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중동내 미군 보호할 방어체계 구축 필요” 지연 압박
▶ ‘인간방패’ 내세운 하마스 표적살해할 정보·작전 필수
민간인 구호 노력·인질 끌려간 220여명 석방협상도 변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궤멸을 공언한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 주변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켰지만 본격적인 지상전 시점은 여전히 불확실한 면이 있다.
중동 전역으로 전쟁이 확대될 것을 우려한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만류 때문이지만, 이스라엘 내부적으로도 여건이 무르익지 않은 면이 있다고 이스라엘 측은 시인한다.
섣불리 병력을 투입했다가는 대규모 피해를 감수해야 할뿐더러 일반 시민 여부를 구분하기 힘든 시가전 특성을 고려할 때 민간인이 하마스로 오인돼 사살되는 참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 경우 이스라엘은 더는 '일방적 피해자'를 자처할 수 없게 된다. 이스라엘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하는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자충수로 고립을 자처한 하마스에 오히려 숨통을 틔워주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관리들은 지상전 시점을 결정할 주요 변수를 거론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스라엘 관리들은 ▲ 최대 우방인 미국의 입장 ▲가자지구에 대한 연료나 인도주의 물품 허용 문제 ▲하마스에 대한 정보수집 ▲ 하마스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한 공습의 진도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을 석방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거론하고 있다.
◇ 이스라엘 "성급히 반응 않겠다"…美는 지상전 연기 압박
이스라엘 역시 이런 문제를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WSJ에 따르면 에일론 레비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은 이날 "작전상 필요에 따라 하마스 궤멸을 위한 다음 단계로 향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여러 요인이 고려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스라엘은 성급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우리의 힘을 신중하게 사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장 고려해야 할 사항은 최대 우방인 미국의 입장이다.
이달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1천400여명이 살해되는 참상을 겪은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를 보복 폭격하면서 중동에선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 왔다.
어린이 2천700명을 포함, 6천500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이 가자지구에서 공습에 희생됐다는 현지 당국의 주장이 나오면서 하마스에 비판적이던 여론이 반전한 결과다.
가뜩이나 높은 반미감정도 덩달아 오르는 가운데 하마스를 지원해 온 이란은 각국의 친이란 무장세력을 자극하는 언사를 쏟아냈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선 현지 주둔 미군기지를 겨냥한 자폭 드론(무인기)과 로켓 공격이 잇따랐다.
미 정부 당국자는 7일부터 25일 사이에만 최소 13건의 공격이 시도돼 한 명이 숨지고 드론 한 기가 파괴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면 중동의 미군을 겨냥한 공격은 더욱 과격해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고, 기지 방어를 강화할 시간이 필요한 미국은 이스라엘에 지상전을 연기하라는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이 하마스에 가세하면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레바논, 시리아의 4개 전선에서 교전을 벌이게 되는 등 이번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는 것도 부담되는 지점이다.
◇ 500㎞ 땅굴서 농성하는 하마스…시가전시 대규모 피해 불가피
설령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지상군 투입이 확정됐다고 해도 이를 준비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총연장 500㎞에 이르는 땅굴에 몸을 숨긴 채 수십만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인간방패' 삼아 버티는 하마스를 민간인 피해 없이 색출해 제거한다는 건 무작정 병력을 밀어 넣어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여서다.
당장 비슷한 전장환경에서 벌어진 전투들을 보면 공격 측이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고, 민간인 피해도 심각했다.
예컨대 작년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포위한 러시아군은 압도적인 머릿수와 화력을 지니고서도 3개월에 걸쳐 피 튀기는 시가전을 벌여야 했고 이 과정에서 수만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병사들의 생존을 우선시해 병력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이스라엘군의 군사철학과는 배치되는 방식이다.
이런 결과를 피하려면 가자시티 내의 하마스 주요 시설과 핵심 인사들의 위치 등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를 파악, 단시간 내에 저항을 무력화할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하는데 여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마스 기습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모사드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역량이 약화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나, 정보분석 및 작전 수립에 미국이 간섭할 가능성도 고려할 사항이다.
WSJ은 이스라엘 당국자를 인용, ""군사원조와 별개로 미국은 이스라엘군을 조언하기 위해 이슬람국가(IS) 등 집단과 싸운 경험이 있는 장성급 인사 3명을 이스라엘에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이스라엘이 미국이 파견한 장성들에게 전쟁과 관련한 '모든 영역'과 관련해 상담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 '천연의 요새' 가자 곳곳에 억류된 220여명 인질들
하마스가 이스라엘에서 220여명에 이르는 민간인과 군인, 외국인을 납치해 인질로 삼은 상황 역시 가자지구 전면 지상전의 불이 댕겨지는 시점에 영향을 미칠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인질들은 가자지구 곳곳에 분산돼 억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군은 최근 가자지구에 소수 병력을 침투시켜 일부 인질을 구출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카타르의 중재로 이스라엘, 이집트 등과 협상을 진행 중인 하마스는 20일 미국 국적의 모녀 두 명을 풀어주고, 23일에는 고령의 여성 인질 2명을 추가로 석방했으며 현재는 최다 50명을 추가로 석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 시점을 늦추는 동시에 국제사회의 여론을 유리하게 끌어내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되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인질들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인질의 절반이 넘는 138명이 외국인이거나 이스라엘과 외국 국적을 동시에 지닌 이중국적자여서다.
이스라엘 정부에 따르면 하마스가 억류 중인 인질의 국적은 총 25개국으로 태국인이 54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아르헨티나(15명), 미국(12명), 프랑스(6명), 러시아(6명) 등 순으로 피해자가 많다.
이들 대부분이 하마스의 지하 터널 깊숙한 곳에 갇혀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외국인 인질의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상군을 대거 투입한다면 이스라엘은 외교적 역풍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BBC 안보전문기자 프랭크 가드너는 "(가자) 진입 명령을 주저하게 하는 많은 요인이 있다. 200명이 넘는 인질의 석방을 위한 민감한 협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미국은 이스라엘에 양측 모두 큰 사상자를 낼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말했다.
◇ 가자지구 잔류 민간인 여전히 다수…'인간방패' 전락 우려
민간인의 희생이 없는 하마스 궤멸을 위한 가장 큰 전제조건으로 거론됐던 민간인 피란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모양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남부로 피란할 것을 권고했고, 이에 수십만명의 주민이 칸 유니스와 이집트와의 국경 인근 라파 등지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런 '안전지대'에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보호를 받는 피란민의 수는 가자지구 230만 인구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60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시 최대 목표물이 될 중심도시 가자시티에는 상당수 주민이 피란하지 않고 남아 있다.
하마스가 피란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가족 중 노약자 혹은 환자가 있어 이동하기 어렵거나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이 많은 탓이라고 한다.
실제, 일부 피란민은 가자지구 남부까지 갔다가 발길을 되돌려 공격 대상이 될 확률이 작은 가자시티 내 대형 병원 등에 피란처를 꾸리기도 했다.
이처럼 방해 요소가 곳곳에 깔린 까닭에 이스라엘 일각에서도 지상전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가자 지상전 전면화 시점과 관련한 이스라엘 정부내 논의가 매우 유동적인 양상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이 최근 탱크와 보병을 동원한 비교적 대규모 병력을 가자지구에 진입시켜 하마스의 대전차 미사일 진지 등을 파괴한 뒤에도 여러 해석이 나왔다.
BBC는 해당 공격을 다룬 기사에서 훨씬 규모가 크고 광범위한 침공의 전조라는 정황이 짙지만 하마스에 대한 보복을 원하는 이스라엘 대중에 대한 보여주기식 메시지의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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