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귀부인같은 산마늘은 겨울에는 땅밑에서 숨을 쉬고 있다가 눈이 채 녹기도 전인 3월이면 새싹이 올라온다. 추위에 강해서 이른 봄에 내리는 춘설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을 만큼 잘 자란다.
잎이 달린 포기 사이에서 꽃대를 길게 밀어 올려 초여름에 유백색의 꽃을 피운다. 봄에는 산마늘의 일품 맛이 입을 즐겁게 해주고, 여름에는 눈 같은 하얀꽃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작은 꽃들이 모여 공처럼 둥근 꽃차례를 만들며 피어나는데 화려하진 않아도 수수한 모습이 오히려 사랑스럽다.
꽃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만개한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 더욱 아름답다. 무더운 여름에 눈꽃같은 하얀 산마늘꽃이 눈에 잘 띄지않는 숲속에서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애교머리로 이마를 살짝 가린 소녀처럼 자연스러우면서 귀여운 꽃이다.
숲속에서 짧은 기간 동안만 피었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산마늘꽃을 직접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 꽃의 수수한 아름다움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은 화단이나 화분에 심어서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꽃이 필 때는 벌들이 날아다니면서 산마늘꽃의 수술 화분(花粉)을 암술머리에 옮겨 붙이는 일, 수분(受粉, pollination)을 해줘야 한다. 기온이 낮으면 벌들이 왕성하게 다니지 못한다. 뜨거운 여름 햇살은 꿀벌들의 활동에 아주 중요하다. 이 꽃이 영글면 흑진주 처럼 생긴 씨앗이 여러개 달린다. 그 씨앗을 땅이 품으면 다시 새 생명이 탄생 한다.
야생화를 색(色) 향(香) 미(味)를 간직한 자연의 선물이라고 한다. 3박자를 두루 갖춘 산마늘을 두고 하는 말 같다. 눈길을 사로잡는 산마늘꽃의 색,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쉬게 만드는 산마늘꽃의 향, 절로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하는 산마늘 특유의 맛을 지니고 있다.
하얀 산마늘꽃은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하얀 메밀꽃을 연상시킨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은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고 했다. 산마늘꽃은 양귀비처럼 가는 줄기 위에 눈이 내린 듯 너무 수수하게 아름다워서 감탄할 뿐이다.
산마늘은 생명을 이어주었던 식물이어서 명이(命荑)라고도 한다. 명이나물은 옛날 춘궁기에 구황식물로 사용하였다. 명이나물 이름에는 슬픈 유래(由來)가 있다. 외부 침입자들로 부터 섬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고려시대에 본토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인하여 울릉도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개화기가 시작되면서 열강들의 한반도 침탈야욕이 가속화되자 이를 막기 위해 1883년 고종 20년에 섬으로 사람을 다시 이주시키기 위하여 울릉도 개척령(開拓令)이 반포되자 개척민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겨울이 되자 개척민들은 가지고 온 식량이 떨어지고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마을 산 눈속에서 싹이 나오는 산마늘을 발견하여 뜯어 먹으면서 생명을 이어갔다고 한다.
일본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감독한 ‘메리와 마녀의 꽃(Mary and the Witch’s Flower)’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주인공인 메리가 강력한 마법을 갖게 해주는 7년에 한 번만 피는 정체불명의 신비스러운 마녀의 꽃(The Witch’s Flower)이 그녀의 숨긴 주머니에서 튀어 나온다. 메리는 이 불가사의한 꽃을 꽃병에 꽂아 자신의 방 창가에 놓는다.
그 마녀의 꽃이 산마늘꽃(Ramp’s Flower)과 너무 흡사하다. 산마늘은 파종한 후 6~7년이 지나야 싹이 올라오고 꽃이 핀다. 마늘은 단군신화에 나오듯 신비성을 가지고 있다.
산마늘꽃의 꽃말은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이다. 코로나 팬데믹 불안은 사그라졌지만, 상상을 초월한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꽃말처럼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어려운 환경을 박차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숲속에서 넓게 퍼져 하늘하늘 춤추는 하얀 산마늘꽃처럼 마음 편한 세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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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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