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자도 우체부가 될 수 있다는 현직 우체부의 얘기를 듣고 우체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 도회지 외곽지역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루랄 캐리어(Rural Carrier, RC) 필기 시험에 보아 합격했었다. 그런데 도회지에서 배달하는 시티 캐리어(City Carrier, CC)가 더 낫겠다 싶어서 루랄 캐리어가 되기 위한 다음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 후 시티 캐리어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을 한 후 필기 시험을 다시 보았다. 루랄 캐리어와 시티 캐리어의 시험은 출제 방식이 전적으로 같았다. 이미 한 번 시험을 본 경험이 있어서 시티 캐리어 시험을 볼 때에는 긴장감이 덜 했다.
시티 캐리어 시험에도 합격했다. 당시에는 OMR 답안지를 사용해서 시험을 봤기 때문에 판독이 끝날 때까지 시험장에서 대기했다. 판독이 끝나면 합격자 명부가 나오면서 점수도 통보되었다. 나중에는 컴퓨터 한 대에 지원자 한 사람이 1:1로 배정되어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경우에는 시험이 종료되면 그 즉시 합격여부와 얻은 점수가 화면에 떴다. 필기 시험 합격 후 여러 가지 절차가 진행되었다.
드럭 스크린(drug screen) 즉 마약 검사가 있었다. 인사부가 있는 건물의 특정 화장실을 검사 전용으로 사용했는데 그곳에서 소변을 담아 담당 직원에게 제출하는 간이 검사 방법이었다. 이상이 발견되면 미국 우정국(USPS, United States Postal Service)과 업무협약이 된 지정 병원에서 2차 검사를 진행했다. 마약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서 우체부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서에 가서 운전기록 증명서를 발급받아 제출했다. 우체부는 자동차에서 내려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자동차를 운전하는 직업이다. 고국 방문 때 미국에서 우체부로 일하고 있다고 얘기하면 오토바이로 배달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우체부는 없고 모두가 자동차를 사용하기 때문에 좋은 운전 경력도 중요하다. 만약 교통법규를 위반한 경력이 많다면 채용하지 않는다. 우체국이 사고 위험 부담을 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체부는 연방수사국(FBI,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의 신원조회를 거친다. 응시자가 직접 신원조회를 신청하는 것은 아니고 미국 우정국이 연방수사국에 신원조회 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서류에 서명하는 방식이다. 기껏 해봐야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뿐인데 무슨 연방수사국 신원조회까지 거쳐야 하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생각을 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우체부가 방문하는 상업용 건물을 생각해보자. 상업용 건물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경비요원을 두어 건물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살핀다. 그런데 매일 드나드는 우체부가 연방수사국의 신원조회를 통과했다면 일단 안전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는 여지가 발생한다. 게다가 별도의 신원조회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우편함을 통해 우편물을 받는 단독주택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우편함은 잠금장치가 없지만 집주인과 우체부만이 그 우편함을 열 수 있다. 만약 아무나 우편함을 열어볼 수 있다면 우편물 도난 사고가 날 수 있다. 또 그 집 사람들을 해칠 나쁜 마음으로 우편함에 위험한 것을 넣어둘 수도 있다. 우편물을 꺼내기 위해 우편함을 열었더니 거기 뱀이 들어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렇다면 배달구역내 그 많은 우편함을 매일 여닫는 우체부라면 연방수사국의 신원조회 정도는 통과해야 하지 않을까? 가끔 동네에서 광고전단을 돌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사람들은 그 광고전단지를 우편함에 넣는 것이 아니라 우편함 옆에 있는 틈에 끼우고 간다. 그들은 우편함을 열 수 없기 때문이다.
우체국 채용과정에서 서명해야 하는 많은 서류 중에 퍽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한국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어떤 사실에 관해 적은 후 그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서명날인 할 때에는 ‘위에 적은 것들은 사실과 다르지 않음을 증명한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 우체국 입사 절차의 서류에서는 ‘사실과 다르지 않다’ 또는 ‘진실이다’라고 결정적이고 단정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진실이다’고 한 발 물러서 있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우체국이 아닌 곳에서 본 서류에서도 사실 여부에 관한 서명을 할 때에 그런 문장을 몇 번 더 만났다. 퍽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기억의 착오 등으로 잘못 알 수도 있는데 그런 사소한 잘못으로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를 모두 마치고 나면 이제 어느 우체국에서 일할지를 정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배치는 성적순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시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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