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개 시민방위군 대대가 활약, 바고주 등 군부 영향력 큰 지역…장악 나서며 분쟁 양상을 뒤바꿔
▶ NUG, 시민행정처·경찰국 신설 “선거 치르자” 군부 회유에 대항…과도정부 기간 통치시스템 구축
군사력 유지할 예산문제 등 난제, 자체 수입 창출안 구상 중이지만 확실한 승리까지는 갈 길이 멀어
세계의 분쟁지역미얀마 민주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가 지난해 2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부에 맞서 본격적으로 영토 탈환에 나섰다. 사사 NUG 대변인은 6월 22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NUG와‘동맹들’(NUG와 협력 관계인 소수민족 무장조직)이 미얀마 전체 영토 50%를 차지하고 있다”며 최근 군사적 성과를 소개했다. “사가잉주(州)와 마궤주 북부의 경우 전통적으로 군부 엘리트 집단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시민방위군(PDF)’ 활약 덕분에 지금은 이 지역 마을 80%, 도로 인프라 90% 이상이 NUG 통제 아래 있다. 과거 어느 때에도 군부가 이렇게 많은 영토를 상실했던 적이 없다. 군부가 패배하고 있다는 증거다.”
영토는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그래서 어느 분쟁 지역이든 반군이나 저항세력은 중앙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가장 먼저 영토를 장악하는 데 주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문민정부 운영 경험을 갖고 있는 NUG가 영토를 상당히 확보했고 또 점차 확대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미얀마 민주세력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부당하게 빼앗긴 권력을 되찾고, 잔혹한 군부 통치의 악순환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두와 라시 라 NUG 대통령 권한대행은 6월 14일 열린 내각 회의에서 “NUG 국방부 산하에 PDF 전투대대 257개를 갖추고 있다”며 반격을 예고하기도 했다.
PDF의 무장 투쟁은 미얀마 분쟁의 양상과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과거에는 소수 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국경 변방 산악 지역이 분쟁 중심지였으나, PDF가 무장투쟁을 시작한 이후로는 바고주, 사가잉주, 마궤주 등 중부 평야 지대가 격전지로 떠올랐다.
이 지역들은 △다수민족인 버마족이 주로 거주하고 있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에 대한 대중적 지지세가 강한 동시에 △핵심 군사 시설이 위치한 탓에 군부 엘리트 집단의 영향력이 크게 미친다는 특징이 있다. 군부 입장에서는 가장 안심할 수 있는 ‘내 집 안방’에서 가장 강력한 저항에 맞닥뜨린 셈이니, 적잖은 충격을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미국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예 묘 헤인 미얀마 싱크탱크 타가웅정치학연구소 소장은 미얀마 분쟁 1년을 평가한 최근 보고서에서 “PDF는 군부에 비해 병력은 약하지만 사기가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또 미얀마 전체 330개 타운십(구) 가운데 266곳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저항이 이처럼 전국적 규모로 발전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PDF의 명령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무기도 부족해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분석했다.
NUG는 되찾은 영토를 기반으로 통치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 가고 있다. 6월 13일에는 경찰국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시민경찰국법’도 통과시켰다. NUG는 “경찰국은 과도정부 통치 기간 법치를 수호하고, 범죄와 불법 행위를 예방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4월 6일에는 공보를 통해 타운십 행정기구인 ‘시민행정처(PA)’ 설립 계획도 공개했다. 현재까지 사가잉주와 마궤주 내 타운십 6곳에 PA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몬 NUG 국방부 장관은 “PDF가 PA 관리감독을 맡는다”고 전했다.
최근 군부는 “내년에 총선거를 실시해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프로파간다를 내세워 민주세력을 회유하고 PDF 군인들에게 투항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PA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구로서 군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항하는 목적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궤주 소(Saw) 타운십 인민행정처 대변인은 자유아시아방송에 “만일 군부가 선거를 치른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공공의료 분야도 차츰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미얀마 전역에서 NUG가 운영하는 이동식 진료소는 267개, 소규모 병원은 52곳에 이른다. 값비싼 의료기기는 물론 필수의약품 조달도 쉽지 않은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공공의료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었던 건 오롯이 의료진 덕분이다. 의료진은 쿠데타가 발생한 지난해 2월부터 NUG와 PDF가 결성된 5월 초까지 미얀마를 민주주의 함성으로 뒤덮은 ‘시민불복종 운동’의 선두에 섰고, NUG 출범 이후 고스란히 공공의료 인력으로 흡수됐다.
NUG는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NUG는 학교 52곳을 운영 중인데, 대면 수업과 온라인 수업, 홈 스쿨링 등 다양한 방식을 병행한다. 공교육 또한 시민불복종 운동을 이끈 거리의 교사들이 있었기에 유지될 수 있었다. 이처럼 NUG를 지탱하는 힘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 헌신과 희생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 예산과 군사력은 민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군부 축출과 민주정부 설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무장투쟁을 이어가려면 돈과 무기가 필요하다. NUG는 자체적으로 수입을 창출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국채를 발행해 3,800만 달러(약 492억 원)를 벌어들였고, 쿠데타 군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의 저택을 “군부가 공공으로부터 갈취한 불법 재산”으로 규정한 뒤 그 집을 경매에 붙여 700만 달러(약 91억 원)를 확보하기도 했다.
그가 소유한 양곤의 공유지도 경매에 내놨다. NUG는 경매 수익을 시민불복종 운동 기념 공간인 ‘봄의 혁명 공원’ 조성에 쓸 것이라고 했다. 그뿐 아니다. 경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모바일 간편결제 시스템 ‘NUG페이(Pay)’도 개발, NUG 통치 영토에서 먼저 시범 운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확보된 수익은 군사력 증강에 투입된다. 나잉 투 아웅 NUG 국방부 대변인은 “NUG 예산 95%를 PDF 무기 지원과 무기 생산에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국방 예산 중 일부는 군부에 맞서 함께 싸우는 반군부 무장조직들, 이른바 ‘동맹’에도 배분된다. 일례로 민주진영과 손잡은 카렌민족연합(KNU) 산하 ‘카렌민족방위조직(KNDO)’은 6월 28일 NUG로부터 국방비 명목으로 100만 바트(약 3,700만 원)를 지원받았다고 밝혔다.
NUG의 통치 실험은 이제야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소수 민족 무장 조직 수십 개가 충돌하는 혼란스러운 정치 지형 위에서 가장 잔혹한 군부를 상대해야 하는 고난도 모델이다. NUG와 PDF의 성패 여부는 민주화 성취와 내부 분쟁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아시아 분쟁 국가들에 본보기 또는 반면교사가 될지 모른다.
군부는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계산하지 못한 오판과 오만으로 스스로 무덤을 팠다. 그러나 그들의 패착이 곧 NUG와 PDF의 승리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최악의 경우 한 나라나 지역이 서로 적대적이거나 비협조적인 여러 개 작은 나라, 지역으로 쪼개지는 ‘발칸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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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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