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 <스페인 여행>에서 15세기 르네상스기에 스페인이 콜럼버스를 아메리카 대륙에 보내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군을 몰아냈다는 사건을 말하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대 격변의 시기에 대해서 설명했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15세기 세계의 격변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나라는 조선 세종시대를 맞아 나라가 크게 융성하게 되었고 세조, 성종 때까지 조선조의 기틀이 마련된다. 조선 왕조(1392-1910) 하면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유래한 유교 성리학에 빠져 당파 싸움에만 몰두하다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무능하고 한심한 왕조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를 향한 문호 개방이 늦었고 서구화 근대화가 늦었기 때문이지 조선 왕실이나 관료들이 무능하거나 한심해서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문호 개방이 늦었다는 것은 그만큼 조선의 국가 시스템과 이념이 견고했다는 것이고 쇄국을 해서라도 쉽게 서양의 침입에 나라를 내주지 않겠다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서구 세력의 개항 위협에 일본은 쉽게 문을 열었고 우리는 격렬히 저항했다. 그것이 오히려 문호 개방을 늦추었고 급기야는 일본에 의해 무력으로 개항하게 된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다. 이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잘 알듯이 조선은 세계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에 휘말리게 되었고 서구 세력에 강제로 문을 연 일본은 당한 그대로 조선을 침략하여 1910년 나라를 빼앗고 말았다.
조선 왕조는 국가 시스템과 이념이 잘 정비된 나라였다. 아니 우리나라는 원래 고대 국가부터 나라의 시스템이 강력했었다. 고구려, 백제는 700년, 신라는 1000년을 나라가 이어져 왔고 고려는 474년 조선은 518년 왕조의 명맥을 이어갔다. (중국은 기껏해야 2-300년이 가장 장수한 왕조였다.) 이것은 우리의 국가 이념과 통치 시스템이 강력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조선 왕조는 그 어떤 이전의 왕조보다도 견고한 통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지금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은 500여 년의 조선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세계 유일의 공식 역사 기록이다. 세계 역사상 그 어떤 왕조나 국가도 500년이 넘는 정사의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조선이라는 국가는 강력한 국가 기틀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5세기 조선은 그 기틀을 마련했었다. 물론 세계사적으로 볼 때에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15세기의 조선은 보잘 것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5-600년 후의 관점에서 본 견해에 불과하고 그 시대에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의 한반도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정치와 문화, 사상, 국가 조직 체계에서 강력하고 융성한 국가였다.
조선은 세종, 세조를 거쳐 성종(1457-1495) 대에 이르러 국가의 모든 체제가 정비되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찬란한 업적을 이어받아 세조 때에 중앙집권 체제가 확립된다. 사육신을 죽이고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는 등 수양대군은 왕위를 찬탈한 후에는 세조가 되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큰 업적을 남겼다. 왕권을 강화하고 세종이 확보한 4군 6진을 공고히 하며 동국통감 등 편찬사업을 추진하여 문화적으로 융성한 나라가 되게 하였다. 성종 대에 이르면 문화의 황금기를 맞아 조선의 전성기를 맞는다.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이 반포 되어 조선의 모든 법제가 정비되고 유교 정치의 틀이 완성되었다.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동문선 등 다양한 서적이 편찬 간행되었고 홍문관이 설치되어 뛰어난 문신들은 모아 연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서양에서 르네상스를 맞아 중세시대를 마감하고 근세로 넘어오는 격변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왕조가 공고히 세워지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성종의 뒤를 이어 연산군이 등극하여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4대 사화와 당쟁으로 이어지는 조선조 중기에 임진왜란(1592)을 겪으며 국력이 급속히 쇠약해져 이후로는 계속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빼앗기기까지 조선은 굳건한 국가 시스템을 가진 나라였다. 이 조선의 시스템은 15세기 말 성종 조에 확립된 것이다. 15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세계의 항로를 열던 시기에 우리나라는 조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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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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