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한국은 유난히 더웠다. 서울은 더했다. 콘크리트빌딩에 아스팔트길에, 가만 있어도 푹푹 쪘다. 100년만의 폭염이라 했다. 한낮에는 섭씨 40도에 육박하고 한밤중에도 25도를 넘는 열대야가 몇날몇밤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여래사 창건주 설조 스님의 야외천막 단식정진은 그런 가운데 진행됐다. 조계종단 적폐청산을 위하여 종단개혁을 위하여 조계종 총본사 조계사 인근 우정공원에 설치한 비닐천막, 그 속에서 고령의 설조 스님이 곡기를 끓고 견뎌낸 41일. 그 단식은 말이 정진이지 목숨을 건 투쟁이었다. 호적상 88세인 스님의 나이를 두고 실제로는 78세라는 주장이 여러번 나왔다. 78세라 해도 야외천막 단식투쟁은 위험천만 도박이었다.
종단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사부대중이 호응했다. 신부님 목사님 등 이웃종교 지도자들도 다수 성원을 보냈다. 일반시민들까지 종단개혁 거리물결에 동참했다. 우정공원 일대는 어느덧 종단개혁 전초기지가 됐다. 개혁세력 입장에서 종단적폐를 일일이 헤아리자면 밑도 끝도 없겠지만 당시에 핵심표적이 된 인사는 설정 총무원장. 나오지도 않은 서울대는 나온 것처럼, 엄연히 있(다)는 스님 시절 몰래 낳은 딸은 없는 것처럼, 수행자답지 않은 삶을 살면서 알 만한 이 다 00스님 중심 권승세력의 지지로 총무원장이 됐다는 설이 파다했다, 개혁세력 사이에서는.
종단개혁을 둘러싼 대립은 종단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정관계에서도 관심을 갖는 사회적 국민적 의제로 비화됐다. 설조 스님 단식초기 침묵했던 제도권 신문방송들이 앞다퉈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버티던 설정 총무원장이 두 손을 들었다. 중도퇴진 뒤 수덕사행. 설조 스님은 급격 건강악화로 강제로 병원행.
그해 여름 종단개혁 투쟁은 그것으로 일단락됐다. 뿐만 아니었다. 설조 스님의 SF여래사 주석도 사실상 그길로 끝났다. 서서히 건강을 회복한 스님은 여래사 귀환 대신 한국에 남아 개혁투쟁을 이어가기로 했다. 주로 속리산 법주사에 머물면서 조계사 인근에 차린 정정법당을 오가며 개혁법회를 이끌었다. 공석이던 여래사 주지소임은 그해 늦가을부터 근 2년간 광전 스님이 맡았다. 건강문제로 재작년 8월 말 광전 스님이 한국으로 떠나면서 여래사는 한동안 스님없이 도량이 됐다. 작년 봄여름 설조 스님이 몸소 와 여래사를 지켰다. 그러는 사이에 대청 스님, 승원 스님 등이 한 몇달씩 주지 소임을 맡았다. 설조 스님은 오래오래 여래사를 지키고 이끌 스님을 찾는 일에 무진 애를 썼다.
그러던 중 올해 초 날벼락이 떨어졌다. 조계종의 1심 법원격인 초심호계원에 의해 1월27일 설조 스님이 제적됐다.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에는 징계사유는 생략한 채 징계사실만 공개됐다. 그러나 그 사유는 뻔했다. 그해 여름 단식투쟁을 비롯해 수시로 종단수뇌부에 반기를 들고 적폐청산 개혁추진을 주도한 데 대한 ‘심판’이라는 게 교단안팎 중론이다. 지철, 강설, 석안 스님 등 설조 스님과 함께 종단개혁에 앞장섰던 여러 스님들도 함께 제적됐다.
설조 스님은 재심청구를 하지 않았다. 징계는 자동 확정됐다. 스님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적폐청산 대상자들에게 선처해달라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재심청구 포기이유를 밝힌 뒤 "우리 불자가 부처님 말씀따라 행하는지, 불자로서 위치가 제대로 정립됐는가 한번 생각해볼 때"라고 다시금 종단을 비판했다. 늘 그렇듯이 교단 안팎 의견은 엇갈린다. 종단측은 모든 것은 종헌종법에 따라 이뤄졌다 하고, 반대측은 개혁운동에 대한 보복적 폭거라 한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노스님에 대한 지나친 처사라는 비판도 따른다. 1994년 조계종사태 때 요즘 용어로 적폐승으로 몰려 제적됐던 서의현 전 총무원장이 26년만인 재작년에 복권된 것도 모자라 종단최고품계인 대종사로 추대된 반면 94사태 당시 개혁의회 수석부의장을 맡아 종단개혁을 주도했던 설조 스님의 승적박탈을 비교하며 “참 대단한 유전”이라고 비꼬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본보는 지난해 여름부터 수차례 설조 스님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웬일인지 그때마다 불발됐다. 한참 뒤에 알려진 올해초 징계건에 대해서도 본보는 스님의 육성을 담아 차분하게 알린다는 취지에서 보도를 삼갔다.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지난달 하순 한국으로 간 스님은 5월 초순에 여래사로 되돌아올 예정이다. 여래사는 지금 스님의 막내상좌 승원 스님이 지키고 있다. 그해 여름 설조 스님의 야외천만 단식정진 때도 스님 곁을 지키며 시봉했던 승원 스님은 여래사 장기주석을 위해 현재 비자수속을 밟고 있다. 한편 여래사는 어머니날과 겹치는 올해 부처님오신날(5월8일) 봉축법회를 1주일 앞당겨 5월1일(일) 봉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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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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