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틴은 왜 바그너그룹 못 버리나
▶ 바그너그룹, 참전 대가로 유전 등 이권 따내…연 650억 순익 중 60%가 푸틴의 주머니로
전쟁 통해 군부 부상 막을 카드로도 쓰여…권력 누수 막기 위해 한쪽만 버리지 못해, 반란 주도 프리고진 교체하는 선에서 봉합
민간군사기업(PMC)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용병’이다. 그리스 스키타이 기병, 크레타 궁병 등 인류의 가장 오랜 직업 중 하나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부각되는 PMC는 용병이 본격적인 비즈니스 집단으로 고도화된 것이다. PMC는 국가에 충성하기보다 계약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군사 조직과는 다른 파격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위대 역할을 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장섰던 용병 집단 ‘바그너그룹’이 근래에 모스크바 목전까지 진격하며 푸틴에게 반기를 들었던 것도 이해 득실에 따라 총부리를 언제든지 다른 방향으로 겨눌 수 있는 PMC만의 특성을 보여준다.
바그너그룹에서 ‘바그너’라는 명칭은 아돌프 히틀러가 좋아했던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유래했다. 바그너 용병은 2014년 2~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당시 처음 등장한다. 2013년 러시아인들로 이뤄진 홍콩 법인 회사로 출범했다. 처음에는 해상 보안 전문 업체로 시작해 글로벌 시장에서는 ‘후발 주자’ 격이다. 영국 매체 ‘스펙테이터’에 따르면 크렘린궁과 가까운 러시아 억만장자들이 비용을 대고 있다.
바그너그룹은 푸틴 및 측근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틴의 단골 레스토랑 요리사로 친분을 쌓았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바그너그룹의 설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바그너그룹은 이번에 모스크바로 역(逆)진군하며 반란을 감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상 ‘푸틴의 사병’ 집단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바그너그룹은 그동안 주로 아프리카 등의 분쟁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수단·말리 정부 등과 군사 계약을 체결해 이익을 챙겼다. 아프리카 독재 정권은 자국 내 쿠데타를 우려해 국군보다는 용병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틈새를 바그너그룹이 파고들어 해당 국가에서 광산·유전 등의 이권을 따내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온 것이다. 바그너그룹은 이를 지렛대 삼아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랑스를 밀어냈고 이로 인해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바그너그룹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예컨대 시리아 내전에 참전해 정부를 위해 싸우고 유전과 다이아몬드 채굴권 등을 확보해 25% 정도의 이권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 수익의 상당 부분이 푸틴의 통치 자금으로 들어가고 일부를 프리고진이 가져가 바그너그룹 운영에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바그너그룹이 ‘푸틴의 사병’으로 뒷돈을 마련하는 창구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미국 외교협회 월간지 ‘포린어페어스’에 따르면 2018~2022년 5년간 3200억 원(2억 5000만 달러)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 650억 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것인데 이 가운데 60%가 넘는 400억 원을 푸틴이 챙겨가는 구조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연간 벌어들이는 순이익이 수천 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푸틴으로서는 바그너그룹이 최근 반기를 들었다고 해도 이처럼 막대한 비자금을 벌어주는 수익원인 탓에 쉽게 버릴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푸틴은 바그너그룹을 전면적으로 분쇄하는 대신 반란을 주도한 프리고진만 핀셋처럼 콕 집어 수장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렇다면 프리고진은 왜 반란을 일으켰을까. 가장 큰 원인은 돈 문제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군을 대체한 바그너그룹이 자금과 병력을 투입했지만 이득보다는 손해를 보는 양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 실세(실로비키=러시아 정보기관인 KGB나 군 출신의 정치 관료들, ‘제복 입은 남자들’ 의미)들은 뒷짐 지고 전투의 공만을 챙겨가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전이 장기화되고 그 책임을 군부가 바그너그룹 등에 떠넘기자 프리고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모스크바로 돌진하려 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포린어페어스는 소련 시절부터 해외 활동은 정찰총국(GRU)과 특수부대 등이 해외로 나가 게릴라전과 쿠데타 지원 등으로 수익을 창출했지만 소련 붕괴로 러시아 최고 권력자들의 통치 자금이 부족해지면서 아웃소싱을 통해 PMC인 바그너그룹을 만들어 해외 무장 활동으로 자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투트랙 카드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돈줄과 측근을 형성한 푸틴으로서는 자신의 권력 양축 가운데 한쪽만을 편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칫 한쪽을 편애하면 권력 누수가 빨라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푸틴으로서는 당장 바그너그룹을 쳐낼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임시방편이지만 수장을 프리고진에서 또 다른 측근인 러시아군 대령 출신 안드레이 트로셰프로 교체하는 선에서 일시적 봉합을 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푸틴 입장에서 미국 등 서방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바그너그룹의 군사력을 아프리카와 중동 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해 우호 세력을 만들고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이 때문에 트로셰프를 지명하면서 바그너그룹의 해외 작전 통제에 더욱 관여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푸틴이 바그너그룹을 버리지 못하는 데 대한 또 다른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러시아 내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계엄령·동원령의 정당화 구실을 만들려는 기만전술이라는 주장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 레베카 코플러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과 함께 계획한 ‘가짜 깃발 작전(기만전술)’”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반란 당일 수도 모스크바 등에 ‘대테러 작전 체제’를 발령한 것은 무장 반란을 빌미로 계엄령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군사력 소진을 유도하기 위한 덫’이라는 평가도 있다. 푸틴 대통령이 반란 사태를 틈타 대반격 속도를 끌어올리도록 우크라이나를 유도하려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전열 정비 차원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지양하는 우크라이나에 기회로 가장한 덫을 놓아 병력과 무기 등 군사력 소진을 강요해 반격 능력이 약화했을 때 본격적인 공세로 판세를 뒤엎겠다는 심산 아니냐고 추정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벨라루스에 바그너 용병을 주둔시킬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푸틴이 벨라루스 내에 바그너그룹 용병을 주둔시킬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프리고진과 짜고 반란을 일으킨 뒤 바그너 반란군을 벨라루스로 이주시킨 게 아니냐는 것이다. 벨라루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처음 침공할 당시 남부 접경지를 통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부 수도 키이우로 진격할 수 있도록 영토를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의 대표적 PMC인 바그너그룹은 푸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카드다.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러시아 군부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도 될 수 있다. 스펙테이터는 푸틴이 제국주의적 전쟁을 수행하면서 전쟁을 통해 군부가 경쟁자로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PMC를 적극 활용했다고 내다봤다.
푸틴이 바그너그룹을 내치지 못하는 것은 600조 원에 달하는 용병 산업 확대가 가져다 줄 통치 자금의 역할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안보 분야로까지 외주화가 확대돼 PMC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미국도 이미 용병 시장에 발을 걸치며 용병 산업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2001년 당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9·11테러가 발생한 후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되며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미 행정부도 PMC를 활용하며 전쟁의 외주화 경향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는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 PMC가 2015년에 비해 2020년 두 배로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 기업인 가스프롬도 용병들을 조직해 PMC를 운영한다. 가스프롬의 CEO인 알렉세이 밀레르는 푸틴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올리가르히(신흥 재벌)이다. 가스프롬의 용병들도 최근 우크라이나에 투입돼 전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용병 집단은 또 다른 ‘푸틴 사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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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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