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증 궤양성 대장염도 치료하면 1년 내 삶의 질 크게 향상
국내에서 생소한 질환으로 여겨지는 염증성 장 질환(궤양성 대장염, 크론병)은 장에 만성적으로 염증이 발생하는 희소 난치성 질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염증성 장 질환은 인식이 잘 되지 않아 설사·복통 등의 증상을 꾀병이나 스트레스, 단순 질환으로 오인해 가볍게 여기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게 되는 환자가 많다. 김태일 대한장연구학회 회장(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궤양성 대장염은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젊은 연령대에서 주로 발병하기에 치료와 관리를 잘 받지 않으면 신체적 고통은 물론 불안이나 우울, 사회적 고립감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궤양성 대장염, 복통ㆍ설사ㆍ혈변 등 증상
이 중 궤양성 대장염은 전체 위장관 중 대장에 국한돼 만성적으로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복통과 설사, 혈변, 점액변, 대변 절박증(참을 수가 없어 급하게 배변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중증이라면 입원 치료가 필수적이다. 온몸에 열이 나고 다량의 혈변, 구토, 전신 쇠약감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크론병은 식도와 위, 소장, 대장, 항문에 이르는 소화관 전체에 만성적인 염증과 궤양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국내 크론병 환자 40~50%는 항문 주위에 염증이 있다. 재발을 반복하는 치루(痔瘻) 또는 항문 주위 농양이 있으면 크론병을 의심할 수 있다.
궤양성 대장염은 1980년대 이전까지는 매우 드문 질환으로 인식됐지만, 이후 환자수가 꾸준히 증가해 2019년까지 최근 10년간 2.32배 증가했다(질병관리청).
천재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2019년 기준 궤양성 대장염 3만7,000여 명, 크론병은 1만8,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며 “이는 10년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국내에서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시사한다”고 했다.
궤양성 대장염은 20~30대 젊은 층에서 주로 나타났지만 최근 60세 이상 고령층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환자가 급증한 것은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구화된 식습관이나 항생제ㆍ소염진통제 등의 빈번한 사용이 장내 세균을 변화시켜 질병 발생을 촉진했다고 추정된다.
명승재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전 대한장연구학회 회장)는 “우리 식습관이 서구적으로 바뀌면서 ‘선진국형 질환’인 염증성 장 질환 등 소화기 질환이 급증하고 있지만 아직 국민 인식이 낮아 조기 진단과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고성준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은 생명에는 큰 지장은 없지만 완치가 거의 불가능하며 악화되면 대장암까지 유발할 수 있어 꼭 치료해야 하는 질환”이라고 강조했다.
증상이 심한 중등도-중증 궤양성 대장염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삶의 질이 대폭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익현·이강문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팀이 궤양성 대장염 환자 276명을 대상으로 질환 초기 삶의 질 변동에 대해 분석한 결과다.
조익현 교수는 “중증도 이상의 심한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도 꾸준하게 치료를 잘 받으면 진단 후 첫 1년 이내에도 삶의 질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며 “희망을 갖고 의료진과 함께 꾸준히 치료를 받는다면 증상의 호전과 함께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설사 4주 지속되면 대장 내시경검사 해야
병 진단을 위해서는 대장 내시경검사가 필요하지만 설사·혈변이 나타난다고 무조건 대장 내시경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설사가 4주 이상 지속되거나 △혈변과 점액변이 동반되거나 △설사가 있으면서 가족 중 염증성 장 질환 환자가 있거나 △금연 시작 후 혈변이 생기면 소화기내과 전문의에게서 대장 내시경검사를 받기를 권한다.
최근 ‘대변 칼프로텍틴 검사’가 도입돼 내시경검사를 하지 않고 대변만 분석해 간단한 선별 검사도 가능해졌다.
궤양성 대장염은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 아니다. 다만 환자 중 10명 중 1~2명은 일생 동안 대장절제술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어린 나이(40세 미만)에 진단 △염증이 넓고 심함 △가족력 △잦은 재발이 있으면 절제할 가능성이 높다. 합병증으로 이어진다면 예후도 나빠진다.
궤양성 대장염 환자 중 3%에서 천공, 독성 거대 결장 등 심한 급성 국소 합병증이 나타난다. 또한 20%에서 중증 궤양성 대장염이 생길 수 있는데, 이 경우 사망률이 1%로 증가한다.
궤양성 대장염은 유병 기간이 길수록 대장암 발생 위험도 함께 증가하므로 증상이 없어도 꼭 치료받아야 한다. 실제로 30년 간 이 질환이 있으면 대장암 발병률이 9.5%로 증가한다.
◇생물학적 제제 등 새로운 치료 옵션 등장
궤양성 대장염 치료법은 염증 범위 및 중등도에 따라 다르다. 전통적인 1차 치료제로는 메살라진 성분의 5-SAS 경구제와 스테로이드, 면역 억제제 등이 사용되고 있다.
항염증제 및 면역 조절제에도 반응하지 않는 중등도 또는 중증 환자에게 장 염증 원인 물질 자체를 차단하는 생물학적 제제인 킨텔레스(성분명 베돌리주맙), 스텔라라(우스테키주맙), 휴미라(아달리무맙), 레미케이드(인플랙시맙) 등이 활용되고 있다. 최근 경구 약인 인터루킨 억제제와 야누스 인산화 효소 억제제(JAK 억제제)가 궤양성 대장염 치료 옵션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지난 2월 새로운 메커니즘의 제포시아(오자니모드ㆍBMS제약)가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 품목 허가를 받았다.
고성준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이 있으면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상담을 받고 약을 복용해야 한다”며 “약을 임의로 중단하면 중증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항생제나 소염진통제의 장기적인 사용을 피해야 한다.
이 약들은 장내 세균 분포를 바꾸거나 세균이 장벽으로 침투하는 투과성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궤양성 대장염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뚜렷한 음식은 없지만, 염분ㆍ당분이 많은 음식과 소·돼지 같은 육류는 염증을 악화하기에 되도록 적게 먹는 것이 좋다. 단백질은 생선 등으로 섭취하는 게 좋다.
천재영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은 완치가 어렵지만, 적절한 약물로 증상과 염증을 잘 조절할 수 있다”며 “치료를 중단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염증성 장 질환은 지속적인 치료와 함께 좋은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을 권장한다”며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체력적으로 부담되지 않는다면 운동도 습관화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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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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