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은행 경제성장률 2.9% 전망… 1.2%p 하향 조정
▶ ‘물가상승·약한 성장·개도국 취약’ 70년대 때와 공통점, ‘달러 강세·재정 건전성·중앙은행 위상’은 이전과 달라
세계은행(WB)이 7일 세계 경제가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져들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로이터]
세계은행(WB)이 7일 우크라이나 전쟁, 전염병 대유행, 공급망 교란, 인플레이션 등의 요인을 복합적으로 언급하며 세계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을 울렸다. WB는 이날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지난 1월과 비교해 5개월 새 1.2%포인트나 떨어뜨린 2.9%로 전망한 보고서를 내놨다.
지난해 세계 경제가 전염병 대유행의 경기 침체에서 반등해 5.7% 성장했지만, 올해는 다른 요인이 겹쳐 성장 동력이 크게 꺾일 것으로 관측된 것이다. 80년 이상 만에 가장 급격한 둔화를 기록한 것이라고 WB는 평가했을 정도다.
특히 미국의 금리 상승이 개발도상국의 금융부담을 급격히 키우고, 유럽이 갑작스레 에너지 수입 중단에 직면하며, 중국이 다시 대규모 봉쇄에 나설 경우 올해 성장률이 2.1%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WB는 내다봤다. 이 경우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3.0%에서 1.5%로 하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한다면 향후 2년간 성장률이 제로(0)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게 WB의 경고다.
WB의 보고서에서 주목되는 것은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를 담은 부분이다. WB는 “세계 경제가 미약한 성장과 높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는 시기로 접어들 수 있다. 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높인다”며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상당하고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에 불안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많은 나라에서 경기침체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말했다.
인플레이션(Inflation)과 경기침체(Stagnation)를 합친 스태그플레이션은 성장률이 낮은 가운데서도 물가가 지속해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주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물가가 올라가지만 생산 위축으로 성장률은 부진할 때 벌어지는 일로,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은 적은 없었다.
1970년대 말 스태그플레이션 때 주요 선진국이 물가 억제를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림에 따라 1980년대 초 신흥국과 개발도상국(EMDE)에서 일련의 금융위기가 촉발하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됐다는 게 WB의 지적이다.
WB는 세 가지 측면에서 현재 상황이 1970년대와 유사하다고 봤다. 우선 주요 선진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통화 완화 정책을 장기간 편 데다 공급 측면의 지속적 교란까지 겹쳐 물가 상승을 부채질한다는 점이 꼽혔다. 이로 인해 ▲성장률 전망치가 약화한 점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통화 긴축과 관련해 EMDE 국가가 직면한 취약성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WB는 70년대 상황과 다른 네 가지 측면에도 주목했다. 무엇보다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때는 달러가 약세였지만 현재는 세계 경제 불확실성 속에 오히려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 차이다. 유가를 비롯한 상품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70년대에 비해선 상승 폭이 작다고 평가했다. 물가를 조정하면 현재 유가는 1980년대 수준보다 3분의 1 정도 낮다는 것이다.
또 주요 금융기구의 재정 건전성을 살펴볼 수 있는 대차대조표도 더 양호하다는 게 WB의 평가다. 70년대와 달리 선진국은 물론 많은 개발도상국의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에 대한 더욱 분명한 권한을 가진 점 역시 다른 부분이다.
하지만 WB는 내년에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겠지만 많은 나라에서 목표치를 상회할 것이라면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유지될 경우 일부 EMDE의 금융 위기와 함께 국제 경제의 급격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WB는 우크라이나전이 에너지와 관련한 광범위한 상품 가격의 급등을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실질소득 감소, 비용 증가, 금융 여건 악화, 에너지 수입국의 거시경제 정책 제약 등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의 올해 성장률을 11.3%포인트 떨어뜨린 -8.9%로 전망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경우 성장률 전망치가 무려 48.3%포인트 하락한 -45.1%로 예상됐다. 우크라이나의 국내총생산(GDP)이 거의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아이한 코세 WB 국장은 예상보다 빨리 금융 긴축을 펼칠 경우 일부 국가들을 1980년대와 같은 부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은 실재하는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데이빗 맬패스 WB 총재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조율, 식량과 에너지 생산 증대와 함께 수출 및 수입 제약 정책 자제, 부채 경감, 저소득국의 백신 접종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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