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에 기내식을 공급하는 그 회사에서 근무한 기간이 길지 않았지만 직원이 해고되는 것을 두 번이나 보았다.
그 회사에서는 최말단 직급이었고 직속 상사인 수퍼바이저의 지시를 받았다. 한 번은 수퍼바이저가 새로 왔는데 이 사람이 기존 직원들과 마찰이 좀 있었다. 갓 임관한 신임 소위와 선임병 사이의 알력 같은 것이었다.
수퍼바이저는 직원들이 자신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기존 직원들은 수퍼바이저가 뭘 알지도 못하면서 엉뚱한 지시를 한다고 불만인 그런 상태였다.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그 마찰은 감소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퍼바이저가 안 보여서 ‘아니, 이 양반이 근무 중에 어딜 간 거야?’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돌아와서는 아무 말없이 책상 부근에 두었던 자신의 조그마한 가방을 들쳐 메더니 뒷문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어라? 근무시간 중에 어딜 가는 거지? 혹시?
잠시 후 매니저가 사무실에서 나와 스토어룸(storeroom)의 모든 직원을 불러 모으더니 그의 이름을 말하고서 “그 사람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일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게 다였다. 면담 후 본인에게 해고를 알렸고, 그는 즉시 회사를 떠났고, 매니저가 남은 사람들에게 그의 해고를 알린 것이다. 잘 있으라 잘 가라 인사도 없이 그렇게 헤어졌다. ‘아… 미국 회사는 이러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스토어룸에 몽고에서 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제대는 했지만 군기가 약간 덜 빠진 민간인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매니저에게 대든 그날 마침 그 곁에 있었다. 매니저의 일 처리 지시는 잘못된 것이고 자신의 일 처리 방식이 맞다는 주장이었다. 매니저가 이렇게 말해보고 저렇게 설명하는 등 설득을 했는데도 그는 언성을 높여가며 대들었다.
결국 매니저는 그에게 배지(badge)를 달라고 했다. 이 배지는 타임카드로서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단말기를 통과시킴으로써 근무 시간을 재는 기능을 하는 것이었다. 그 직원에게 배지를 받은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 가. 다시는 여기 오지 마.” 그게 다였다. 그렇게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해고되었다.
그 후에 한인이 운영하는 어떤 식품 도매상에서 일할 때 였는데 함께 근무하던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금요일이 싫어. 금요일이 무서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봤더니 한 주간의 근무가 끝나는 금요일에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갈 때 해고되었음을 말해준다는 것이었다. 설마 그러랴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사람이 진짜 그렇게 해고되었다.
금요일 퇴근 직전에 그날까지 근무한 것에 대한 주급에다 2주치 주급을 더 얹은 수표를 건네면서 이제 그만 나와도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실제 해고는 2주 후이지만 그 해고일까지 근무하지 않아도 급여를 주는 즉 유급 휴가 2주일 후 해고하는 방식이었다. 그랬다. 그렇게 해고하는 방법도 있었다.
더 나중에 우체국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배달을 위한 우편물 분류를 하고 있었는데 수퍼바이저가 와서는 “미스터 킴, 포스트마스터(postmaster 우체국장)가 찾으니까 가봐.”라고 말했다. ‘이 아침에? 왜? 어제 뭐 잘못 배달한 것이 있었나?’ 생각하면서 갔더니 첫마디가 그랬다. “미스터 킴, 내일이 마지막 날이야.”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이게 무슨 말이지? 뭔 말이야?’하고 머릿속에서 위이이잉 하는 소리를 내면서 번역기가 돌아갔는데 곧 의미를 해석했다. ‘아니 이것은? 말로만 들었던 그 레이오프(layoff 정리해고)…’
우체국장은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어. 북버지니아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위로의 말이었지만 이미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은 사람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람. ‘세상에나… 하루 전에 해고 통지를 하다니… 거 참… 어찌 이렇게 황당한 일이… 그나저나 모레부터는 실업자네?’
남들이 해고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또 나 자신이 해고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어떤 뜻인지 아주 잘 알게 되었다.
항공사에 기내식을 공급하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은 같이 근무하던 분이 한인이 운영하는 식품 도매상으로 옮긴 후 그쪽으로 넘어올 것을 권유했기 때문인데 급여가 더 좋았다. 그만두겠다고 말했더니 수퍼바이저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잘 되었네. 축하해. 사실 여기 급여가 미스터 킴 일하는 수준에 비하면 좀 적은 편이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급여를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디 가서든 잘 해낼거야. 축하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더 있으라고 붙잡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으니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으면서 미국에서 이직을 통한 경력관리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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