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례보금자리론 40조에 집값↑, 줄어야 할 가계부채 사상 최대
▶ 2030 빚더미에 출산율도 저하… 고금리 속 상승한계, 총선 변수
집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던 전국 주택 가격이 지난 7월 상승 반전(0.03%)한 데 이어 3개월 연속 오름폭을 확대(8월 0.16%, 9월 0.25%)하고 있다. 지난달 KB부동산 주택가격동향에서도 전국 아파트 가격은 15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하며 거래 절벽으로 찬바람만 불던 1년여 전 부동산 시장과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국적인 집값 상승을 견인한 건 서울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이미 5개월째 오름세다. 직전 최고가의 90%까지 회복한 단지도 적잖다. 한강변 신축 단지와 재건축 사업이 가시화한 곳에선 신고가도 나온다. 반포 래미안원베일리아파트 전용 84㎡는 43억 원을 찍었다.
거래량도 회복세다. 지난해 10월 559건까지 추락했던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건수는 8월 3,897건까지 올라섰다. 2020년 6월 1만5,622건과 비교할 순 없지만 최악은 지났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앞으로 주택 공급 물량이 급감할 것이란 전망도 이런 매수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 8월까지 인허가 물량은 21만여 호로, 전년 동기 대비 40%나 줄었다. 착공은 11만여 호로, 반토막도 안 되는 수준이다. 주택 인허가 후 착공과 준공, 입주까지 통상 2~4년이 걸리는 걸 감안하면 새 아파트의 희소가치는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 가구도 안 될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규모다. 일각에선 2027년까지 신축 아파트 물량 가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월급 빼고 모든 게 오르면서 아파트 역시 ‘오늘이 제일 싸다’는 인식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경기 광명시의 전용 84㎡ 분양가가 12억 원이 넘는 논란에도 1순위 청약에서 모두 마감된 건 향후 고분양가를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집값 회복세는 원인을 좀 더 분석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집값이 소득 대비 너무 높은 수준인 데다가 금리가 상승하는 데도 아파트 가격이 반등한 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적잖다. 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배율(PIR)은 26~30배로, 주요 80개국 중위값(11배)보다 훨씬 높다. 다른 나라에선 가처분 소득으로 중소형 아파트를 사는 데 10여 년이 걸리지만, 우린 30년 가까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끝나고 각국 중앙은행이 유동성 축소에 나서면서 대부분 국가의 부동산 가격도 조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집값이 오른 건 사실상 정부가 빚을 내 집 살 것을 권하는 대출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정부는 올 들어 특례보금자리론을 40조 원 가까이 공급했다. 9억 원 이하 주택 구매자에겐 연 4% 안팎 금리로 최장 50년간 최대 5억 원을 대출해 주는 특례보금자리론은 2030 젊은 층의 영끌 매수세를 촉발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안 받는다. 업계에선 올해 전체 주택 매매 거래량 중 3분의 1 이상이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2분기 자금조달계획서 기준 연령별 주택 매입 비중은 2030 청년층이 33.1%로, 40대(32.5%)나 50대(19.9%)보다도 높았다. 8월 청약 당첨자 중 30대 이하가 차지한 비율은 55%에 달했다.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우려한 정부의 인위적 개입이 2030의 빚투에 불을 지르며 집값이 오른 셈이다.
