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이화웨딩&한복 로라 박 대표
▶ 4대째 가업 이어 LA서 한복 알리기 외길 32년, 한복에 양장핏 접목… 디자이너다운 탁월 감각 “고유명사 ‘한복’이 주류사회에 우뚝 서 보람”
LA 한인타운 한복판에서 32년 동안 한복 보급에 앞장선‘이화 웨딩 & 한복’의 로라 박 대표. [박상혁 기자]
‘LA 한인타운에서 30년 이상 한복집을 운영해온 디자이너’
로라 박(한국명 박이화) 대표를 소개하는 프로필의 시작이다. 가업으로 4대째 이어 온 한복집‘이화 웨딩&한복’은 미국에서 가장 핏이 예쁜 한복을 만드는 곳이다. 외증조 할아버지가 평안도에서 원단 장사를 했고 외할머니가 한복을 지었다. 전쟁이 나서 피난을 온 외할머니는 박 대표의 어머니에게 물려주었고 어머니는 종로 광장시장에서 반세기 넘게 포목상을 운영하며 한복을 만들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로 이어진‘가업’ 잇기가 미국으로 건너온 박 대표에 와서는‘한복 세계화’라는 명분을 갖게 했다. 한복에 양장의 핏을 더한 디자이너다운 탁월한 감각과 고급 원단만을 고집하는 완벽함으로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로라 박 대표를‘이화 웨딩& 한복’에서 만났다.
■4대째 이어온 가업 ‘한복점’
박 대표는 1985년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왔다가 어릴 적 미국에 이민 온 남편을 만나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어렸을 때 한복 원단과 재봉틀 아래서 놀았다는 그는 어려서부터 디자이너가 장래희망이었다. 미국에 와서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한복 디자이너가 된 것은 숙명과도 같았다.
박 대표는 “한국에 가서 어머니에게 한복을 팔아보겠다고 했다. 원단을 잔뜩 들고 왔는데 바느질을 담당하던 할머니가 저고리만 만들지 치마는 안한다고 하시더라. 직접 지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시집올 때 챙겨온 한복 치마 10벌을 다 뜯어서 재연했다”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쓰던 재봉틀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화고전방을 낸 뒤 수시로 서울을 드나들며 한복 학원을 다녔다.
할머니의 가업을 전수받은 어머니가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포목상을 55년 했고 딸인 박 대표가 LA에서 한복 디자인에 뛰어든 것이다. 그런 외손녀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박 대표의 손을 잡고 한 말이 있었다고 한다.
“평안남도 순천에서 비단을 팔던 외증조 할아버지가 말끝마다 비단 팔아 교회당을 건축하겠다고 했다. 그 때 할미는 그게 너무 싫어 불교로 개종했는데, 미국으로 시집 간 외손녀가 모태신앙인 남편 권유로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어 다시 원단 장사를 하는구나.”
■30년 동안 변천해 온 한복의 위상
LA 한인타운의 중심 웨스턴 애비뉴와 6가 샤핑몰 2층에 위치한 ‘이화 고전방’은 30년이 흐르는 동안 영문 상호(DBA)가 3번 바뀌었다. 1990년대 Lee Hwa Traditional Korean Dress에서 2004년께 ‘Lee Hwa Wedding & Traditonal Korean Dress’로, 그리고 5년 전 지금의 ‘Lee Hwa Wedding & Hanbok’으로 변경됐다. 한민족 고유의 옷 ‘한복’의 진화는 이화 고전방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
박 대표는 “1990년 원단을 팔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한복집은 1993년 간판을 달았다. 그 때는 외국인이 ‘한복’이라는 고유명사를 몰라서 한국 전통드레스라고 풀어써야 했다. 30년이 흐르면서 웨딩드레스에 한복을 결합시킨 웨딩 한복이 인기를 끌고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달라지면서 한복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BTS와 블랙핑크 같은 K-팝 스타들이 한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모두가 ‘Hanbok’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화고전방이 처음 자리를 잡은 건물은 3000 Wilshire Bvld.(이태리 양복점)의 아래층이었다. 박 대표는 “임(구영) 대표가 윌셔가에 ‘웨딩 플라자’의 컨셉으로 웨딩 관련 사업체에만 임대를 주었다. 스칼렛 웨딩이 들어와 있었고 한복점으로 ‘이화고전방’이 들어갔다”며 “미국에 시집을 와서 딸을 키우던 시절이었는데 각 한복집마다 원단을 팔기 위해 명함을 돌려 마케팅을 했다. 당시에도 한복은 고급 원단을 사용했기에 지금과 가격 차이는 별로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우아한 한복에 양장의 패턴 응용
박 대표의 한복 드레스는 한복 특유의 ‘선’과 ‘여유’에 양장의 맵시를 더하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늦깍이 대학생으로 패션 인스티튜트 오브 디자인 & 머천다이즈(FIDM)에 등록해 더 전문적인 연구를 더한 노력 덕분이다. 우아한 한복에 양장의 패턴을 응용한 이화고전방의 한복은 “한국의 옷이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면서도 서양인들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옷”이다. 여유를 중시하는 루즈 핏인 한복을 가슴 라인 살린 섹시 핏으로 바뀐 것도 박 대표다.
