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희민 목사 삶과 업적
▶ 한국전쟁 때 선교사의 꿈 키워…60년대 에티오피아 선교사 파송, 나성영락교회 2대 담임 부임 후 모범적 대표 교회로 성장시켜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 귀감 “큰 별 졌다”… 한인 교계 추모
고 박희민 목사는 나성영락교회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나성영락교회를 남가주 한인 교계를 대표하는 모범적 교회로 성장시킨 후 지난 2003년 아름다운 운퇴를 선언해 한인사회와 교계에 감동을 안겼다. 사진은 고인이 지난 3월5일 열렸던 나성영락교회 창립 50주년 기념예배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던 모습. 오른쪽부터 고 박희민 목사, 박은성 나성영락교회 담임목사, 림형천 전 담임목사. [나성영락교회 제공]
26일 소천한 고 박희민 목사는 남가주 한인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거목이자 큰 어른이었다. 에티오피아 선교사를 거쳐 미국에 유학온 후 뉴욕과 캐나다에서 성공적인 목회 활동을 하고 1988년 LA의 나성영락교회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과 열정적인 선교 중심 목회, 그리고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는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목회자의 귀감이 됐다. 또‘아름다운 은퇴’로 한인사회에 감동을 준 큰 인물이었다. 고 박희민 목사의 소천 소식에 한인 교계는“큰 별이 졌다”며 한 목소리로 추모하고 있다.
고인은 1936년 충남 예산에서 교육자 집안의 4남2녀 중 4남으로 태어나 김천고등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숭실대학 사학과를 수석졸업했다. 박 목사는 한국전쟁 때 시골교회를 다니다가 어느날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자신이 왜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설교를 듣고 선교사의 꿈을 키웠다.
한국 교회가 선교사 파송을 생각하기 힘들었던 1968년 에티오피아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2년 후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자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토론토대학 녹스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학에서 메릴 펠로우 연구생활을 했다. 2017년에는 아주사퍼시픽대학(APU)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박희민 목사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30년간 선교지향적인 목회를 지속했다. 뉴욕 롱아일랜드 교회를 거쳐 1974년부터 토론토한인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14년간 사역한 후 1988년 초 고 김계용 목사의 후임으로 나성영락교회 2대 담임으로 부임했다.
2003년 은퇴할 때까지 15년 동안 교회가 다양한 갈등이 상존하는 이민 사회에서 영적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는 모범적인 교회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공헌했다. 은퇴 후 후임목사의 소신목회를 위해 원로목사로 남기를 사양하고 교회를 완전히 떠나 ‘아름다운 은퇴’의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새생명선교회를 설립해 북방과 이슬람 등 해외선교에 전념했다.
선교회를 통해 중국, 과테말라, 동티모르, 몽골 등의 국가에서 교회 설립을 지원했고 필리핀, 루마니아 등 5개 국가에서 교회 지도자 세미나를 개최했다.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된 2020년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45개 미주 한인교회를 선정해 4만5,000달러를 전달했으며, 2021년과 2022년에도 100명씩의 장학생을 선발해 15만 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한 바 있다.
박희민 목사는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한흑기독교연맹 공동회장, 우리민족서로돕기 미주대표, 4·29 장학재단 이사장, 풀러신학교 이사 등 수많은 사회 단체와 기독교 단체의 대표를 맡았다.
지난 2010년에는 한국일보 미주본사와 라디오서울,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LA총영사관이 공동주최하고 박희민 목사가 대표 회장으로 재직했던 미주성시화운동본부가 주관하는 ‘성탄절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통해 한인들의 사랑으로 모은 쌀 1만5,000포와 컵라면 등을 소외 이웃을 돕는 LA 사회봉사기관, 생활보호 대상자 및 독거노인, 결식아동, 경제난에 처한 가정 등에 배부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방장관상, 캘스테이트 대학이 수여하는 아시안상, 숭실대학교의 추양목회대상,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수상했다. ‘예수의 침묵’, ‘이전보다 큰 영광’, ‘21세기 영적 리더십’ 등 30여권이 넘는 신앙서적을 저술했으며 번역서로 ‘유머 있는 설교’가 있다.
평소 건강하던 고인에게 전립선 암이라는 병마가 닥친 것은 지난 2018년 무렵이다. 고인과 가족들에 따르면 그해 6월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 종합검진을 했는데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당시 캐나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임파선을 타고 심장, 폐, 골반, 뼈에 퍼진 상태였다”며 “충격적이었지만, 이내 추스르고 치료와 기도에 힘썼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죽음에 가까웠던 경험’이 결과적으로 유익했다고 회고했다. “삶을 제대로 돌아보게 됐고, 죽음 앞에 서니 명예나 물질보다 본질적인 것에 자연스레 초첨을 맞춰 살아가게 됐다”는 것이다.
금년 봄 KCMUSA에서 출간한 ‘미주한인교회사’는 박희민 목사가 발행인으로서 남긴 마지막 유작이다. 미주한인교회사는 총 872페이지 분량으로 한인 이민 선조들이 1903년 호놀룰루 항구의 한 주택에서 드린 창립예배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인교회 역사를 고스란히 수록한 귀중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발행인 인사말에서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미주한인교회사를 출간한 것은 한인 교회의 새로운 도약과 발전의 전환점이 될 뿐아니라 200주년을 향한 이민 교회의 비전을 바라보게 하는 도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전한 바 있다.
박은성 나성영락교회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계 지도자들은 “평소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성도들과 후배 목사들을 암탉처럼 품은 고인의 일생은 한인 교계의 귀감이었다”고 추모했다.
고 박희민 목사 연보▲1936년 충남 예산 출생
▲장로회신학대학 졸업
▲프린스톤신학교 대학원 석사
▲토론토대학 녹스신학교 박사
▲하버드대학 메릴 펠로우
▲APU 명예 인문학박사
▲에티오피아 선교사
▲뉴욕 롱아일랜드교회 시무
▲토론토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나성영락교회 2대 담임목사
▲캐나다 장로교 한인교회협의회 회장
▲미주한인장로회 총회장
▲미주장로회신학대학 학장
▲외항선교회/월드컨선 미주회장
▲풀러신학교 재단이사
▲한인세계선교협의회 공동의장
▲새생명선교회 대표
▲재미한인기독선교재단 이사장
▲캐나다 한국일보 논설위원
▲미주 기독일보 편집고문
▲미주 복음방송국 운영 이사장
▲2023년 4월26일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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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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