, 사진만 안 찍으면 더 빨라” 하셨다. 진리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반찬을 내 접시에 덜어주시던 할머니 손
삼시 세끼를 같이 하는 여행에서도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기회는 몇 번 안 된다. 그 할머니와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할 기회가 왔다. 전라도에서의 식사는 상이 부러질 정도의 반찬이 계속 나왔다. 그렇게 맛난 진수성찬 앞에서 할머니는 계속 내 접시에 반찬들을 덜어 주셨다. “젊은 사람이 더 먹어야 해” 하시면서.
그러시면서도 변치 않는 그 무뚝뚝한 표정, 어디선가 많이 본 표정이었다(오래전 돌아가신 내 할머니 그 모습 그대로다). 한국사람들만 쓰는 표현이 겉정과 든정 그리고 속정이다. 사람 속정을 어찌 알려만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꾸 건네는 반찬과 손길.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는 손이 말해준다. 사람들은 손을 보며 그 사람을 평한다. 그러나 손길은 내가 정한다. 이번 고국여행의 진수는 한국의 발전상 그리고 한식의 아름다움과 고향의 정취도 있었지만 그중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잊혀져 가던 내 문화 그리고 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제프의 한국기행은 계속된다.
문의 Jahn20@yah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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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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