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실적·소비 심리 급속 냉각에도 대외건전성 지표들은 양호한 상황
OECD “올 한국 경제성장률 2.8%” 소비가 수출 부진 상쇄하며 버팀목
▶ 고금리·고환율 기조 당분간 지속…불확실성 크지만 위기론은 일러, 긴축으로 나라 빚 관리하며 대비를
글로벌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0.75%포인트의 자이언트 스텝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 불안심리가 증폭되고 있다. 시장 예상과 달리 연준이 기준금리를 금년말 4.5%까지 올릴 것으로 예고했으므로 경기침체가 오리라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고 외화 유동성 위기가 오는 것 아닌가도 걱정하고 있다. 주가와 집값 등의 대폭락으로 자산시장이 붕괴되면 가계부채 압력과 맞물려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는 걱정도 크다.
위기론의 확산은 기업과 가계의 심리를 급속히 냉각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조된 위기의식이 다시 위기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정책 당국자들이 경제 위기론을 앞장서서 설파한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대부분 고위당국자가 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철저히 대비하자는 취지겠지만, 위기 트라우마가 있는 경제 주체들의 불안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했다.
앞으로 경기는 둔화될 것이다. 미국이 세계 경제 구조변화를 주도하면서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고금리·고환율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그렇다고 부도가 급증하고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위기라는 용어를 쉽게 끄집어낼 일은 아니다. 우리 경제는 이러한 환경변화를 견뎌낼 수 있는 튼실한 기초 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가 평가한 것처럼 우리는 물가불안에 선제 대응했다. 한국은행은 미국보다 7개월 앞선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해서 꾸준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0.5%포인트 빅스텝 인상도 한차례 있었지만, 미국에 비하면 질서정연하게 금리를 인상해왔다. 그만큼 물가를 안정시킬 가능성이 높고 실제 4~6개월의 통화정책 시차를 고려하면 8월 5.7%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내년 상반기면 3~4%로 낮아질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실물지표도 건실하다.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대비 2.9%의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 소비가 수출 부진을 상쇄하면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3% 이하로 하락한 실업률은 8월 역대 최저인 2.5%로 낮아졌고 고용률(15~64세 기준)은 68.9%에 달한다. 고용 호조로 2분기 월평균 가계소득이 전년동기 대비 12.7%(물가를 제거한 실질소득도 6.9%) 급증했다. 지난해 17% 늘어난 711개 상장 중소기업의 매출액은 올 상반기 23% 올랐고, 영업이익증가율도 2%에서 5%로 높아졌다. 지난 7월 국제통화기금(IMF)에 이어 최근 OECD가 우리 성장률을 금년 2.8%, 내년 2.2%의 잠재수준 이상으로 전망한 것도 어느 나라보다 강건한 실물지표를 반영한 것이다.
환율이 놀랄 만한 속도로 절하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결제은행(BIS) 신현송 국장이 지적한 것처럼 엔화를 비롯해서 유로화, 위안화 등 대부분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의 글로벌 달러 강세는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과 더불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이 에너지와 식량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는 실질실효환율(교역상대국의 구매력 대비 자국의 통화가치) 기준으로 5% 하락했다. 1997년 외환위기의 40%, 2008년 금융위기의 30%에 비하면 매우 미미하다.
무역적자는 구조적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대중국 무역흑자가 지난해 242억달러에서 올 1~8월에는 32억달러로 줄었다. 여기에 고유가로 지난해보다 100억달러 늘어난 대 중동 무역적자 금액까지 합한 310억달러는 올들어 무역적자 251억불달러를 넘기 때문이다. 유가가 하향 안정되고 중국이 10월 시진핑 연임 결정 이후 코로나 봉쇄조치를 완화하면 무역수지는 개선될 것이다. 또 경상수지가 올해로 24년째 흑자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점도 희망을 갖게 하는 요소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여 대외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인 CDS 스프레드(정부가 발행한 외평채의 부도 가능성의 대용치)는 최근 원·달러 환율급등에도 40bp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 등 초선진국과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국내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인정해주고 있는 셈이다.
자산시장 폭락에 따른 금융부실 우려도 금융시스템이 강건해졌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마다 금융시스템은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뇌관 역할을 했다. 금융회사가 리스크 관리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금융 부문의 건전성은 매우 양호해졌다. 국내은행의 총자기자본비율은 15.3%로 규제비율인 11.5%를 크게 넘어선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가계대출이나 선물환매입한도 등 외환 건전성 규제가 잘 작동하고 있어 과거 위기 때와는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시장의 걱정과 달리 경제가 건실하지만, 언제든 회색 코뿔소가 나타날 수 있는 만큼 해야 할 일도 여전히 많다. 정책당국은 긴축을 견딜 힘이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물가를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IMF의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옵스펠드(M.Obstfeld) 교수도 “한국 경제는 탄탄하여 추가 금리인상을 견딜 수 있다”면서 한은에 인플레이션 억제에 초점을 맞춰 지속적으로 금리 인상을 해나가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정부는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어려운 계층은 지원하면서도 불요불급한 지출은 구조조정해서 재정적자를 최소화해야 한다. 또 물가상승이 임금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되지 않도록 공공부문 스스로가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금리를 내려야 하고 재정도 팽창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물가 불안심리가 팽배해져 버블 경제로 갈 위험이 크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은행이 엔화 가치 상승으로 고통받는 기업을 돕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결과, 버블 경제를 잉태했고 잃어버린 30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금융회사는 체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가계부채가 아킬레스건이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하면서도 핵심 고객의 어려움은 은행이 나서서 지원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예대마진 확대는 물가 불안을 잡기 위한 통화정책 전달경로로서 불가피하다. 감독당국은 위기론에 함몰된 금융회사가 자금공급을 줄임으로써 신용경색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관리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노력을 쉼 없이 해야 한다. 방법은 과감한 규제 혁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업이 가진 동물적 야성에 불을 붙이고 투자를 봇물처럼 이끌어내야 한다. 새 정부의 외교역량도 시험대에 올랐다. 환율안정을 위해 한·미 통화스왑 체결을 추진해야 하지만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려면 중국의 뒤끝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려울 때일수록 사회 통합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 세계 각국은 물가 급등으로 사회 불안이 커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 중에도 대규모 파업을 예고한 것이 좋은 예다. 정부가 솔선수범하면서 국민 각계각층이 고통을 분담할 수 있도록 뜻을 모은다면 그것만으로 우리는 멀찌감치 앞서는 것이다. 과거 세 차례 위기를 모두 극복하고 위기 이후 한 단계 도약을 이뤄낸 경험이 한국 경제에 DNA로 박혀있다. 우리의 DNA와 실력을 믿고 노력해간다면 어려운 상황은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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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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