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서 백혈병으로 사망…톈안먼 사태 계기로 위상↑
▶ 중국 고속성장 이끌어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96세.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잇는 중국의 3세대 최고지도자이자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되는 기반을 닦은 주역의 퇴장으로 중국 현대사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장쩌민이 30일 낮 12시 13분 상하이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다 병세가 악화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장쩌민 동지의 서거는 당과 군, 각 민족 인민에 있어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고 발표했다.
1926년 8월 장쑤성 양저우에서 태어난 장쩌민은 상하이 명문 자오퉁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1946년 공산당에 입당했고 이듬해 대학 졸업 후 옛 소련에서 유학한 뒤 1956년 귀국해 기술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85년 상하이 시장이 되고 2년 뒤 당 정치국원에 오르며 중앙 정치의 한복판에 진출했다.
정치적 전환점은 1989년 톈안먼 사태 때였다. 전국으로 확산한 민주화 시위에 반대하면서도 상하이 거리에 메가폰을 들고 나가 학생들과 대화해 유혈 사태를 막았다. 그런 그를 눈여겨본 덩샤오핑의 전격 발탁으로 같은 해 중국 권력서열 1위인 공산당 총서기가 됐다. 이듬해에는 국가군사위원회 주석과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잇달아 올랐다. 1993년 국가주석에 등극하며 당·정·군권력을 움켜쥐었다.
‘경제 발전’과 ‘부패’. 장쩌민 재임 기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우선 성장우선주의와 개혁·개방을 통한 중국 경제 발전은 최대 공적으로 평가된다. 그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충실히 이행했다.
장쩌민 집권기의 중국은 연평균 9.3%의 고속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했다. 이 시기 중국은 ‘원바오(溫飽·생존을 위한 의식주 해결)’ 수준의 경제를 넘어 ‘샤오캉(小康·여가생활 가능) 경제’에 도달했다. 또 국내총생산(GDP)은 1조6,900억 위안(1989년)에서 9조5,900억 위안(2001년)으로 급등했다.
장쩌민은 자본가를 공산당원으로 받아들이면서까지 기업을 지원했고 거침없는 성장 드라이브를 걸었다. 공산당이 노동자·농민뿐 아니라 자산가·지식인의 이익까지 대변해야 한다는 ‘3개 대표 이론’으로 시장경제 도입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기도 했다.
굵직한 정치·외교 이정표도 세웠다. 경제 실적을 바탕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1997년),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권 획득(2001년) 등의 성과를 냈다. 홍콩 반환(1997년)과 마카오 반환(1999년)도 그의 임기 동안 이뤄졌다.
외신들은 장쩌민이 중국 지도자의 전형적인 틀을 깨는 인물이었다고 기억한다. 세련된 매너와 문화 소양으로 외교 무대에서 호평받았다. 1993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색소폰과 중국 전통악기 얼후(二胡)를 소재로 대화했고, 1997년 하와이 호놀룰루 방문 때에는 현지 전통 음악을 기타로 연주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스스럼없이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을 인용하고, 외국 정상과 만찬 때 미국 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노래하는 차별화된 공산주의자였다”고 평했다.
국빈들을 상대로 괴테와 셰익스피어에 대한 지식을 늘어놓았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트레이드마크인 웃는 얼굴로 “좋다(하오·好)”는 칭찬을 자주 한다고 해서 ‘하오 선생’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비교해 장쩌민은 매우 자유롭고 다채로운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다만 장쩌민이 남긴 그림자도 짙다. 민주화 운동가 및 파룬궁 신자 탄압을 주도한 것은 대표적 과오로 꼽힌다. 집권 기간 경제성장에 집중하느라 빈부 격차와 양극화를 방치한 후유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측근과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 3대 정파 ‘상하이방’의 대부인 장쩌민은 2002년엔 공산당 총서기직을, 2003년엔 국가주석직을 후진타오에 물려주고 퇴진했다. 후진타오 시대에도 10년간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2007년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때 후진타오 바로 다음으로 연단에 올라 권력을 분점하고 있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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