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사랑 대한민국’ 펴낸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박정희 시대와 싸워온 해외민주화운동사 복원
북한의 침투공작·장도영 전 육참총장 극비 방북
김형욱 전 중정부장의 친북 선회 등 일화 담겨
무지와 어둠이 만났을 때, 지식인의 선택은 무엇일까. 폭력과의 내통 아니면 저항으로의 질주. 그는 어둠의 공범자, 폭력적 권력의 내통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시대가 직면한 국가적 야만, 몽매함과의 곤고한 투쟁을 의미했다. 정기용 씨가 ‘영원한 사랑 대한민국’(정음서원 간)을 펴냈다. ‘한민신보 발행인 정기용의 해외민주화운동 비망록’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자유에 목말랐던 자들의 존엄한 저항의 기록이다. 그것도 해외에서 모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흔치 않은 장렬한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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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통과 김대중의 역할 조명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갈구한 시대에 해외동포들이 민주화를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지, 그 실제를 기록해놓고 싶었습니다. 감춰진 역사가, 그러나 꼭 밝혀야 할 내용들이 몇 십 년 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기록으로 남겨지게 돼 감회가 깊고 사명감을 완수한 기분입니다.”
그는 오래 묵은 일생의 숙제를 해결했다는 듯 홀가분하게 말했다. 그는 1965-80년, 이른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어둠을 직관했다. 그리고 침묵하지 않은 자들의 여적(餘滴)을 복원시켜냈다.
책은 ▲6.3사태와 한민통 그리고 김대중 ▲유신시대의 명암들 ▲북한의 재미동포사회 침투공작 ▲박정희 피살과 광주항쟁 ▲워싱턴에서 만난 인물들 등 모두 5화로 구성돼 있다. 부록으로 필자가 본보에 게재했던 칼럼이 수록됐다.
그는 책을 처음 받아본 순간, 박정희 유고의 날, 호외를 찍고 주미대사관에 홀로 조문을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한다.
“그 시대는 건설의 욕망, 민주화의 욕망이 대립한 시기였어요. 박정희는 기아선상의 백성을 구했지만 그 방법이 잔인했어요. 나치 식, 김일성 식의 인권탄압을 하지 않으면서도 건설과 기아해결을 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대가가 바로 김재규의 총입니다. 일종의 업보지요.”
■북한 밀봉교육 체험담 소개
책은 흥미로움을 넘어 우리 현대사에서 잊힌 긴박하고 내밀한 일화,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왜곡돼온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의 실체와 활동상을 소상히 다뤘고, 5.16군사정변 이후 숙청된 장도영 전 육군참모총장 방북 사건, 미국으로 망명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친북 선회와 실종사건의 연관성 등은 처음으로 공개되는 비화다.
1970년대 들어 북한이 재미동포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한인들을 회유, 공작을 벌였는지를 보여주는 내용도 눈길을 끈다. 특히 스웨덴에서 받은 밀봉교육 등 저자가 직접 겪은 북한의 정교한 공작 실태도 증언하고 있다. 한국의 순수한 학생시위를 피의 혁명으로 둔갑시키려는 충격적인 북의 간계도 고발하고 있다.
광주항쟁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가 백악관 앞에서 벌인 89일간의 1인 시위는 해외민주화운동의 화룡점정이다.
그가 교유했던 한국의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도 등장한다. 서민호, 이철승, 김대중, 김영삼, 양일동, 이기택, 그리고 김재준 박사와 최은희의 납북을 예상한 신상옥 감독 등의 단편들은 거장들의 인물됨을 흥미롭게 엿볼 수 있는 관음의 리얼리티다.
■해외민주화운동 재평가 강조
정기용 씨는 해외 민주화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국은 해외동포들이 독재세력들에 맞서 어떻게 싸워왔는지,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 무관심합니다. 민주진영에서조차 방외(方外)의 기억으로 폄하해요. 그것은 반쪽짜리 민주화운동사이자 역사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은 미국 정부였어요. 유신 이후 한국의 양심에 재갈이 물렸을 때 백악관이 소재한 워싱턴에서 한국 동포들의 격렬한 민주화운동, 반독재 투쟁이 계속 되는 것은 박 정권의 목에 걸린 가시처럼 커다란 장애물이었어요. 미국 등 외국을 움직인 해외 민주화운동은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1940년 서울에서 난 그는 중동고와 동국대 정치학과를 다녔다. 당시 굴욕적 한일협정에 반대한 6.3 학생시위를 주동했으며 65년 자의반 타의반 도미했다. 압제자의 언어에 맞선, 그의 저항의 방식이자 무기는 71년 창간한 <한민신보>였다. 이 반독재 민주화 신문을 16년간 운영했으며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창립 멤버로 홍보위원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으로 미국에서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의 부친이 하던 사업은 무너졌고 가족은 수시로 협박을 받았다. 생계는 부인 정문자씨의 몫이어야 했다.
그래도 그의 열정은 막 터진 화산 같았고, 신념은 금강의 바위처럼 굳건했다.
“그렇지만 민주화운동은 내 혼자 한 게 아닙니다. 다른 동지들과 함께 한 것이고 미국 등 외국의 압력이 한국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해외에 유학이나 이민을 와 공부와 생업을 접고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헌신을 모국이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진보-보수싸움에 대한 경고
그는 보수-진보로 갈려 진절머리나게 싸우는 작금의 한국 정치현실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냉전 이후 지금도 보수, 진보로 갈려 싸우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밖에 없어요. 이건 진보, 보수의 싸움이 아니라 그 본질은 패권싸움이고 권력투쟁입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찌해서 여기까지 왔는가, 고민하고 앞날을 생각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는 빛을 잃었다. 몇 해 전, 당뇨 합병증의 결과다. 시대의 어둠과 싸워온 그가 다시 어둠에 갇혔다. 시력의 상실과 노화는 그에게서 육체의 활기를 앗아갔다. 책도 정밀한 기억에 의한 구술로 이뤄진 작품이다.
그러나 그는 어둠에 억류되지 않고 빛 없이 존재하는 활연(豁然)의 세계에서 그만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고 한다. 한 잔의 술로 만년의 위안을 삼으며….
문의 고대현 워싱턴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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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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