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한국전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여러 행사가 열렸다. 이날 100도가 넘는 무더위 속, 백악관 앞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 행동’ 집회에서 흐르는 땀도 무시한 채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한인 2세가 있었다. 내년 연방하원 선거에 도전하는 데이빗 김 후보로 그의 연설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친절하고 예의바른 한인 청년,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진심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느껴졌으며 불의에 맞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영화 ‘변호인’을 통해 재조명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인권변호사로 아동법원에서 국선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연방하원 선거에 도전한 한인 후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초선’의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미국은 물론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는 도시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일 것이다.
바로 이곳, LA 한인타운을 포함하는 연방하원 34지구에 출마한 한인 2세 데이빗 김 후보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이미 선거운동에 한창이다. 지난 2020년 첫 도전 그리고 2022년 재도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로 같은 민주당 소속 현역 의원을 상대해야 하는 쉽지 않은 선거를 앞두고 있다.
라티노 인구가 70%를 차지하는 지역구에서 소수계 한인으로서 라티노 현직 정치인을 상대해 무모한 도전이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난 선거에서 49대 51,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는 부족할 만큼 마치 풀 한포기 찾기 힘든 사막에서 나무를 키워 열매를 맺는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을 만들어 냈다는 반응이었다.
선거자금도 상대후보는 260만 달러를 모금했던 반면 김 후보는 26만 달러에 불과했다. 10배가 넘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소한 차이로 따라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달 28일 본보를 방문한 김 후보에게 직접 물어봤다.
-신인 정치인이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현역 의원을 상대로 선전한 비결은 뭔가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 리얼리티 쇼로 전락한 정치는 권력과 로비스트, 기업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외치는 신인 정치인에게 표를 준 것 같다.
-정계 진출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된 주민들, 매일 3개가 넘는 일자리를 뛰어 다녀도 가족조차 부양할 수 없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결국 술과 마약에 찌들어 부랑자가 되는 비참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도 기성 정치인들은 이를 외면해왔다.
다른 누군가 나서주기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시급한 문제이며 사실 이들을 대변하려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정치경험도 없고 소수계 이민자인 제가 용감하게 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어리고 몰라서 무모하게 도전했는지도 모르지만 3번째 도전을 준비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해 졌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정치를 하고 싶다.
-지난 선거에서 한인 유권자들의 참여는 어땠나
▲소수계 정치력 신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과거와 달리 조직적으로 참여하려는 노력이 눈에 띄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34지구에서 아시안 인구는 20%를 차지하고 이 가운데 3분의 2가 한인 유권자로 대략 3천 명 정도가 된다. 지난 선거에서 3천여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던 만큼 아쉬움도 있지만 결국 타 인종 유권자들의 마음도 사로잡아야 승리할 수 있다.
-다수인 라티노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방법이 있나
▲지난 선거에서 라티노 현역 의원은 6만2천표(51.2%)를 받았고 저는 49%에 달하는 5만9천여표를 받았다. 이는 라티노 유권자들이 타 인종인 아시안 후보를 찍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은 누가 우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후보인지를 판단한 것이다. 서로 다른 인종이지만 소수계 이민자로 살아가는 경험은 비슷하다. 서로 다른 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함께 연결될 수 있었다. 우리가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과 다른 소수계가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은 분들이 지지해주고 있다.
-한인 2세들은 정치적 무관심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한인 1세들은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 전역의 한인사회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으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인들의 모습도 직접 목격했다. 이렇게 한인 1세들이 고생하고 노력한 결과 성공한 2세들이 나올 수 있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 2세들을 보게 되면서 이제 한인사회의 위상도 달라졌다고 실감한다.
그러나 성공한 한인 2세들은 그들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개인주의에 함몰돼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소수계라는 스스로의 한계에 갇히곤 한다. 성장하고 발전한 만큼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이 있고 그래야 한인사회 위상도 높아진다.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소수계가 넘지 못하는 유리천장이 있고 인종차별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한인 3~4세까지 바라보면서 우리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한인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남다른 전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적부흥(Great Awakening)으로 한인교회가 일어났던 것처럼 이제 ‘정치적 영적 각성’이 필요하다.
-정치인으로서 포부는
▲의회는 입법기관이다. 정치인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은 ‘사람을 살리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 살아갈 집이 있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하고, 생계를 유지할 직업이 있고, 신분문제로 고민하지 않고 정치인들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하며 피부색이나 출신국가, 성별, 종교 등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성경은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돌보는 일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했으며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가 됐다. 교회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것이 바로 정치다. 목사의 아들에서 이제는 정치인을 꿈꾼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 약속을 하지 않는 정치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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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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