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에 진출작업 본격화
▶ 러, 인프라 구축에 31조 투입…해수부, 러 개발계획 분석 돌입
수에즈 거치는 남방 항로보다 운항거리 32% 줄어 물류비용↓
내년 물동량 5000만톤 기대 속 한, 국적선사 진출기반 마련 구상…지정학적 리스크·한러관계가 변수
기후변화에 따른 해빙으로 북극 항로의 경제적 가치도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가 유럽과 아시아 간 최단 항로로 꼽히는 북극 항로 진출 작업을 본격화한다.
12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다음 달 러시아 정부의 ‘2035 북극해 항로 개발계획’ 분석 작업에 착수한다. 앞서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8월 해당 개발 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2035년까지 1조 8000억 루블(약 31조 4000억 원)을 투입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북극 항로 인프라를 개발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크게 화물 기반, 교통·인프라, 화물선·쇄빙선, 항해 안전, 항해 관리 및 발전 등 5개 분야로 구성돼 총 152개 정책 과제가 담겼다.
해수부가 러시아 개발 계획 분석에 착수한 것은 북극 항로 진출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다. 러시아 북쪽 해안과 맞닿은 북극 항로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최단 항로다. 당초 북극 항로를 운항할 수 있는 기간은 1년 중 8~9개월에 불과했지만 기후변화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북극 항로 운항 기간도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르면 내년부터 북극 항로 연중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북극 항로 물동량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북극 항로 물동량은 2018년 2020만 톤에서 2021년 3487만 톤으로 3년 새 72.6%(1467만 톤) 급증했다. 내년 북극 항로 물동량은 5000만 톤 안팎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해수부의 한 관계자는 “이상기후로 북극해의 해빙기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관측돼 러시아도 북극 항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해빙기가 길어지고 북극 항로 관련 서비스가 활성화하면 관심을 갖는 선사도 급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극 항로의 최대 강점은 경제성이다. 부산항에서 북극 항로를 거쳐 유럽 최대 무역항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가는 운항 거리는 약 1만 5000㎞다.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기존 남방 항로(약 2만 2000㎞)보다 32%가량 짧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수에즈운하 통항료도 아낄 수 있다. 그만큼 운항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 물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대체 항로로 갖는 의미도 작지 않다. 북극 항로를 제외하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로는 사실상 남방 항로가 유일하다. 주요 항로가 하나밖에 없는 만큼 2021년 불거진 ‘에버기븐호 좌초 사건’ 같은 돌발 상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당시 초대형 컨테이너선인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에 좌초하며 약 일주일 동안 운항이 마비돼 아시아와 유럽 간 96억 달러(약 12조 6800억 원) 규모의 화물 운송이 지연됐다.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는 변수다. 지난해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대표적이다. 당초 러시아 정부는 북극 항로 개발에 투입할 1조 8000억 루블 중 7830억 루블을 외부에서 조달하려 했지만 서방 중심의 국제 제재로 계획이 꼬였다. 현대글로비스도 북극 항로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글로비스는 2013년 북극 항로 시범 운항에 성공했지만 이듬해 크림반도 강제 합병 사태가 터지며 사업 계획을 철수했다.
얼어붙은 한·러 관계도 풀어야 할 문제다. 한·러 관계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급격히 악화됐다. 한국이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자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며 맞불을 놓았다. 러시아가 자국 해안과 맞닿은 북극 항로 개발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만큼 한·러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지 못하면 북극 항로 진출은 요원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장기적 관점에서 북극 항로 진출 사업에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성원 영산대 북극물류연구소 소장은 “현재 정세를 보면 북극항로 진출은 1~2년 내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며 “하지만 신항로 개발은 초기 리스크 부담이 큰 만큼 정부가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해 기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해수부는 다음 달부터 무르만스크항 등 북극 항로 허브항과의 협력 사업도 발굴할 방침이다. 부산항 등 국내 주요 항만과 북극 항로 허브항 간 협력 사업을 통해 HMM 등 국적 선사의 진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북극 항로 허브항 인프라의 개발 사업을 공동으로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해수부 측은 “이미 북극 항로의 경제안보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된 상황”이라며 “단 북극 항로 협력 사업은 한·러 관계가 안정된 후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홍 소장은 “러시아도 조선업 기술력을 갖춘 한국이 필요할 것”이라며 “향후 협력을 대비해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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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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