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트에이드·CVS·월그린스 1,500개 이상 폐쇄, 수익 악화·오피오이드 소송 등 경영 변경 불가피
▶ 서비스 절실한 흑인·히스패닉·저소득 지역 폐쇄… ‘약국 사막’방지필요… 소형화, 당일 처방배송 등
최근 챕터 11 파산 보호를 신청한 라이트에이드 한 매장의 모습. 대형 약국 체인점들이 수익 악화로 대규모 매장 폐쇄를 계획 중으로 많은 환자가 불편을 겪을 전망이다. [준 최 객원기자]
수십 년간 확장을 거듭하던 대형 약국 체인점들이 수백 개가 넘는 매장을 폐쇄하고 있다. 이는 경쟁 심화, 오피오이드 소송, 기타 여러 문제로 운영 방식을 재편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환자들이 약국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불편을 겪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챕터 11 파산보호를 신청한 라이트에이드와 CVS, 월그린스는 이미 2년 전부터 1,500개 이상의 매장을 폐쇄할 것이란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약국 및 의료업계는 흑인, 히스패닉, 저소득층 커뮤니티에 위치한 매장이 우선적으로 폐쇄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디마 카토 USC 공중보건학과 부교수는 “전국적으로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약국이 없는 ‘약국 사막’이 될 것”이라며 “매장 폐쇄는 약국이 가장 필요한 취약 커뮤니티에 불평등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라고 지적했다. 모건 주립대 로리스 에드워즈 공중 보건학과 교수도 “약국은 농촌 지역과 저소득층 지역에서는 ‘생명선’과 같은 역할을 한다”라며 “이들 지역에서 약사는 환자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의료 전문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쟁 심화, 소비 패턴 변화, 절도 증가, 인력난 등으로 대형 약국 체인점의 전략 변경은 불가피하 것으로 여겨져 왔다. 팬데믹 기간 증가한 코로나 백신과 테스트 키트 판매가 최근 들어 급감한 것도 매장 폐쇄 원인 중 하나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 리테일의 닐 손더스 디렉터는 “대형 약국 운영에 따른 경제성과 수익성이 전과 같지 않아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매장 폐쇄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약국이 직면한 도전
약국이 편의점 역할까지 했던 시기가 있었다. 약국은 약품을 사러 가는 곳뿐만 아니라 스낵과 생일축하카드, 심지어 가정용품까지 구입할 수 있는 매장이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CVS와 월그린스는 전국적으로 매장을 확장하며 개인 약국을 위협했다. 현재 이 두 약국 체인점은 전국에 각각 9,000가와 8,700개의 매장을 두고 있으며 2022년 두 체인점의 매출액은 약 4,552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제 더 싸고, 더 편하게 물품을 구입하게 됐고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달라진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손더스 디렉터는 “달러 제너럴과 같은 저가 할인점 진출, 수퍼 마켓 확장, 월마트 시장 점유력 강화 등으로 약국 체인점이 소매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최근 빈번한 매장 내 절도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플렉시 글래스 장벽은 매장을 찾는 고객에게 어색한 느낌을 주고 있다. 급기야 라이트에이드의 3분기 매출은 4.4% 하락했고 같은 기간 CVS 매출 역시 2% 감소했다. 아마존과 월마트 등 대형 소매업체가 약품 및 의료 기기 판매를 늘리고 있는 것도 약국 체인점에는 강력한 도전이다. 이들 대형 할인 업체는 치약과 화장지, 세탁 세제 등에 대한 공격적인 할인 가격으로 약국 체인점과의 경쟁에서 앞서고 있다.
대형 약국 체인점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보험회사와 협력하는 방안도 시도 중이다. 아테나 보험 가입자들은 모든 약국에서 약품을 구입할 수 있지만 2018년 아테나를 인수한 CVS에서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블루 크로스 블루 쉴드 가입자의 경우 월그린스에서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라이트에이드만 보험 회사와 협력 관계가 없는 상태다.
