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말타 섬의 수도 발레타의 트라이튼 분수.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한스 여행사를 따라 2주간 이태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 부부는 이 노래들을 부르며 아침을 연다. 커피를 내리며, 벽에 걸린 세계지도에서 우리가 갔던 이태리의 도시들을 짚어보면 행복감이 밀려온다. 다녀온 지 열흘이 지나도 아직 십분의 일도 소화시키지 못한 추억들….
▲ 싱싱한 생선비늘 같던 바다들
팬데믹 동안 유난히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온 이태리였다. 그러나 염려했던 것보다는 너무나 태연하고 초연하게, 가는 곳곳마다 신록으로 뒤덮인 4월의 이태리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일행들을 맞았다.
우리들은 한스의 재키 인솔자님과 현지에서 나온 가이드님을 따라 시실리 섬에서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비행기 타고 말타 섬 구경 후 타오르미나를 거쳐 본토로 들어와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 바티칸, 로마, 아씨시, 몬테 풀차노, 시엔나, 피렌체, 레이크 코모, 밀란까지… 남쪽에서 북쪽을 올라가며 주옥같은 한 도시, 한 도시를 구경하였다.
고요하고 맑은 햇살에 싱싱한 생선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끼고 기품있게 펼쳐진 나폴리를 볼 때는 산타 루치아 노래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도시임을 실감했다. 아말피, 타오르미나, 소렌토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아! 이런 풍경에서 저런 노래들이 나왔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어 눈에 가득 담고…. 그래도 흘러넘치는 아름다움들을 마음에 잔뜩 실어왔으니… 추운 겨울 내내 꺼내보면 폭설도 걱정 없을 것 같다.
▲ 성당 안의 기도문
무엇보다 인상에 남는 도시는 아씨시와 피렌체였다.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나고 활동하신 아씨시는 도시 전체가 깨끗하고 무겁고 그리고 귀한 모습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움브리아주에서 1200-2000년 사이에 있었던 10번이나 넘는 지진들이 아씨시 주변에서 있었으나 부서지고 또 다시 복구되었다.
아씨시로 들어서면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감탄과 경외감! 부유한 포목상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세속의 즐거움을 모두 버리고 낮은 사람들과의 동행을 선택한 그 분의 일생이 묻혀있는 곳이기에, 여기를 방문하게 된 일정에 너무나 감사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탁발승 같은 마음으로 몸소 사랑을 실천하셨던 그 분의 삶을 생각하며 성당에 들어섰을 때, 설사 죠토가 그린 그분의 일생 프레스코화가 성당 안 벽을 장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성당 안에서 가만히 마음속으로 읊어본 그의 기도문은 신의 기도문에 닿아 있었다. 올해 새로 성당 밖에 세워진 커다란 올리브 조각을 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다음 날 피렌체에 갔을 때, 그 감동은 또 결이 달랐다.
▲ 단테의 조각상을 보았나요
아르노 강을 따라 걷다가 베키오 궁 입구에 들어서면서 정말 와 보고 싶었던 우피치 미술관을 만났다. 밖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죠토, 코시모 메디치, 로렌죠 메디치 등등 수많은 조각상들 중, 단테를 만나서 제일 반가웠다.
르네상스 문학의 시초를 알린 신곡에서 단테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환자” 같은 모습이라고 피렌체를 묘사했다. 당시 교황파와 황제파의 분쟁으로 혼란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던 이곳이었다. 신곡의 첫머리에서 “인생의 절정에서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나는 길을 잃고 어둠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고 단테는 고백했다.
누구나 한번쯤, 인생을 바쁘게 살아오다 자신을 되돌아 볼 때 우리 또한 그렇게 느끼지 아니하는가.
단테 자신이 태어난 곳, 평생의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났던 곳, 어머니 품 같았던 고향 피렌체에서, 교황파와 황제파의 진흙싸움에서 밀려 잡히면 사형당하는 처지가 되어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다녔다. 날씨가 춥고 험하여 검투사들을 훈련시키는 곳으로 유명한 라벤나에서 세상을 뜰 때까지 늘 그의 마음은 피렌체에 있었으리라.
▲ 명화들의 보고, 우피치 미술관
그러나 우리가 만난 피렌체는 팬데믹까지 잘 견디어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을 두 손 벌려 맞이하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이 이룩한 문화재의 보물창고 우피치 미술관은 안팎으로 가히 압도적이었다.
실내 작품들은 또 얼마나 어마어마하였든지, 책에서만 보았던 수많은 조각상, 명화들이 미술관 방방마다 꽉 차 있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며, 카라바조의 메두사, 다빈치의 성 수태고지 등등…. 작품 하나하나 모두 진귀한데, 관람객들의 물결에 떠밀려 충분히 감상하지 못해서 너무나 아쉬웠다.
▲ 고리대금업 메디치 가문의 공훈
메디치 가문은 다 알다시피 가장 멸시받던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것도 기독교에서 거의 파문당할 죄에 들어가는 고리대금업자들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모든 게 아니듯, 예술인들을 후원하고 불후의 명작들을 남긴 메디치 가를 둘러싼 수많은 치부들을 우리는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몇 백 년도 더 지나 아직도 감동을 더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메디치 가문 없이 이 수많은 작품 앞에 우리가 서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진귀한 문서나 책은 가격을 따지지 않고 구입해 번역을 시키고, 살 수 없으면 필사를 시켰다고 한다. 글로 쓰인 지혜의 힘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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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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