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때때로 편견을 갖고 잘못된 이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다고 해서 우리도 은연중에 라헬을 더 좋게 생각한다. 창세기 29장 17절에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라는 말씀은 레아보다 라헬이 훨씬 아름다웠다는 뜻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 우리 말 성경은 히브리원문보다 70인역(LXX) 헬라어 역본을 따른 것인데,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에 대한 편견이 담긴 오역이다.
헬라어로는 ‘약하다’(weak)라는 뜻의 ‘아스테네이스’로 되어 있지만, 히브리원문에는 ‘라코트’로 ‘우아한’, ‘부드러운’이란 뜻이다. 물론 ‘약하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관점에서 창세기 29장 17절을 번역한다면, “레아는 눈이 우아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땁다”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레아는 야곱이 동생 라헬을 사랑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 때문에 어쩌면 원치 않았을 결혼을 하였고 그로 인해 남편 야곱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 모든 일에 대한 레아의 태도가 어떠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이 없다. 그러나 레아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보면 레아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많은 사랑을 받은 라헬보다 먼저 아들들을 낳았다. 레아는 야곱에게서 네 명의 아들을 연이어 낳았는데, 레아가 지은 아들들의 이름을 보면 르우벤(하나님께서 나를 돌아보셨다), 시므온(하나님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다), 레위(하나님과 연합하리라), 유다(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등, 모두 신앙적이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외로움과 슬픔을 믿음으로 인내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출애굽 사건의 주역으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는 레아의 세 번째 아들인 레위 지파 출신이다. 특별히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 구별되었다. 레아의 네 번째 아들 유다의 후손인 다윗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실질적 장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다윗 왕국을 영원히 세워주시겠다고 한 하나님의 약속은 메시아 왕국의 비전이 되었으며,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다.
반면에 야곱의 사랑을 많이 받은 라헬은 아들이 없었다.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언니는 계속해서 아들을 낳고 자기는 아이를 갖지 못하니까 자기의 몸종 빌하를 통해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도록 하였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단’과 ‘납달리’이다. ‘단’은 “이제야 원통함을 풀었다”라는 뜻이고, ‘납달리’는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창 30:8)라는 뜻으로 라헬의 감정이 담겨 있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레아와는 다른 그녀만의 아픔이 있었다. 그러나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한 비통함과 슬픔을 어떻게 해서든 극복해 보려고 했던 적극적인 여인이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아이를 갖지 못했던 라헬의 아픔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바빌론에 의해 죽임 당하는 이스라엘의 고통에 비유하였다(렘 31:15). 라헬의 비극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삶의 태도는 바벨론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 고통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절대 절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였다.
레아는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그 아픔과 외로움을 믿음으로 극복하였다. 이런 점에서 레아가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까지 레아를 싫어할 필요는 없다. 이스라엘 12지파는 레아와 라헬을 통해 이루어졌다. 레아는 비록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여인이었지만, 자신의 아픔을 믿음으로 이겨냄으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아픔을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려고 하였던 라헬은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적으로 경험한 삶의 모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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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대 목사/에벤에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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