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되는 연말이 다시 왔다. 트리와 반짝이는 전구들, 소비를 재촉하는 상품 광고들...연말이라 신난 건 상인들이나 아이들 뿐이지 않을까 ? 어른들은 회한으로 씁쓸하게 연말을 맞는 이가 더 많을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올 한해는 코비드 치성했던 때는 저리가라 싶게, 세상 전반 상황이 안좋았다. 물가 치솟고, 개스비 심각하게 오르고, 자연 재해에, 살기 참 버거웠다. 절도 살림살이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올해 대중들이 받은 가계의 타격 영향을 고스란히 얻어 맞았다. 긴축재정의 일순위로, 신도들이 절 보시금부터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가계가 우선이지, 절이 문제겠나. 원래 삶이란 엎치락 뒤치락,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지난 십 오년 어렵게 산 업력이 있어, 내리막도 괜찮았다. 한 해를 정리 요약해보자면, 나쁘지 않았다, 정도이니, 세상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연말이 있어 좋은 건 이런 부분인 거 같다. 흐르는 물에 종이배 하나 띄우듯이, 마음에 접혔던 것들 떠나 보내고, 망년이란 이름 빌어, 정리하고 잊을 수 있단 것이다. 예전엔, 연말은 망년회로 채워졌었다. 그 망년회가 출가 후, 세상에 나와보니, 송년회로 바뀌어 있었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망년'은 일본의 문화에서 온거니 쓰지 말자, 쪽으로 기울고, 송구영신,의 '송년'을 쓰자,가 대세가 된것이라 한다. 그런데 그 '망년'은 이미 당나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써왔던 거로 이 중은 알고 있었어서, 처음 대했을 땐 좀 어리둥절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여부야 뭐든, 한해를 마무리 하는 즈음쯤엔 잊을 건 잊어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잊고 싶은 일이 정말 많은 한 해 아니었는가. 속상하고 괴로웠던 일, 특히 트라우마로 남을 일들은 되도록 잊는 편이 좋다고 본다. 옛시절, 굳이 망년회란 이름까지 붙여 연말을 보냈던 건, 그만큼 시대적으로 잊고 싶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망각의 잇점과 필요성을 느껴서일 지도 모른다. 죽어서도 잊을 건 잊어야 해서, 망각의 강이란 것이 신화에도 나오지 않는가. 그러나 깊게 새겨진 상처나 기억들은 생각보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고통이다. 하지만, 과거는 없다, 고, 부처님은 처처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과거심 불가득'인데, 아무리 기억하고 싶은 것이라 한들, 어디 정처나 있겠는가. 그런 경지 까진 도인이 아니라서 모르겠다 하지 말자. 누구나 깨쳐 알 수 있다. 불교의 수행 과정 속에는 지워짐,의 경지가 있다. 수행이 어느정도 익으면, 좋은 업도 나쁜 업도 완전히 지워지는 순간이 온다. 수행 중에 수많은 업식이 사라지는 게,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 사리짐의 카타르시스는 그 무엇과도 비교하지 못한다. 고통스러웠던 80년대를 청춘으로 통과한 사람으로서, 그런 공부 과정이 있어서 얼마나 불교에 감사했는지 모른다. 여전히 지금도, 이 중에겐 세상에서 가치있는 것은 불교 이상은 없다. 그런 불교가 속세의 수많은 가치 앞에선 늘 뒷전으로 밀리는, 이곳 시절인연이 아쉽고, 이 중이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 그런 거 같아, 부처님께 늘 죄송하다. 그러나 흘러간 것은 흘러간 것이다. 흘러간 물 잡아 뵈야 헛손질이다. 씨쏘우처럼 내리고 오르며, 어제를 버리고 새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오늘을 새로 살기 위해선 어젤 잊으면 된다. 젊었을 때를 잊으면 현재의 늙음이 괴롭지 않고, 호시절을 잊으면 오늘의 불경기는 불경기가 아니며, 탑이었던 기억을 잊으면 평범한 오늘도 괜찮다. 니체는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정의 하면서, 망각이 '삶에 필요하고 삶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고 했다. 삶의 힘이 절실한 때이다. 모두가 올 연말엔 지난 일, 특히 원수진 일, 억울한 일, 가슴에 맺힌 일...다 잊어버리는, 인연시절이 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다 비워내고, 가벼워졌으면 한다. 삶은 지속되므로. 수행으로 안되면, 억지로라도. 왜냐하면 내년이라고 올해보다 더 상황이 나아질 거 같지 않기 때문이다. 뭐든 버리고, 가벼워지지 않으면, 삶이 너무 무거울 것이고, 버티기 더 힘들 것이다. 애니웨이, 귿 럭. 해피 뉴이어.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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