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여행·콘서트·외식…‘레저·엔터테인먼트’, 비수기에도 여행예약 문의 쇄도 즐거운 비명
▶ 중산층·저소득층 소비 감소 만회하고도 남아…당국, 부유층의 과소비 패턴 이어질 지 주시
집값과 주가 상승으로 자산 규모가 불어난 부유층의 과소비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해외여행과 고가 콘서트, 스포츠 경기 관람 등에 거침없이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
갈라파고스, 시칠리아, 뉴질랜드, 마요르카… 여행 예약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마리사 디살비오가 2017년 호화 여행 사업을 처음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여름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5만 달러가 넘는 다음 여행을 즉시 예약하는 고객도 있다.“쇄도하는 예약 전화로 쉴 틈이 없을 정도”라는 디살비오는“이렇게 바쁜 10월이 없었는데 업계에서는‘7월 같은 10월’이란 말이 있다”라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최소 예약 금액을 1만 달러로 조정하고 수수료도 350달러에서 500달러로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의 예약 전화는 끊이지 않는다.
특히 부유층 미국인의 이같은 과소비 패턴이 기존 예상보다 오랜 기간 미국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다.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구가 소비를 줄이는 동안 부유층은 견고한 노동 시장, 팬데믹 기간 늘어난 저축, 집값과 주가 상승 덕분에 거침없는 소비 행태를 보이고 있다.
연방 상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소비자 지출에 힘입은 미국 경제는 한 분기 더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갔다.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고 팬데믹 지원금은 고갈된 상태로 많은 가구의 저축이 줄고 있는 가운데 나타난 경제 성장세에 많은 경제학자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정부 폐쇄 가능성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악화 등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도 미국인의 소비는 작년보다 늘고 있다.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 톰 바킨 총재는 “부유층은 해외여행, 호화 엔터테인먼트 등 특수 서비스를 즐기기 위해 여전히 지출 중”이라며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치 상승이 부유층의 지출을 지원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바킨 총재는 또 “이는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가 소비를 줄이는 패턴을 보이는 것과 대조된다”라며 “저소득층은 정부 지원금 중단과 저축 소진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고 중산층도 더 싼 휴지를 사기 위해 달러 스토어와 월마트를 찾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미국인은 전달보다 무려 840억달러나 더 지출했는데 숙박, 교통, 레크리에이션 서비스를 위한 지출이 크게 늘었다. 영화관, 식당, 스포츠 경기, 카지노에서의 지출도 전달보다 늘었는데 이는 서비스 업종 일자리 증가로 이어졌다.
이 같은 소비 지출 규모는 3분기 경제 성장 중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은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5.4%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는 거의 2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성장률이다. 지출 관련 정부 통계 자료는 소득별로 분류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소비자 지출 증가 현상이 최고 부유층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신한다. 최상위 소득층의 지출이 하위 소득층의 지출 감소를 앞지르고 있어 전반적인 지출 증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금 보유 규모가 많은 최상위 소득층이 현재 돈을 쓰고 있다”라며 “사상 최저 수준의 이자율 덕분의 그들의 자산 규모는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라고 설명했다.
잔디 이코노미스트의 추산에 따르면 미국인의 추가 팬데믹 저축 규모는 약 1조7,000억달러로 이중 약 1조달러는 소득 상위 20%의 미국인 보유하고 있다. 주가와 집값 상승으로 베이비붐세대(57세~75세)를 포함한 부유층 가구의 재정 상태는 이자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전보다 나아졌다.
경제연구기관 KPMG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은퇴 연령층에 접어든 베이비부머들이 직전 세대 은퇴자보다 지출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라며 “소셜 시큐리티 연금 인상과 은행 이자 수익 증가로 전에 없이 풍족한 삶을 즐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부유층 지출 증가로 고급 비즈니스는 수요로 넘치는 반면 나이키와 리바이스 등 일반 소매 제품의 북미 매출액은 감소세다. 미국에 7개 쇼룸을 운영하는 고가 시계 업체 ‘워치오브스위스’(Watches of Switzerland)의 연간 매출은 팬데믹 기간 50%까지 하락했다가 올해 하락 폭이 10%까지 줄었다.
데이빗 헐리 대표에 따르면 최근에는 개당 3만~4만달러를 호가하는 고급 시계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헐리 부대표는 “(모기지)이자율 상승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라며 “불확실성에 의한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일부 고가 브랜드 제품에는 여전히 수요가 넘쳐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견고한 소비자 지출이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데 강한 경제 회복세가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의 인플레이션 해소 노력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연준은 소비자 물가를 잡기 위해 2022년 3월 이후 11차례나 기준 금리를 올렸다. 인플레이션은 작년 여름 최고치인 9.1%에서 올해 9월 3.7%로 하락했지만 중앙은행 목표치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 바킨 총재는 향후 경제가 어디로 향할지 가늠하기 위해 소비자 지출과 물가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킨 총재는 “팬데믹 이후 폭발한 부유층 지출 패턴이 정상화할지, 아니면 이들의 지출이 앞으로 장기간 저축을 초과할지 아직 확실치 않다”라며 “부유층은 앞으로 계속 지출할 ‘무기’(돈)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데 향후 지출에 대한 이들의 의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인 개인 저축률은 경기 대침체 이후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최근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용 고급 시트를 판매하는 ‘스윗합’(At SuiteHop)의 토드 린든바움 창업자는 지난여름 나타난 소비자들의 ‘묻지마 식’ 구매 패턴이 최근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풋볼 경기용 의류 매출이 작년보다 20%나 높을 정도로 소비자 지출은 여전히 활발하다. 린든바움 창업자는 “‘팬데믹이 끝나기만 하면 돈을 마음껏 쓰겠다’라는 열망이 소비자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라며 “유명 연예인 콘서트 입장료로 무작정 돈을 쓰던 소비 패턴을 줄었지만 부유층의 묻지마 식 지출은 여전하다”라고 설명했다.
부유층의 지출 증가 현상이 모든 업종에 걸쳐 고르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여행과 엔터테인먼트 등에 대한 미국인의 지출은 늘었지만 의류, 전자 제품, 정원용품에 대한 지출은 감소했다. 고급 이탈리아 의류를 판매하는 ‘버튼 다운’(Button Down)의 올해 매출도 감소했는데 업소 측에 따르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고객이 많아진 것이 매출 감소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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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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