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는 꼭 들어야 하거나, 듣고 싶은 말만 잘 들리게 돕는 장치가 아니다. 마이크, 앰프(증폭기), 스피커로 된 이 조그만 기구는 세상에 떠도는 온갖 소리를 끌어 다 귀에 가져온다. “보청기를 끼면 세상이 시끄러워. 좀 들리지 않아도 조용한 게 편해”. 이런 말을 하며 곁에 있는 보청기를 잘 쓰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윙윙 대는 소리에 시달리기 보다 침묵의 세계에 내려가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보청기 중에는 잘 맞춰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많다. 볼륨 조절 장치만 해도 워낙 작다. 나이 들면서 감각이 무뎌 진 손으로 딱 맞추기가 어렵다. 배터리라도 갈게 되면 무슨 수공예 하듯 조심스레 만지작거려야 한다. 자식이나 젊은 사람의 손을 빌지 않을 수 없는 때도 있다.
이 정도가 보청기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라면 사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보청기 자체에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 생각 보다 넓기 때문이다. 항생제 등을 사려면 의사 처방전이 필요하듯 보청기를 하려면 먼저 청각 전문가(audiologist)등 보청기 전문가에게 가야 한다. 이들이 도심 인근에는 많으나 시골로 갈수록 찾기 어렵다. ‘보청기 사각지대’ 가 생기는 것이다. 의료 정책에 있어 이 문제의 해결은 오래 된 숙제의 하나였다.
연방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보청기를 약국에서도 팔 수 있게 한 것이다. 앞으로 두 달 뒤인 10월 중순부터 미국의 약국 선반에는 보청기가 비치돼 필요한 사람은 살 수 있다. 소화제처럼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OTC(Over-the-Counter) 보청기가 깔리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약국은 6만1,000여 개, 약국이 5마일 안에 있다는 미국인이 90% 이상이라고 하니 이 정도면 이 문제는 거의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청력은 천천히, 점진적으로 떨어진다. 본인 스스로 감지하기까지 4~5년이 걸린다. FDA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보통 이보다 6년 뒤 보청기를 구입한다고 한다. 보청기에 접근하는 장벽이 높은 것도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미국의 난청 인구는 2,8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OTC 보청기가 보급되면 이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한다.
보청기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메디케어 플랜이 보청기를 커버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성능의 고가 보청기를 구입한 노인들 중에는 차 할부금 내듯 매달 보청기 값을 갚아 나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약국 선반에서 소화제 사듯 보청기를 살 수 있게 되면 현재 몇몇 제조사들의 과점 상태인 보청기 시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가격 하락이 기대되는 것이다.
약국과 약사의 역할은 더 커지게 됐다. 보청기를 고르는 과정에서 고객들의 문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약사와 약국에서 일하는 테크니션들은 고객에게 맞는 보청기를 추천해 주는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새 역할을 해 내려면 지식의 습득이 선행돼야 한다. 피츠버그 대학 같은 곳에서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시작해 약사들이 이 일을 잘 해 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약국에서 이미 혈압이나 당 측정 등 간단한 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맞는 보청기를 고르려면 정확한 청력 평가가 필요하다. 개인이 스마트 폰으로 할 수 있는 청력 테스트 앱도 개발되리라고 한다. 약국에 오는 고객의 난청이 중증으로 보이면 먼저 전문의 등 청력 전문가를 찾도록 권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청기 구입이 이렇게 쉬워지는 것과는 별개로 보청기 성능이나 작동법이 얼마나 더 향상될 지는 미지수다. 스마트폰 개발에 쏟는 관심과 노력의 10분의 1, 아니 100분 1이라도 보청기 쪽에 돌렸다면 지금보다 훨씬 편리한 보청기가 보급되지 않았을까.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는 이들이 갖는 아쉬움 중의 하나다.
새로 개발해 봐야 별 쓰지도 않고, 작동법도 모르는 스마트 폰의 희한한 기능들을 더 만들어 내려고 애쓰기 보다 난청으로 어려운 이들에게는 필수품인 보청기 같은 기구의 성능이 더 좋아지고, 사용하기도 편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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