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 리튬협의체 설립 공식화…칠레·볼리비아·브라질 참여 유력, 인니는 ‘니켈판 OPEC’ 논의 주도
▶ 호주·캐나다 등 합류 제안하기도…G7은 ‘구매자 클럽’ 결성 본격화, 특정국가 의존도 낮추기로 맞대응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닮은 리튬수출국기구(OLEC·가칭)의 등장이 임박했다. 석유를 등에 업고 국제 정세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OPEC의 역사가 재연될 수 있다는 의미다.” (포브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달 초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국제광업인연차총회(PDAC)에서 중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리튬협의체 설립 구상을 공식화했다. 이 자리에서 페르난다 아빌라 아르헨티나 광물부 차관은 “생산량 조절과 가격 책정 등 여러 면에서 OPEC을 모델로 삼겠다”며 ‘리튬카르텔’ 출범을 예고했다. 리튬협의체에는 칠레·볼리비아·브라질 등의 참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이들 국가에는 전 세계 리튬의 절반 이상이 매장돼 있다. 다만 세계 ‘톱3’ 리튬 보유국이 뭉친 리튬연합체의 목표는 단순히 자원 권력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채굴된 리튬을 가공해 배터리와 전기자동차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자체 해결하겠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리튬삼각지대(볼리비아·아르헨티나·칠레)’가 속한 남미는 일찍이 수출 금지 등으로 리튬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왔다. 리튬 매장량 기준 세계 1위인 볼리비아가 2008년 리튬을 국유화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리튬을 ‘전략자원’으로 지정했고 세계 리튬 매장량의 약 2%를 보유한 멕시코는 아예 이를 국유화하는 법안을 공포했다. 당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러시아도, 중국도, 미국도 (리튬에) 손댈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은 전기차와 스마트폰 배터리의 핵심 소재로 전 세계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가격도 ‘오늘이 가장 저렴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치솟았다. 블룸버그의 리튬가격지수는 2021년 3월 177.93에서 올해 3월 1026.84로 2년 만에 6배 가까이 뛰었다. 지난해 정점을 찍은 뒤 경기 침체의 여파로 상승세는 한풀 꺾였지만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만큼 언제든 다시 오름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평가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 리튬 수요가 2020년 대비 42배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이미 2030년께는 리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줄을 잇고 있다.
카르텔 결성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리튬만이 아니다. 향후 20년간 19배의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니켈을 둘러싼 눈치 싸움도 치열하다. ‘니켈판 OPEC’ 논의는 인도네시아가 주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이기도 하다. 바릴 라하달리아 인도네시아 투자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성명에서 “배터리 원료 생산국들이 부가가치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며 또 다른 니켈 생산국인 호주와 캐나다 정부에 OPEC 같은 특별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인도네시아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2020년부터 니켈의 원광 수출을 금지한 상태다. CNN은 “리튬·코발트·니켈 등 고부가가치 광물을 보유한 국가가 이들 상품에 대한 높은 수요를 바탕으로 지정학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했다.
핵심 원자재 보유국들의 ‘공동 대응’ 선언이 잇따르자 수입국들도 맞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을 중심으로 특정 국가에 대한 핵심 광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구매자클럽 결성도 본격화하고 있다. 16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에는 ‘핵심원자재클럽’ 창설 계획이 담겼다. EU는 G7 중심의 클럽을 만들어 아프리카·아시아 등의 주요 광물 수출국과 협정을 맺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국 간 자원 확보 경쟁을 방지해 자원을 무기로 삼은 수출국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20세기에는 석유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했지만 21세기에는 핵심 광물 확보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자원 보유국들이 담합해 OPEC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니켈판 OPEC만 해도 당장 니켈 매장량 5위인 캐나다가 참여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등 국가 간 이해관계가 다르다. 자원 개발 산업을 자체 운영하기에는 중남미나 인도네시아 같은 자원 보유국들의 기술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 요소다. 인도 더트리뷴은 “칠레 등지에서 채굴된 리튬이 광산 바로 옆집의 전기차나 스마트폰 배터리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주 먼 여정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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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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