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 ‘현우경’에는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석가모니가 기원정사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왕과 백성 모두 공양을 올리기 위해 몰려 들었다.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은 겨우 등불 하나를 사 바쳤다. 시간이 지나며 다른 모든 등불은 꺼졌지만 난타의 등불만은 꺼지지 않았다. 석가 제자 중 신통력이 가장 뛰어난 목련 존자조차 이를 끌 수 없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빈자의 공양이 그 어떤 부자의 것보다 크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설화다.
성경에도 거의 똑같은 얘기가 있다. 예수가 무리가 헌금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데 부자는 많은 돈을 넣었지만 한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지금 가치로 1달러 미만)을 넣었다. 예수가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 다른 이들은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으나 이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를 넣었느니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만약 부자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다면 어떻게 될까. 성경은 이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부자 청년의 비유’에서 말하고 있으나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공항내 면세점 체인인 ‘듀티프리 샵’(DFS)을 설립, 한 때 재산이 80억 달러에 이르던 찰스 피니는 살아 생전 이를 거의 기부하고 지난 주 92세를 일기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망했다. 사망 당시는 그는 2 베드룸 아파트를 빌려 살고 있었으며 10달러짜리 시계를 차고 있었다고 한다.
억만장자가 사후에 재단을 설립해 사회 환원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처럼 살아 생전에 거의 전액을 기부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부왕 워런 버핏마저 “척 피니는 대단한 롤 모델이며 생전 기부의 궁극적 예”라며 “그는 나와 빌 게이츠의 영웅이며 모든 사람의 영웅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때 뉴욕, 파리, 런던, 애스펜, 프렌치 리비에라 등 세계 각국에 호화 별장과 요트를 갖고 있었으며 파티를 즐기는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50대의 피니는 그런 삶의 허접함을 깨닫고 전 재산 기부를 결심한 후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산다.
그는 기부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철저한 익명주의를 고집했다. 남들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버뮤다에 해외 법인을 차리지만 그는 기부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기다 자선 단체를 만들었다. 돈 준 사실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기부했기 때문에 세계 5대주에 그가 준 돈으로 세워진 건물 1,000여개 중 그의 이름이 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가 도움을 준 곳은 모교 코넬대 10억 달러를 비롯, 아일랜드 트리니티 대학, 베트남 보건소, 아이티 지진 구호, 남아공 AIDS 구호 사업 등 극히 다양하다.
가장 위대한 중세 유대인 철학자로 꼽히는 마이모니데스는 ‘자선의 8등급’이란 글에서 익명으로 주는 것을 두번째(받는 사람도 모를 경우)와 세번째(받는 사람은 아는 경우)로 높은 단계의 자선으로 쳤는데 그는 이 단계에 올라선 셈이다 (첫번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 자립하게 하는 것). 익명 기부자는 전체 기부자의 1%에 불과하다.
피니는 1931년 4월 23일 뉴저지 가난한 아이리시계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4월 23일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날로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기도 하다. 고졸 후 공군에서 복무한 그는 코넬대 호텔 경영학과를 나온 뒤 공항 면세점을 차렸다. 이것이 국제 여행 붐을 타고 급성장해 그에게 억만금을 안겨 준 것이다.
그는 갑부가 된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건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dumb luck)이라고 말했다. 작은 돈은 열심히 일하면 모을 수 있지만 큰 돈은 운이 따라줘야 한다. 빌 게이츠도 자신은 잘 뛰지도 나무에 오르지도 못한다며 석기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일찍 야수에 물려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어떤 시대, 어떤 나라, 어떤 부모를 만나 어떤 가정에 태어나느냐가 인생의 대부분을 결정하는데 이 모두 운이다. 큰 재산을 모으는데 도움을 준 사회에 이를 환원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돈의 맛’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는 “베풀지 않는 부자는 욕심 많은 거지”라 말했고 셰익스피어는 “온 세상은 무대고 모든 남녀는 겨우 배우일뿐”이란 말을 남겼다. 피니는 “기부하고 싶다면 살아서 하라. 죽어서 하는 것보다 훨씬 즐겁다”고 말했다 한다. 누구보다 멋진 연기를 하고 영면한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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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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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되는길은 자리이타를 실행하는것이라하였으며, 성경에 너의 이웃을 너의 몸과같이 사랑하라하였으며 명심보감에서는 '하늘의뜻을 받들면 흥하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하였다. 약 30년전부터 동포사회의 이웃사랑하기 캠페인이있을때마다 동참하였고 쓰나미, 지진, 극심한 산불등 자연재해와 한국 홍수등에도 십시일반 보내어 약50여회수에 이르며 비교적 최근 플러싱 시니어센터 새 건물짓는다며 성금보태준분들의 이름들을 석판에 새기겠다하여 거금 보냈다. 그러나 그 시니어센터는 약속을 어기고 그분의 이름만 빼버렸다.
트럼프가 놀리텐데..오만가지 별명을 붙여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