그는 “한복은 누가 입어도 아름다운 옷이에요. 한복 하면 떠올리는 색이 빨강, 초록, 노랑, 알록달록한 색동이지만 ‘자연 염색’이 포인트인데 32년 전 패션쇼를 했던 디자인을 요즘 사용한다”고 했다. 또 사비를 들여 한복 패션쇼를 하던 시절의 일화도 들려주었다.
“LA폭동이 나고 축제를 통해 한인들의 마음을 달래자는 의미로 한복 패션쇼를 기획했어요. 1년에 8번을 했죠. 한복을 선보일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한복을 준비해 갔는데 어느 날 크리스마스 패션쇼 의뢰가 들어와서 도착해보니 마리나 델레이 레스토랑에서 흑인협회가 주관하는 의미 있는 행사였어요. 체격이랑 피부색이 전혀 다른 모델들이어서 걱정이 앞섰지만 강렬한 대비가 두드러진 한복 색상이 흑인들과 너무나 잘 어울려 찬사를 많이 받았죠.”
■주류사회 행사에서 한복 입는 젊은이들
이화 웨딩 앤 한복은 지난해 뉴욕타임스(NYT)가 게재한 기사 ‘의복의 역사를 관통하는 여정’에서 특별 조명된 한복점이다. 박 대표의 딸인 에스텔라 박씨가 합세하며 한인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다양한 고객을 끌어들였다.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온라인 주문 시대를 연 것이다. 박 대표는 “수퍼모델 미란다 커의 한복 자태가 최고였다”고 언급했다.
지난 2011년 5월30일 수퍼스타 T 화보’ 홍보를 위해 내한했던 미란다 커는 LA한인타운의 ‘이화고전방’ 로라 박 대표가 특별 제작한 파란색 당의에 연분홍 치마를 입고 한복 맵시를 뽐내 제작진과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 박 대표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로 잘 알려진 미란다 커의 한국인 친구가 한국 방문 때 한복 입기를 권유해 내한 20일 전쯤 한복 제작 의뢰를 부탁해왔다. 평소 아시아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지닌 미란다 커에게 특별한 한복을 입히고 싶었고 그녀의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한복 디자인을 의논하러 팜스프링스까지 갔다. 40분에 걸친 한복 프리젠테이션을 마치고 한복 디자인을 함께 고민했고 푸른 눈동자를 가진 커에게 청순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연한 핑크와 쪽빛색이 들어간 한복을 입혀 보냈다”고 밝힌바 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한복은 일종의 파티 패션이다. 박 대표는 온라인 소매를 활성화해서 한복의 대중화를 가속화할 계획이다.
“결혼식 용도가 40%이고 일반적으로 파티 드레스로 한복을 많이 입어요. 주요 행사마다 한복을 찾는 2세들은 꼭 드레스를 고집하지 않죠. 에브리데이(평상복) 한복이나 스트릿웨어 한복(티셔츠에 한복 문양을 새긴)으로 멋을 냅니다. 패션 감각이 뛰어나 믹스앤매치를 하는데 한복 저고리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선입견도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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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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