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에서 40년을 살았다. 내가 처음 미국에 온 것은 1982년 여름, 그 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스물일곱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나는 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을 다니던 역사 학도였고 영어를 특히 못했던 터라 미국에서 살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형님의 무조건적인 강요(?)로 유학생으로 이 땅을 밟기까지 수도 없이 이 선택이 맞는지 자문했었고 결혼하기까지 2-3년을 좌충우돌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 유학 생활과 목회 생활. 나는 얼마 전까지도 이곳은 내가 살 곳이 아니야, 나는 이곳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 수 없어 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왔었고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었다. 수도 없이 조국 대한민국을 방문하며 발전된 조국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그곳에는 나의 부모님과 가족들이 나를 맞아 주었고 어릴 적 친구들은 잊지 않고 나를 반갑게 대해 주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부모님 집이 없어져 마땅한 거처가 없어진 즈음부터 마음과는 달리 조국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계시고 아니고의 차이가 이런 전혀 다른 환경에 맞닥뜨리게 될 줄은 몰랐다. 형제들과 어릴 적 친구들은 변함이 없었건만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좌우할 줄이야.
그러면서 나는 진지하게 내가 장차 어디에서 살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할 일이 있는 곳에서 살겠다는 것이었다. 어떤 것은 조국이 좋고 어떤 것은 미국이 편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조국에서 사는 것이 조금 더 좋으나 이 미국은 내가 27년 살았던 조국보다 13년이나 더 산 익숙한 곳이다. 가까운 지인이 말씀했듯이 한국에서 1년만 살아 봐. 생각이 완전히 바뀔걸. 그것을 감안해도 나는 우리 조국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할 일없이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건강 챙긴다고 행복하지는 않겠지. 결국은 보람 있고 내가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곳이 내가 살아야 할 곳이 아닐까.
흔히 목회자는 사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런 거창한 말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하는 삶이 더 맞을 것 같다. 그것이 사명의 삶과 연결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미국은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이다. 건강하고 의욕만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많은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여성분들이 미국을 좋아하는 것은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을수록 고학력자일수록 여성은 미국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남성들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이 땅에서 노력하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는 것은 남녀의 구별이 없다. 다만 꾸준함과 인내가 필요하다. 나는 유학생활 할 때 이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머리로는 너희에게 뒤지지 않아 언어가 서툴 뿐이지. 한국에 있을 때는 항상 나는 머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기 와 보니 대학원생이라는데 별 볼일 없잖아. 대학원 들어갈 때에 치루는 시험이 있다 . GRE 라는 영어, 수학 테스트이다. 나는 문과임에도 수학을 거의 만점을 맞았다, 중학교 수학이면 충분했다. 그 수학 점수가 안 나와 영어를 거의 만점 받고도 종합 점수를 걱정하는 미국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이런 어리숙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 나라에서 뭘 하면 못할까 이런 생각을 해왔었다. 많이 바뀌었어도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큰 나라이고 적당히 어리숙하다. 우리 같은 마이너리티들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곳이다. 세계 각지의 문화와 음식과 풍습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사람도 다양하고 사고방식도 다양하다. 한명의 천재의 주장보다 열 명의 다양한 보통사람이 도출한 의견이 더 낫다는 말이 있다. 이 나라는 그것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다. 사람들은 어리숙하지만 시스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나라지만 그것들을 다 포용하고 여전히 여유 있게 나라를 유지하는 이 나라는 역사상 볼 수 없는 대단한 나라다. 미국은 우리에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나는 앞일을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내가 미국에서 계속 살 거라면 좋은 점만 보고 갈 것이다. 좋은 것만 보고 가도 바쁜 세상이니까.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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