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우리가 아는 미국이 아니다. 질서와 규범은 몸에 배어 있었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정의는 변함없는 미국인의 가치였다.
그것은 보수와 진보, 민주와 공화당… 이런 정치적 카테고리와 무관했다. 대다수 미국인들의 모습이었다.
미국이 변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분명한 건 인터넷, 셀 폰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신 문명의 이기들은 인류의 삶을 증진시켰다. 생활은 더 편리해지고 사람들은 더 똑똑해졌다. 세계는 긴밀하고도 열린 제국이 되어 가고 있다.
유튜버, 트위터, 페이스 북 같은 소셜 미디어의 보급은 가히 혁명적 변화를 초래했다. 인간의 관계와 사회상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류가 수천 년 누적해온 전통은 소멸되고 지능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정치 지형도 급변했다. 소수의 정치 엘리트와 미디어가 독점해온 정보 전달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정보의 소비자였던 유권자들은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가 되었다. 권력의 전복적 이동이다.
이러한 신문명에 미국인들을 더 행복해졌나. 이 물음 앞에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현실은 마음 편하지 않다. 소통은 확대되었지만 사람과 사람의 체온 담긴 대화나 만남은 사라지고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친절한 웃음은 희미해지고 운전자들은 급해졌다. 몸은 풍족해졌지만 마음은 더 행복하지가 않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더 확연하다. 민주와 공화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정당이었다. 상이한 정책도 ‘하나의 미국’이란 목표 아래서 협상 가능한 이해관계였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절제된 타협의 방식은 실종됐다.
동시에 정치 양극화, 경제 불평등, 인종 갈등은 심화되었다. 생태계는 파괴되고, 기후 위기는 점점 인류의 목을 조여 오고 있다. 금융자본을 통한 부의 획득과 무한 확장은 제어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상징적이다. 미국이란 공동체의 정치적 규범을 무너뜨리는데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선거는 부정되고 폭동으로 의회가 유린됐다. 선동의 광기는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 증오는 유령처럼 내셔널 몰을 배회하고 있다.
미국은 분명 변했다. 긍정의 변화가 아니라 두려운 퇴보다. 확장된 개인의 정치적 영향력은 정치를 진화시키지 못했다. 신문명이 가져다준 이 역설 앞에서 정치의 의무는 무엇일까?
그것은 위협 받는 민주주의의 둑을 지켜내는 것이다. 갈라지고 찢어진 미국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미국인들에 내재한 전통적 선의의 가치를 복원시켜내는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정가는 너무 늙었다. 민주는 오합지졸이고 공화는 선동의 자장(磁場)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의 면모는 희망과 거리가 멀다. 자칭, 타칭 후보들의 리더십은 사생결단의, 분열의 틀 위에서 세포분열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할 때 가장 공화당원다운, 가장 미국인다운 한 정치인이 일선에서 물러난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다.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그는 부동산개발 및 중개업을 하던 기업가였다. 그러다 2003년 메릴랜드 주의 인사처장관을 맡으며 정계에 본격 뛰어들었다. 2014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그는 민주당 아성에서 공화당 주지사로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재임 기간 그는 존중과 보존, 절제와 균형…, 보수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가 강조한 보수주의의 가치와 규범을 실천해왔다. 그는 진영의 리더가 되는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대결보다는 타협, 갈등보다는 통합을 택했다. 억제되지 않는 당파주의와 결별하고 초당적 해법으로 새로운 메릴랜드 주의 길을 열었다.
2018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12% 차이로 누르고 재선된 건 바로 그의 합리적인 정책의 성과, 통합주의 노선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재임 8년간 민주당의 텃밭에서 70%가 넘는 경이적인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것은 호건의 정치가 보여준 더 나은 메릴랜드와 긍정의 유산에 대한 신뢰와 경외감의 표현이었다.
그를 돋보이게 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서 수시로 돌출하는 권력욕을 제어할 줄 아는 조용한 리더십, 암과 싸워 극복해낸 초인적 정신, 이민자인 한국인 부인과 결혼해 그 자식들까지 거두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낸 인간적 풍모는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 온건 정통 보수주의자를 외면하고 있다. 극단의, 선동의 정치에 휘둘리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것은 공화당의 상실을 넘어 미국의 미래를 포기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다워야 한다. 우리는 잃어버린 미국을 되찾아야 한다. 호건은 그럴 자격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지킬 만한 가치를 지킬 의무와 권리가 있다. 래리 호건, 그가 벌써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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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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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1)호건의 가치와 정치가 보존되고, 계승되고, 존경받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2)트럼프같은 저질인간들이 다수당이 된 하원, 하원의장 케빈 멕카시와 같은 저질 아류, 조지 산토스와 같은 노골적인 저질, 그리고 이미 저질로 판결된 짐 조단, 마조리 그린, 로렌 보버트, 그리고 Fox news... 이런 저질들이 공허당에서 활동하며 보수에게 기생하는한, 호건과 같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설 자리가 아직은 없다. 3)민주당은 개성이 강한 보편성의 풍토로 인하여 종종 무능을 드러내지만 저질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는 민주당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