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가을이 뒷 뜨락에 내려와 앉아 있다. 한계상황(Boundary Situation)이 은근히 실감 난다. 언제부터인가 버릇처럼, 가을이 오면 유난히도 가버린 모든 것들이 그립고 애달픈 상념의 늪을 헤맨다. 젊은 시절에는 요즈음처럼 깊은 가을앓이를 치른 적이 없었는데 묘한 소회가 눈물 신경을 자주 건드린다.
험준한 산야를 야생마처럼 질주해 온 내 삶 속에 겨자씨만한 한 알의 순수가 남아 있었던가. 지워져 있는 줄 알았던 청년 시절의 풋풋한 낭만들이 종종 되살아나 미소와 눈물을 반추하게 만든다. 슬프면 더욱 슬픔을, 외로울수록 고독을 추구하다니… 비로소 내가 나의 본령을 찾아낸 것 같은 감회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이 익어가기 시작한 며칠 전 초저녁에도 ‘이별의 노래’를 안주삼아 밤이 이슥하도록 잔을 기울였다. 나이 어린 애인과 제주도로 도피행각을 벌였던 박목월의 로맨스로 술이 더 당겼다. 구만리장천 차가운 하늘을 울부짖지 않고, 지져대지 않고 ‘울어예’며 날아가던 기러기가 ‘자신’이었다는 것인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박목월이 엄습해 오는 외로움에 겨워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여기까지 추상되기에 이르자 초가을 저녁에 술이 맛을 더해 갔다. 여기에 이르고 나니 옛날 스타일의 로맨스도 뇌리에 밀려온다.
조선시대 여류시인 황진이 못지않았다는 전북 부안 출신 기생 이매창은 깊은 사랑에 빠졌던 정인이 그리워 어느 가을날 멋들어진 시 한수를 남겼다.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해마다 가을은 현란한 단풍과 푸른 하늘, 풍요의 결실과 함께 넉넉한 풍광으로 위로를 해 오지만 어인 일인가. 허무와 알 수 없는 좌절감이 압도해 온다. 가까웠던 사람들이 계속 떠나고 있다.
바로 얼마 전 제임스 웹 천문 망원경이 600억 광년 거리의 우주를 탐험하고 돌아왔다. 빛의 속도로 600억 광년을 달렸으면 상상조차 어려운 무한대의 거리가 아닌가. 과학자들은 더하여 ‘다중우주론’을 주장하며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우주 외에 수없이 더 많은 우주가 있다고 주장, 한계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
어느 누가 아무리 이 우주를 뒤져봐도 천당도 극락도 어떤 종류의 천국도 없었다. 다만 생명이 존재하는 곳은 지구, 단 한 곳뿐이었다. 인간도 지구 이외에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이 지구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절절하게 외로운 존재들인가. 신비로움을 헤어날 길이 없다. 도대체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지구를 만들었으며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내세워 그 한가운데 우뚝 서게 했는가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여기에 더하여 나는 또 무엇인가. 내가 부모를 만나기 이전에는 무엇이었나. 내 형체가 사라져 버리면 우리가 말하는 그 혼령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성층권 안에 나의 혼령이 남을 것인가. 무한의 우주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인가.
나는 요즈음 소년 시절처럼 가슴 설레며 갖가지 추상과 호기심 속에 종종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새삼스레 우리 단군 선조가 홍익인간을 가르치며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종여일(始終如一)’을 설파한 혜안이 놀랍다. 석가모니의 삼천무량 세계(화엄경), 일체 무를 역설하며 방하착을 가르친 이유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예수의 ‘하늘나라가 네 안에 있다’라고 우주를 통달한 경지가 존경스럽다.
나는 이번 가을, 쌓여가는 연륜에서 우러나온 심정과 제임스 웹 천문망원경의 장쾌한 여행기에 취하여 나름대로의 신비한 추상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 이 가을 왜 이리 심란한가. 어느 가을날 40세를 일기로 쓸쓸히 세상을 떠난 프란츠 카프카의 절규가 명상 속에 떠올라 심경을 흔든다. 그는 규격적인 사회에 복속되기를 끝까지 거절했다. 기계 같은 퇴근, 근면 강요, 억지로 미소를 지어야 하고 불만을 말해서는 안 되는 사회의 모든 격식에 철저히 저항했다.
스스로가 벌레로 변신(Metamorphosis)하여 모순에 저항했다. 몸을 일으킬 수도 움직일 수도 없고 문틈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아버지의 교훈에 그레고리는 반항할 힘도 없었다.
자기 이외 이 세상 모든 것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그런 몸부림을 토해내고 사라져 갔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지만 시력을 잃어 길고 긴 코스모스 들길을 그려만 본다. 회상 안으로 사정없이 밀려드는 우수의 격정 앞에 프란츠 카프카의 사회 불통 절규를 한껏 공유하며 특이한 이 가을을 보내야만 할 것 같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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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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