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오기를 고대했다. 지금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한국 컨텐츠는 ‘블루칩’이다. 다음달 개막하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는 한국 감독이나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5편이 초청되었다. 경쟁부문에 나란히 오른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송강호·강동원·배두나·아이유 주연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브로커’, 그리고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잇 섹션에 이정재 연출 데뷔작으로 정우성이 함께 출연한 ‘헌트’가 초청되었다.
또, 칸 ‘주목할 시선’ 부문에 초청된 오광록·김선영 주연의 프랑스 영화 ‘귀경’(All the People I‘ll Never Be)은 프랑스로 입양된 20대 여성이 자신이 태어난 한국을 찾아 친부모를 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무엇보다 칸 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의 피날레는 배두나가 주연한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가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이 부문의 대미를 장식한다. 1962년부터 시작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한국 영화가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만하면 올해 칸 영화제는 한국 영화인의 잔치라 해도 되지 않을까. 세계 4대 영화제 중 영화인들이 최고의 영예로 꼽는 칸 영화제는 유독 한국영화인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지난해 칸 영화제가 코로나를 뚫고 2년 만에 개막을 알렸을 때도 봉준호 감독은 물론이고 배우 송강호를 심사위원으로, 이병헌을 폐막식 시상자로 초청했다.
그렇다면 진입 장벽이 가장 높다는 할리웃은 어떤가. 메이저 스튜디오가 주도해온 할리웃 영화산업은 극장 개봉, 홈 엔터테인먼트 출시, 디지털 유통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에서 세계 영화시장을 점령해왔다. 북미 박스오피스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흥행을 좌우했다. 물론 코로나19로 전 세계 극장 산업이 위기에 봉착하기 이전까지 이야기다. 팬데믹의 장기화는 할리웃 영화 산업에 변혁을 앞당겼고 극장 중심에서 디지털 영화 시장 중심으로 이동했다. 넷플릭스와 아마존, 디즈니플러스 등 온라인 OTT 플랫폼이 주도하는 스트리밍 산업이 전 세계 영화시장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 것이다.
할리웃 영화산업의 변화 속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상 4관왕 수상작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백인 위주의 수상 행렬로 ‘오스카쏘화이트’라는 비판을 받았던 아카데미는 비영어권 영화 ‘기생충’에 92년 역사상 최초로 작품상을 안기며 다양성 논란에서 벗어났다.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기생충’은 북미 오피스 점령은 물론이고 세계영화산업의 게임체인저로 주목받았다. 오스카 수상 이후 ‘기생충’은 미국 내 2001개 극장으로 확대 개봉했고 5300만 달러가 넘는 북미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
연예 매체인 할리웃 리포터는 ‘오스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기생충‘의 수상이 글로벌 영화산업의 게임체인저’이며, ‘기생충’의 성공에 힘입은 글로벌 영화 제작자들이 비영어권 영화 제작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기생충’ 수상 이후 한국어로 제작된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가 비영어권 영화의 성공을 이어갔다. ‘미나리’는 한국 배우 윤여정씨에게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안기며 비영어권 영화에 대한 진입 장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국 영화와 시리즈 같은 비영어권 컨텐츠를 전 세계에 알린 ‘넷플릭스’의 공이 크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제작하면서 시작된 넷플릭스의 한국 컨텐츠 투자는 2020년 새로운 글로벌 영화시장을 창출하려는 노력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넷플릭스에 호재로 작용하면서 영화산업의 매출 중심이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지난해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면서 한국 컨텐츠가 할리웃에 심각한 경쟁 위협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연예매체 ‘버라이어티’가 2021년 인터내셔널 TV 쇼 결산을 내놓으면서 지난 가을 ‘오징어 게임’을 한편도 보지 않고서는 어떤 모임에도 낄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이 촉발한 한국 컨텐츠의 높은 인기는 할리웃 산업은 물론이고 소비자에게 혁신을 일으킨 OTT 플랫폼들이 앞다투어 내놓은 한국산 오리지널 시리즈가 증명하고 있다. 한인 2세 제작자와 감독들을 내세워 애플TV플러스가 출시한 ‘파친코’가 좋은 예이다. 한국 컨텐츠에 대한 미국인의 이해도를 높이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한국어 대사와 문화적 배경을 쉽게 이해시키는 ‘언어’의 중요성이다. 봉준호 감독의 아바타로 극찬을 받았던 샤론 최처럼 미묘한 차이까지 끄집어내는 통역사, 번역사, 해설가가 필요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이중 언어에 능한 코리안 아메리칸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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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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