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강 산업이 가진 시대적 소명
▶ 기원전 1500년경 철 야금 시작, 고대문명 원동력·힘의 원천으로…전쟁·식민지배·수탈 원인 제공
철광석 녹여 철강 만드는 과정서 다량 탄소 발생이 환경파괴 주범…규제 높아지며 기업 비용도 커져
포스코, 수소 환원 제철기술 적용…이차전지·수소 등 친환경 사업 투자, 큰 비용에도 체질 전환 불가피
윤석열 정부는 5일 탄소중립 기술개발의 성과 확산을 위해 ‘탄소중립 그랜드컨소시엄’을 출범했다. 포스코(철강), LG화학(석유화학), 쌍용 C&E(시멘트), 원익머트리얼즈(반도체)가 참여했다. 철강 산업에 큰 변화가 없다면 2050 탄소중립 실현이 어렵다. 철강 산업은 국내 산업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다.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철강업은 다른 산업과의 연관성이 높아 산업의 쌀로 불린다. 세계 철강 수요의 약 50%는 건설 부문에 있다. 기계산업(15%), 자동차산업(12%), 에너지(7%), 조선업을 비롯한 수송부문(5%)도 철강을 많이 소비한다. 미국 상무부는 2018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외국으로부터의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이 미국 국내경제를 약화해 국가 안보를 해칠 우려가 크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주요 무역 상대국으로부터 철강 제품 수입에 25%의 관세를 부과해 공분을 샀다.
철은 우리가 사용하는 금속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현재 생산되는 철강 제품의 75%가 2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제품이다. 그런 산업을 보며 철이 어떻게 힘의 상징이 됐나를 생각해 본다. 주기율표 26번인 철은 기호로 Fe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산소와 결합해 녹슨 산화철 상태인 적철광(Fe2O3)이나 자철광(Fe3O4)으로 존재한다. 순수 상태일 때는 알루미늄보다 무르지만 약간의 불순물이 섞여 합금이 되면 단단하고 강한 금속으로 변신한다. 적혈구 속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의 주원료가 되는 철분은 산소 운반과 세포 호흡에 필수적이다. 철분이 든든한 식단을 짜 건강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피가 빨간 이유는 바로 철 때문이다. 파충류 중 피가 파란 건 철 대신 구리가 있어서다.
인류의 역사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나뉜다. 청동기 시대부터 금속을 자유자재로 사용했으나 그 희소성으로 용도와 사용하는 이들은 제한적이었다. 철은 매장량이 풍부하고 여기저기 존재해 소재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철의 기원에 있어 ‘채광(採鑛)착오설’, 철광석이 산불에 녹아 철의 존재를 알렸다는 ‘산불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철이 발견됐다는 ‘운석설’이 있다.
가장 가능성 있게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채광착오설’이다. 이는 청동을 녹여 무기와 생활 도구, 장신구를 만든 인류가 구리 원석인 줄 알고 넣었던 원료에서 철을 우연히 얻게 된 게 계기가 됐다는 주장이다. 비슷한 색과 모양의 적철석을 제련하고 보니 전혀 다른 강도를 뽐내는 철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철의 사용은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했다. 다른 나라를 침범하는 야만과 힘의 원천이 철이었다.
철기 시대로의 진입에는 기원전 1500년경 히타이트 왕국의 역할이 컸다. 히타이트인은 철기를 만들 때 지금처럼 쇠를 녹여 만들지 않았다.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철광석이 풍부했다. 철의 야금이 이때 시작됐다. 철 야금 기술 덕에 4대 고대 문명 중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근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최초로 시작됐다. 철로 된 전차 부대도 등장했다. 히타이트인의 높은 철 생산 기술이 확산한 후 철의 영향력은 더욱 넓게 퍼졌다.
북아프리카는 기원전 10세기부터 청동기 시대가 발달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유럽인 침투 이전까지 석기 시대로 남아 있었다. 아메리카대륙에서는 페루에서 기원전 11세기부터 청동 주조기술이 사용돼 중남미에 전파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칠레, 멕시코 등에 잉카나 마야 문명의 도구는 단지 석기였다. 장신구로는 청동기가 사용됐다. 북미 원주민(인디언)은 기원후 13∼15세기까지 청동기를 대량 제작해 도구로 사용했다.
