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기금운용 돕는 정부
▶ 대학순위 하락·경쟁력 쇠퇴 우려에 기금 조성하고 운용 전문인력 영입…매년 3조원 수익 내 대학 연구비로
“일본은 노벨상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최근 대학들의 경쟁력이 저하돼 사회적 우려가 큽니다. 이 부분을 걱정한 정부가 대학의 연구개발(R&D)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10조 엔(약 100조원) 규모의 펀드를 직접 조성하고 올 해부터 본격적으로 운용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만난 키다 마사카즈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일본 정부가 민간 대학 도우미로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하버드대와 예일대의 자체 기금운용 규모는 각각 4조5,000억엔과 3조3,000억엔에 달한다. 반면 일본에서 가장 큰 대학 기금을 보유한 게이오대는 870억엔에 불과하다. 와세다대(300억엔)와 도쿄대(150억엔) 등 내로라하는 일본 명문대들의 기금도 미국 대학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일본 정부의 문제 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대학 대비 적은 기금 규모→연구개발 지원 부족→대학 경쟁력 하락→국가 경쟁력 쇠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법은 과감한 재정 투입. 자체 대학 기금으로 튼튼한 재정을 구축한 미국 대학을 조속히 따라잡으려면 정부 차원의 대대적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키다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 CIO는 “미국 대학과 자금력 격차를 일본의 개별 대학이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며 “정부가 나서서 펀드를 만들고 그 운용 수익을 각 대학의 연구개발비로 지원하면 세계적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초대형 펀드를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통 큰’ 투자를 계획했다. 하버드와 예일의 기금을 더한 규모가 7조8,000억엔인 만큼 이를 뛰어넘는 10조엔짜리 펀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20년 관련 법부터 개정했다. 문부과학성 산하 단체로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을 담당하는 JST 안에 펀드 운용조직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듬해부터는 민관의 전문 인력을 끌어모아 운용 준비를 시작했다.
키다 CIO 역시 교토대 경제학부를 나와 일본 농림중앙금고에서 투자 심사를 담당했던 전문가다. 다른 운용 인력들도 일본 내 주요 금융회사 출신들로 채워졌다. 골드만삭스와 핌코 등 글로벌 기관에서 투자를 담당했던 전문가들도 JST에 합류하면서 현재 운용 인력은 44명까지 늘었다.
키다 CIO는 “미국이나 영국 등 주요국 대학들이 전세계 대학 랭킹 상위권을 휩쓰는 사이 일본 대학의 순위는 제자리 걸음을 한 것도 정부의 대응에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실제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 QS의 2022년 대학 랭킹 ‘톱10’ 중 9곳이 미국과 영국 대학이었다. 중국 베이징대와 칭화대는 각각 12위와 14위에 올라 아시아 최고 대학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일본 최고 대학인 도쿄대는 23위에 머물렀고 ‘톱100’ 내 일본 대학은 5곳에 불과했다.
키다 CIO는 “펀드가 물가상승률을 제외하고 연간 3%의 수익을 낸다는 가정 아래 매년 수익금3,000억엔을 대학에 연구개발비로 지원할 것” 이라며 “2026년 3개 대학을 선정해 연구비 지원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펀드 출자는 일본 정부가 책임졌다. 일본 재무성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정도로 정부 차원의 의지가 강했다. 지난해 JST는 5조1,000억엔을 처음 지원 받아 운용에 들어갔으며 올 초 추가로 4조9,000억엔을 더 받아 전체 10조 엔 규모의 펀드 조성을 완료했다. 키다 CIO는 “재무성이 1조1000억 엔을 직접 출자했고 나머지 8조9,000억엔은 대출 형태로 지원을 받았다” 고 설명했다.
JST는 펀드 수익률 향상을 위해 향후 펀드 내 투자 자산군을 사모펀드(PEF)나 부동산 같은 대체자산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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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이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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