전국적으로 1만9,432곳(10월 5일 기준)에 달하는 개인 약국도 추위에 떨기는 마찬가지다. 존스 홉킨스 대학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의 마리아나 소캘 연구원은 “다양한 서비스에 걸친 기업의 수직적 통합환경에 참여하지 못하는 약국이 큰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도시, 시골 의료 서비스 불평등 심화
알래스카 농촌지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인 패트리스 라 비그니는 처방전 약품을 타러 가려면 2시간이나 운전을 해야 한다. 그녀가 사는 마을에 병원이나 약국이 없기 때문인데 지병을 앓고 있는 남편이 개인 치료를 받으려면 페어뱅크스까지 가야 한다. 약 1,000명의 마을 주민 역시 라 비그니와 같은 처지로 페이스북을 이용해 월그린스, 세이프웨이, 프레드마이서, 코스트코 방문 일정을 마을 사람끼리 서로 조율한다. 라 비그니는 “외딴 지역에 사는 데 따른 불편으로 우리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약국”이라고 호소했다.
시골 지역의 경우 주거지에서 반경 5마일 이내에 약국이 없으면 ‘약국 사막’으로 간주한다. 반면 대중교통 의존도가 높은 도심의 경우 해당 반경이 0.5마일로 줄어든다. 2014년 이후 미국 내 약국이 6만 4,000개를 넘고 있다. 하지만 UC 버클리 제니 과다뮤즈 공중보건대학 부교수에 따르면 약국이 흑인 및 히스패닉 거주 지역과 저소득층 지역을 떠나 백인 거주 지역과 중산층 지역으로 이동하는 ‘약국 분포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의료 업계는 이 같은 약국 분포 변화가 의료 분야에서 이미 오래 지속된 인종 및 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모건 주립대 로리스 에드워즈 공중 보건학과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소위 ‘도시 건강 페널티’(The urban health penalty)라고 부르며 “역사적으로 진행되어 온 현상이 기존 건강 격차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며 “약품 및 의료 서비스뿐만 아니라 식료품과 가정용품 구입 시에도 불평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내 소수 인종은 이미 높은 당뇨병과 고혈압 발생에 노출되어 있다. 에드워즈 교수에 따르면 저소득층 아동의 경우 높은 천식과 정신 질환 발병률을 보이고 있다.
과다뮤즈 교수는 약국 접근성이 환자의 약물 복용 습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특히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노인들은 직접 만나서 상담할 수 있는 약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대규모 매장 폐쇄 뒤따를 전망
약 10억달러의 손실로 10월 15일 파산 보호 신청을 한 라이트에이드는 전국 2,100개 매장 중 154개 매장을 폐쇄한다는 계획을 뉴저지 파산법원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밝혔다. 라이트에이드 폐쇄 계획에 포함된 매장은 펜실베니아주 39곳, 가주 31곳, 뉴욕주 20곳, 미시간주 19곳, 메릴랜드주 6곳 등이다. 폐쇄가 결정된 대부분 매장은 디트로이트, LA, 필라델피아와 같은 대도시 외곽 지역에 위치한 매장이다. 라이트에이드는 이번 폐쇄 결정 외에도 지난 2년간 이미 200개가 넘는 매장을 폐쇄한 바 있다.
월그린스도 내년 여름까지 150개 매장을 폐쇄할 계획이라고 지난 6월 발표한 바 있다. CVS는 2021년 향후 3년 이내에 약 900개에 달하는 매장을 폐쇄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2018년과 2020년 사이 CVS는 244개 매장의 문을 닫았다. 개인 약국도 대형 약국 체인점과 같은 폐쇄 압박을 받는 실정이다. ‘전국약사협회’(NCPA)의 최근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개인 약국의 수익 마진이 10년 전부터 줄고 있다.
론나 하우저 NCPA 부대표에 따르면 향후 정부의 메디케어 지급 방식 변경에 따라서 약국 업계가 겪는 어려움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오는 1월 1일 발효되는 새 규정에 의하면 메디케어 처방전 약품 지급액은 인하될 예정이다. 하우저 부대표는 “내년 상반기 중 약국의 현금 흐름이 가장 큰 우려 사항”이라며 “현금 흐름 악화로 약국 폐쇄와 이로 인한 환자의 약국 접근성 악화가 우려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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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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