한국경제연구학회장을 지낸 이현훈 강원대 교수는 “2030이 집을 살 수 있게 대출을 해주는 나라가 어디 있나”라며 “2030은 원래 저축한 돈도 적고 소득도 낮아 집을 사면 안 되고 못 사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실 올해 초는 ‘미친 집값’을 잡고 하향 안정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정부는 오히려 2030을 끌어들여 집값을 떠받치는 ‘거꾸로 정책’을 폈다”며 “장기적으로는 인구도 줄고 소득도 감소하는 데다 유동성 잔치를 계속할 수도 없는데 단기적으로 대출을 통해 집값을 올린 그야말로 ‘억지’이자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토연구원도 집값은 금리(60%)와 대출 규제(18%)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보고서를 올해 초 발표한 바 있다. 사실상 금리와 대출이 집값의 움직임을 좌우하고, 주택 공급과 인구 구조 등의 영향은 작다는 얘기다. 결국 고금리 상황에도 집값이 오른 건 정부가 대출을 푼 게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줄어야 할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총액이 오히려 더 늘었다는 데 있다. 분기별로 가계신용(빚) 통계를 발표하는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은 1,863조 원에 달했다. 이후 금융위원회가 7~9월 매달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 자료를 참고해 3분기 말 가계신용을 추정하면 이미 1,877조 원을 넘었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3분기(1,871조 원) 기록까지 경신한 것이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규모보다 클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과도하게 높다. 글로벌데이터제공업체 CEIC에 따르면, 6월 기준 각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호주가 116%으로 가장 높고 한국이 104%로 2위다. 67%인 일본, 65%인 미국은 물론 63%인 중국보다도 많다. 가계부채는 통상 GDP의 80% 수준을 넘으면 위험하다는 게 국제 가이드라인이다. 이 교수는 “중국 출산율이 우리보다 높고 고령인구 비율은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보다 더 위험한 게 사실 한국 부동산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2030 젊은 층에 집중돼 있는 데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5대 은행과 6대 증권사의 담보 및 신용대출과 주식 융자 신규 취급액 478조 원 가운데 2030 부채 비중은 134조 원에 달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 가계대출 차주의 빚은 소득의 3배나 됐다. 상환 능력을 초과한 부채는 가계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부채가 너무 커 소득의 대부분을 원리금 상환에 써버리면 다른 데 쓸 돈은 남지 않게 된다. 전체적으로 소비가 줄면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다. 일본식 장기 침체의 길이다.
이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로 더 이상 인구 보너스를 기대할 수 없고,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도 한계에 도달했는데 가계부채까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게 지금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라며 “통계상 가계부채는 2,000조 원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인 전세 보증금(1,058조 원)과 가계대출 성격이 강한 자영업자 소상공인 대출(1,034조 원)까지 합치면 사실상의 가계부채는 4,000조 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집값과 부채는 출산율도 떨어뜨리고 있다. 이 교수는 “1985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의 주택 가격과 합계 출산율을 분석한 결과, 단순상관관계가 마이너스 0.86, 서울 집값과 출생아 수는 마이너스 0.91로, 주택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 그만큼 아이를 덜 낳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특히 주택 가격이 급등한 2001~2004년과 2018~2021년 출산율이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2030에게도 집을 살 권리는 있다. 다만 이는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거나 부유한 부모를 둔 2030에게 국한되기 십상이다. 채상욱 유튜브 채부심 대표는 “주택 매수에서 2030 비중이 높다는 건 그만큼 빚을 많이 냈거나 사실상 주택 매수 과정에서 가족 간 증여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다른 나라에선 2030 대출 확대보다 2030을 위한 공공임대주택공급 등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 대표는 “집값은 결국 대출에 달렸다”며 “정부가 2030을 위한 분양 물량 공급과 대출에만 힘을 쓰면 집값은 올라갈 수 있겠지만 시장의 왜곡과 자산 양극화만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도한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이는 없다. 그럼에도 역대 정권 모두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집을 사고 싶은데 정부가 대출을 막는다면 이를 좋아할 유권자는 없다. 적어도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폭탄이 터지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폭탄 돌리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집값 상승세를 불러온 대출 확대도 내년 4월 총선까진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경우 총선이 끝나면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가계 부채가 이미 임계치를 넘은 상황에서 전쟁이나 유가, 세계적인 경기 침체 등 예기치 못했던 대외 충격까지 겹친다면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집값이 들썩이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는 또다시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질적 공급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는 공급을 오히려 막는 결과가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6일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에서 12만 호 수준의 물량을 추가 확보하고 민간의 적체된 인허가 및 착공 대기 물량이 조기에 재개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발표된 270만 호 공급 계획조차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12만 호를 늘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인허가를 받고도 착공을 못하는 건 그만큼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인 만큼 속도가 붙는 데도 한계가 있다. 지원이 가능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도 전체의 5%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은정 하나감정평가법인 이사(유튜브 박감사리얼아이)는 “시장에서 자연스레 정리돼야 할 악성 사업장이 공매로 나오거나 주인이 바뀌어야 실질적 공급도 기대할 수 있다“며 “정부의 PF 보증 확대는 결국 부실 사업장을 더 연명시켜 길게 보면 새로운 공급만 더 막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이사는 “부동산 시장은 올해 초까지 나타났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 과정이 특례보금자리론과 둔촌주공살리기 등 정부의 인위적인 금융 공급과 강제적인 부양으로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개인들은 금리와 부채를 우습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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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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