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엔 비가 많이 왔다. 최선을 다해 물을 줘도 겨우 피는 것 같던 꽃들이 낯설게 풍성해졌다. 자연의 힘이다. 그 힘에 기대, 몇 년 가물어 못한, 어린 나무 옮겨심기를 신나게 하고서, 신나게 몸살도 치렀다. 뭐 그런 거다. 꽃들이 아름다운 만큼, 이미 무릎 위까지 차오른 들판의 풀 덕에, 할 일이 더 많아진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할 몫이다. 비는 평등이다. 꽃이라고 더 주고 풀이라고 가리지 않는다. 빈부건, 인종이건 가리지 않는다. 사회의 법칙이 이렇게 비와 같을 때, 세상엔 정의가 선다. 왜냐하면, 정의는 평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사전상 정의를 정의하는 것은 '모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평등'이다. 모두의? 풀과 꽃이다. 이 평등이 깨지게 되면, 정의란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차별은 정의를 방해하는 일차적인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세상은 그 차별이 아무렇지도 않게 위세를 떨치는 경향이다. 특히 인종 차별과 빈부 간의 차별이 두드러진 현상이다. 차별이 존재하는 곳엔 당연히 정의란 없다. 정의가 없으면 폭력이 묵인되게 된다. 사회가 혼란해질 수밖에 없다. 해서, 정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사전상의 정의는 '평등하게 혜택이 주어져야 구현'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법을 적용하면 모두가 좋은 쪽에 그 정의가 서야 하고, 소크라테스의 법을 들이밀면 선한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 정의이다. 누구의 해석이 뭐든, 정의란 바를 정, 바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으면, 지켜질 수 없다. 바른,은 중도이고 핵심이며, 과녁 정 중앙이다. 비가 와서 꽃만 많이 피는 것이 정의일 수 없고, 풀도 미친 듯이 자라는 것까지가 정의이다. 그 핵심을 알려면 기후에서부터 자연의 운행 전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의 핵심을 알려면, 전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세상 모든 일에 그 중간을 정확히 깨우쳐 알 자는 많지 않다. 그리하여, 정의 사회의 실현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꿈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레 미라제블>에 나오듯이, '정의는 완전무결할 때에만 옳다' 이다. 그만큼 정의는 치우쳐서도, 허술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평등한 법이 필요하고, 그래서 세상에 정의로운 지도자가 필요하고, 사회의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개개인의 바른 실천이 필요하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평등에서 까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가 우선이라 우기고, 사회 중심은 사라지고, 흐려지고, 거짓이 늘고, 점점 더 정의를 찾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간다. 이런 세상에선 정말 정의로운 영웅이 필요하지만, 영화속에서 조차도 결함 없는 영웅은 없고, 정의에 무모하리만치 앞장 서야할 청년 세대들이 요즘엔 어느곳, 어느 사회에서든, 이상하게 조용하다. 그들의 슬로건이 옳든 그르든, 정의를 외치는 젊은 세대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런데, 통계에 의하면, 요즘은 반대로, 조용히 산으로 들어가는 청년 은둔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운동인가, 논리를 비약해 보게 된다. 봄비 온 산하에 내리고, 겨울엔 눈 내려 세상을 수묵화를 만드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그 자연스러움이, 그 바른,이 통하지 않는 현 세상에 대한 저항인가 싶어서다. 저항이 아니라면, 그들은 지금 심신이 아프고, 현 세상에 지쳤다는 거다. 많은 이가 이미 아다시피 자연은 치유의 공간이다. 숲은 심신의 안정과 휴식을 주는 힘이 있다. 서로 양보하며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철칙인 자연, 그것이 통하지 않는 현 세상에서, 청년들은 힘과 부를 가진, 한 쪽만 좋은,이 아닌, 평등한, 중심 잡힌, 그런 자연스러움이 절실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연밖에 기댈 곳이 없다고, 자연 속으로 깃들고 있는 것일 지도. 이왕 간 김에 산 속에 나무 한 그루라도 심어준다면 고맙겠다. 그리고 자연의, 지치지 않는 힘을 배워, 그곳에서든, 어느 세상에서든, 정의를 위해, 정의롭게 살 힘을 다시 얻었으면 한다. 그 편이 컴 속에 숨어, 행동하지 않는 젊음보다 낫다고 믿는다.
<동진 스님(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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