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속담 가운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라는 말이 있다. 보통 '꼴 보기 싫은 사람을 하필이면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악연'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인다. 참으로 거북하고 꺼리고 싫어하는 미움의 대상인데 어쩌다가 피할 수 없는 곳에서 공교롭게 맞닥뜨리게 되어서 무척 괴로운 상황인 것이다. 아마도 인생을 살다보면 그런 상황 가운데 놓인때가 한 두번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만약에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으로 난처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상황이 반전의 기적을 불러올 수 있다.
내가 실제로 그런 상황을 최근에 경험하게 되었다! 어느 주일에 교회 예배를 은혜롭게 잘 마치고 다른 한 교회의 특별 행사에 한 순서를 맡아서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순서를 맡은 목사님들이 맨 앞줄 지정석에 같이 앉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목사 안수 받을때에 나를 시취했던 대선배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목사님이 당시 일부러 대답하기 불가능한 질문들을 던지면서 나를 아주 큰 곤경(?)에 빠뜨렸었다. 정말 그 목사님 때문에 지옥같은 시취가 되 버렸다. 그 뒤로 그 목사님을 보면 원수 같이 여겨지고 치가 떨렸는데 그런데 그 목사님이 나보다 먼저 와서 맨 앞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15년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그 순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구나!”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만약에 순서를 맡지 않았다면 그 자리를 피해서 다른 자리에 가서 몰래 앉으면 되지만 순서 맡은 목사님들은 맨 앞줄에 같이 앉아야 했기에 피할수 도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말그대로“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정면 돌파(?)하는 것으로 결단을 내렸다. 아주 큰 미소를 지으면서 목사님께 다가가서 아주 공손히 그리고 매우 반가운 어조로, “목사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라고 하면서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목사님이 나를 보자마자 매우 반가워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동안 꽤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목사님은 백발이 되셨고 무척 야위여 보여서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어서 목사님께서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김 목사님 아버님을 달라스에서 뵙고 아주 훌륭한 아들 목사님이라고 칭찬을 많이 해드렸습니다.”라고 말 했다. 그리고 제가 종종 새벽마다 목사님 목회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부끄러운 마음이 확 들었다. 나는 목사님을 원수(?) 취급하면서 피해 가려하다가 어쩔수 없이 인사를 드린것인데 목사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고 또한 자주 기도해 준다고 하니 정말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있었던 오래 묵은 미움의 응어리가 단번에 풀어졌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덕택(?)에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이번 튀르기예 지진 복구 현장 가운데 이루어졌다라는 말을 들었다. 바로 튀르기예와 아르메니아가 완전 화해했다는 이야기다. 이 둘의 관계는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튀르키예의 아제르바이잔 지원 때문에 사이가 험악했고 말 그대로 원수 같은 관계였다. 그런데 이번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아르매니아가 구호대를 보냄으로 두 나라가 원수 같은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 서로 돕고 협력하는 친구 같은 관계로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 가운데 잔잔한 감동이 몰려왔다. 그러면서 혹시나 인도적 차원에서 튀르키예에 지진 재난을 돕고자 구호대를 보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이번 일로 원수 같은 관계가 회복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니 원수는 반드시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야 한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래야 관계 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아니하겠는가. 따라서 혹시나 다음에 원수 같은 존재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면 무조건 피하려 하지 말고 관계 회복의 기회로 삼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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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목사 (새누리 선교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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