인류 역사를 보면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원산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금속은 금과 철이다. 근대 이후의 세계는 금과 철을 찾으러 나서는 사람들에 의해 굴러갔다. 수많은 전쟁과 식민지 지배 뒤를 보면 금과 철이 역사를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이란 권력을 소유하기 위한 제국주의에 철이란 실용적인 산물이 동원됐다. 수탈된 국가들을 보면 철의 힘이 없어 무력했다.
고온 고열로 산화된 철광석을 녹여 철강을 만드는 과정에는 반드시 산소를 떼어 내야 한다. 이를 산화와 구별해 환원이라 부른다. 환원을 위해서는 용광로에서 탄소를 다량 함유한 연료가 필요하다. 고대 대장간부터 17세기 제철소까지 고온을 위해 사용한 원료는 황 성분이 많은 목탄이었으나 생산되는 철의 양이 적고 품질도 좋지 못했다. 1709년 6개월여의 시험 끝에 에이브러햄 다비가 황이 적게 든 저황탄을 제철에 활용해 석탄 용광로(고로)를 만들었다. 철광석과 코크스가 오랫동안 접촉할 수 있도록 용광로를 제작한 후 코크스가 용광로 안에서 일산화탄소를 발생시켜 철광석의 환원 과정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이것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다.
제철소의 입지도 석탄 공급이 원활한 지역으로 이동했다. 1800년 전후로 제철소의 약 75%가 탄전 주변에 들어섰다. 코크스법을 발전시킨 영국의 철 생산량은 1740년 1만7,000톤에서 1852년에는 270만 톤으로 성장, 세계 생산의 절반을 담당했다. 이런 토양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철강 제조기술은 베서머가 전로법을 고안하면서 인류가 강(鋼)을 양산하는 시대로 이끌었다. 20세기 들어 다양한 전로법이 개발되면서 품질과 생산량에서 괄목한 성장을 했다.
1,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성장하고 미국의 간섭이 늘자 유럽 국가들은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 오랜 토론과 협상 과정을 거쳐 경제적으로 공동시장을 형성하고 정치적으로는 초국가적 기구의 틀을 창출하는 데 합의한다. 1951년 4월 18일 ‘파리조약’이라고 불리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조약에 서명한다. 이 조약은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공동체(EC)로 발전했고 1993년에는 유럽연합(EU)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철강 자원을 둘러싼 자원 쟁탈과 합의가 EU 탄생의 기원이었다니 철의 힘이 대단했음을 느낀다.
국내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포스코(산업계 배출의 약 10% 차지)가 2021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50년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넷 제로’를 목표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 줄이고, 2040년까지 50%를 감축할 계획이다. 1단계로 에너지 효율을 향상하고, 2단계 목표로 스크랩 활용을 고도화한다. 3단계는 이산화탄소가 전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을 적용한다. 비싼 수소를 어떻게 이용할지 궁금하다.
탄소배출로 인한 철강업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포스코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각종 환경 부담금, 유럽의 탄소 조정 국경 제도와 마주한 우리 제조업의 고민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환경 비용을 치러야 하고, 이는 기업의 수익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된다. 사활을 건 제조업 혁신이 불가피한 이유다. 포스코는 2020년 사상 처음으로 온실가스 초과 배출로 인해 ‘탄소배출권 매입채무’를 쌓았다. 온실가스 초과 배출에 따라 2020년 온실가스 무상할당 배출권의 수량을 초과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해 충당부채를 설정했다. 탄소배출권을 사서 정산함을 의미한다.
올해 포스코그룹은 이차전지·수소 같은 친환경 사업을 위주로 2030년까지 총 121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 50년간 철강업으로 국가에 이바지한 제철보국이란 사명에 이어 2050 탄소중립까지 견인하겠다고 한다. 포스코의 미래를 통해 철강 산업이 환경친화적으로 탄생하는 청사진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엄청난 비용 때문이다. 여하튼 전통 제철 사업에서 종합 소재 기업으로 사업 모델을 전환한 포스코그룹의 미래는 우리 기업이 마주한 숙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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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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