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볼 대상’이자 ‘약한 고리’ 폴란드·불가리아 노려
▶ 공급처 다변화·EU 지원으로 효과는 제한적
정작 문제는 독일…러 가스 막히면 GDP 최대 5% 추락
러시아가 가스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럽연합(EU) 회원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인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한 가스공급을 중단하는 실력행사에 나서면서 유럽행 가스관을 다 틀어막을지 주목된다.
러시아는 미국과 독일 등 40여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을 확대하기로 한 다음 날 가장 중요한 수출품인 가스를 지렛대로 삼아 압박 수위를 높였다.
만약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공급 중단을 더욱 확대한다면 안 그래도 물가 급등에 고통받고 있는 독일 등 유럽 각국의 경제에 또 다른 타격이 될 수 있다.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에 유럽 시장에서 가스 가격은 1메가와트시(MWh)당 118유로까지 20% 뛰었다. 이는 4주 만에 최고가다.
◇ 러시아가 폴란드·불가리아에 가스공급 중단한 이유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은 27일(현지시간)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한 가스공급을 중단한다며, 이들 국가가 독일 등 다른 국가로 향하는 가스에 손을 댈 경우 가스공급을 추가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가스프롬은 이날 폴란드와 불가리아로 가스공급을 중단한 이유로 이들 국가가 제때 가스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가스프롬은 이에 더해 "폴란드와 불가리아는 가스관이 통과하는 국가로, 제3국으로 가야 할 가스에 손을 댄다면 해당량만큼 공급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일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러시아가 지정한 비우호국에 러시아 가스구매대금 결제를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하도록 강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한 바 있다.
폴란드와 불가리아는 제때 가스대금을 결제했다고 반박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러시아 가스프롬의 계약 위반에 대해 법적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폴란드는 연간 러시아에서 9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받아왔다. 인구가 650만명인 EU 최빈국 불가리아는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가 90%에 달한다.
러시아가 첫 가스공급 중단 대상으로 폴란드와 불가리아를 꼽은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일단 두 나라를 '손 봐야 할' 대상이자 '약한 고리'로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폴란드는 이번 주 우크라이나군에 전차를 공급하겠다고 밝혔고, 미국 등 다른 서방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시 통과국 역할을 했다.
불가리아는 러시아가 요구한 2단계 결제방식을 거부했다. 지난가을 집권한 자유주의 성향의 불가리아 내각은 전통적으로 긴밀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했다.
다만, 이들 국가는 가스 공급선을 다변화 중이었기 때문에 당장 타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많은 EU 회원국에는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 내지 축소가 타격이 더 크지만, 러시아에는 독일 등의 석유 수입 중단이 타격이 더 크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EU는 러시아에 대한 석유 수입금지 조처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가스공급 중단은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을 겨냥한 경고라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이 전날 러시아에 대한 석유 의존도가 12%로 축소됐다며, 수일 내에 러시아 석유로부터 자립할 수 있다고 밝힌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됐다.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한 가스공급 중단으로 유럽의 대러시아 강경대오에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러 에너지 제재에 반대해온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자국에 가스 공급차질이 빚어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의 조처가 EU내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지적했다.
폴란드는 항상 EU내에서 러시아에 대해 최대로 강경한 기조를 유지해왔고, 이는 가스공급 중단에도 변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U는 또 가스공급 중단으로 타격을 받을 최빈국 불가리아를 도울 예정이다.
◇ 유럽행 가스관 틀어막으면 독일 GDP -5%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관을 틀어막으면 EU내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독일의 러시아에 대한 가스의존도는 35%에 달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경제 위기로 직행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하고, 물가는 더욱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자동차나 화학 산업지구가 타격이 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독일 연방은행은 러시아로부터의 가스공급이 중단되면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5%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GDP가 2% 감소하는 데 이어 가스 부족이 정점에 달할 올해 겨울이 지나 내년에도 추락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독일 노동조합 총연맹과 독일 경영자 총연합은 최근 공동성명에서 "갑작스러운 가스 수입 중단은 독일내 휴업, 생산중단, 일자리 감소를 불러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독일 경제와 고용에 미칠 악영향은 러시아에 미칠 악영향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은 이날 "현재 러시아로부터의 가스공급이 중단된다면 독일 경제는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며 "독일 경제는 이 경우 성장하지 않고 쪼그라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독일의 러시아에 대한 가스의존도는 지난 수년간 55%에서 최근 35%까지 축소됐지만, 완전히 대체하려면 2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는 이날 올해 독일 경제성장 전망치를 기존 3.6%에서 2.2%로 하향조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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