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드류 김 메모리얼 파운데이션 김평겸 회장
▶ 9.11테러로 희생된 앤드류 김 추모위해 재단 설립
김평겸(사진)
▶ 21년간 매년 12명씩 총 200여명에 장학금 지급
▶ 뉴저지한인테니스협회 대회 우승자에게도 10년이상 장학금
▶ 다신 9.11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평화 음악회 등도 후원
미동부 지역에서 한인의 이름을 붙인 도로나 기념물은 드물다. 그러나 앤드류 김 메모리얼 도로, 앤드류 김 메모리얼 도서관, 앤드류 김 테니스 코트 등 뉴저지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한인 앤드류 김(한국이름 김재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는 전세계가 경악한 2001년 9.11테러로 희생된 앤드류 김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 모든 것은 재단 창립자인 김평겸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뉴저지주 레오니아 앤드류김 메모리얼 테니스코트 명명식 장면, 철조망 위에 ‘앤드류 김 추모 테니스장’이란 표지물이 부착되어 있다.(2013년 5월18일, 사진 서한서 기자)
스티븐 페로타(왼쪽부터) 레오니아 고등학교 체육 디렉터와 김평겸 회장, 유강훈 뉴저지 한인회장, 이도영 뉴저지한인테니스협회장이 5월18일 앤드류 김 메모리얼 테니스코트 재명명식에 한인들의 관심과 참석을 당부하고 있다. (2013년 5월)
앤드류김 재단주최 테니스 대회가 7월24일 뉴저지 오버펙 팍에서 열렸다. 시상식에 재단 관계자와 입상자 및 가족들이 함께 자리했다.(2021년 7월)
■ 차세대 인재 양성
“9.11희생자 국가 보조금에다가 전국 각지에서, 앤드류를 모르는 사람들도 성금을 보내주었다. 우리 가족은 단 한푼도 개인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데 합의했다, 기념 재단을 만들어 인재를 키우는데 사용하자는데 동의했다. 21년 전의 수십만 달러 기금이 현재는 엄청 불어났다. 2002년 설립된 앤드류 김 메모리얼 파운데이션 수혜자가 현재 200여명으로 교수, 박사 등 훌륭한 인재들이 나오고 있다.”
장학사업으로 2002년부터 매년 12명씩 총 200여 명에게 500~3,500달러 앤드류 김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고 뉴저지한인테니스협회 주최 테니스대회 우승자들에게도 10년이상 장학금이 제공되고 있다.
앤드류가 졸업한 레오니아 고등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는 물론 뉴욕한인교회, 뉴저지 베다니 감리교회, 한미장학재단 등을 통한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 또한 앤드류 김 재단과 재미과학기술자협회 뉴욕지부(KSEA)의 MOU 체결로 청년과학자들에게 2018년 북동부지역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장학금이 지급된다.
“초창기때 2~3년간은 장학기금 행사를 홍보하고 장학 이벤트도 하였으나 기념사업은 광고할 일이 아니라서 조용히, 소리 없이 하고 있다.”는 김회장은 지역사회에서 장학금 신청이 오면 재단에서 심사 후 수여한다고 한다.
이렇게 앤드류 김 재단은 차세대 인재 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지 21년이 되었다.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김평겸 회장은 10남매 중 위로 누나 셋을 둔 장남으로 인천에서 출생하였는데 한국기독교 초대 선교역사에 수록된 6대째 기독교 집안이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인천시 인현동 내리교회 장로를 지냈고 이러한 배냇종교로 인해 성경의 모든 구절을 다 좋아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4)이다.
아침저녁으로 찬송하고 기도하며 수요일과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본다. 성가대도 하고 있다. 이러한 단단한 신앙심이 9.11 참사를 당해 둘째 아들을 잃자 ‘이것이 내 인생에서 닥치는 일이구나. 이것은 내 잘못도 아니고 아이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거기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는 마음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게 했고, 이겨나가게 만들었다.
김평겸 회장이 뉴욕에 온 것은 1967년 1월이다. 1963년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 졸업 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다니다 유학 온 것이다. NYU, 컬럼비아대 등에서 공부하면서 보험세일즈로 시작하여 파이낸셜 서비스, 부동산 투자를 해왔고 이 일은 40~45년간 계속되고 있다. 현재 P & H PLAZA INC. 대표 및 P& H Management 사장으로 일한다.
1971년부터 1980년대까지 10년이상 맨하탄 업타운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70년대 맨하탄 할렘가는 버려진 건물과 가게가 무수했다. 세탁소도 저렴한 가격으로 인수할 수 있어 한때 6개를 동시에 운영했다. 우리 세대는 8.15, 6.25, 5.16, 월남 파병 경험 등을 겪은 세대다. 한창 나이던 30대이고 뭐든 열심히 하다보니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한국의 형제자매들을 모두 미국에 초청할 수 있었다.”
김화옥 씨와는 뉴욕한인교회 청년부 회장, 부회장으로 만나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 윌리엄 재호는 전문의이며 둘째 아들 고 앤드류 재훈, 2001년 9.11로 26세에 사망했다.
■평화위한 행사 후원
지난 10월8일 프라미스교회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음악제에서 합창단으로 출연한 김평겸 회장은 ’안익태의 코리아 판타지 무대에서 합창을 하면서 이민 와 살고있는 한인들이 음악으로 하나됨을 보고 감개무량했다.‘고 전한다.
앤드류 김 재단은 다시는 9.11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정한 평화를 추진할 방법이 무엇인지,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갖고 위와같은 평화를 위한 음악회와 행사를 후원하고 있다.
“9.11테러 한인 희생자는 21명이다. 9.11한인희생자유족회를 만들고 회장으로 일했으며 2년동안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다들 상처를 헤집고 싶지 않아 타주로 떠나거나 해서 현재는 조용히 자녀를 기리는 장학활동들을 하고 있다. ”고 전한다.
김회장이 아직 합창단 무대에 설 정도로 건강한 것은 매일 아침 7시면 뉴저지 잉글우드 클립스 동네 주위를 한 시간씩 조깅하는데 주 5일 비가오나 눈이 오나 거르지 않는다. 매주말이면 엘림선교등산회와 하이킹도 간다.
틈틈이 테니스도 치며 틈나는 대로 오버펙 공원에 나와 아들의 이름이 명명된 테니스장 주변 환경을 가꾼다.
“나이가 80대에 들어서면서 생각해 보았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갔더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50년대 고등학생 시절부터 공대를 다니던 때 자동차 관련 물건을 납품하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주로 했었다. 당시 경쟁업체가 기아산업으로 현재 세계적인 기업이 된 현대차·기아이다.”며 과거를 떠올리기도 한다.
특히 김회장은 ”지역사회 장학금, 평화포럼, 한인사회를 위한 행사 등에 언제라도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고 거듭 말하는데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까. 매일 들고 다니는 연한 갈색가죽 가방 네 모퉁이는 하얗게 낡았고 신발 또한 허름하기는 마찬가지. 그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근면성실, 검소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 앤드류 김 메모리얼 파운데이션
(Andrew Kim Memorial Foundation)
주소: 440 Sylvan Avenue , Suite 250 Englewood Cliffs, NJ 07632
전화: 201-450-5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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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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