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건너간 ‘늙은 선자’·젊은 선자와 사랑에 빠진 ‘한수’ 역
▶ 윤여정 “아카데미상, 나이 들어 받아 감사…달라진 건 없어”
왼쪽부터 윤여정, 이민호 [애플TV+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배우 최초로 오스카 연기상을 거머쥔 배우 윤여정과 한류스타 이민호가 애플TV+ 한국 드라마 '파친코'로 글로벌 인기몰이에 나선다.
윤여정과 이민호는 18일(한국시간) 애플TV+의 한국 두 번째 드라마 '파친코' 화상 인터뷰에서 일제강점기부터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에 참여하게 돼 뜻깊다는 소감을 밝혔다. 미국에 체류 중인 '파친코' 제작진과 출연배우들은 현지 시간 17일 홍보행사를 마친 뒤 한국 언론을 상대로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재일조선인 4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는 '파친코'에서 윤여정은 부산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지 50년이 지난 나이 든 선자를, 이민호는 젊은 시절 선자와 사랑에 빠진 한수를 연기했다. 신예 김민하는 젊은 시절의 선자, 한국계 미국배우 진하는 선자의 손자 솔로몬 역으로 함께했다.
먼저 윤여정은 "노배우 윤여정입니다"라며 특유의 유쾌함을 담은 인사를 건넸다.
그는 "드라마는 어떤 가족의 80년 역사를 따라가는데, 소설과는 또 다르다"며 "봉준호 감독이 1인치 장벽을 넘으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작품을 보고)같이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드라마에 한국어, 영어, 일본어 3개 언어가 나와 때에 따라 자막으로 감상해야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민호는 젊은 선자와 사랑에 빠진 한수 역으로 드라마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한다. 한수는 부유한 상인으로 등장하는데, 드라마 후반에는 그가 과거 일본에 살며 겪었던 관동대지진 등 파란만장한 시절이 그려진다.
이민호는 "한국의 어렵지만 아팠던 역사 이면을 표현하는 작품에 참여해 영광"이라고 출연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 시절 조선인이 찍힌 사진을 봤는데 웃는 사진이 없었다"며 "꿈과 희망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를 살아내는 걱정밖에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출연진은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인물을 연기했지만, 민족이 겪은 아픔에는 하나같이 공감했다.
윤여정은 드라마에서 선자가 한국을 방문해 부산 바다에 발을 담그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고 꼽았다. 이 부분은 원작 소설에는 없는 내용이다.
그는 "대본을 받았을 때 이 장면이 있어 잘됐다고 생각했다"며 "그 여자(선자)가 고향에 돌아가 보고 싶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었고, 표현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준비를 많이 했는데, (촬영 때) 비를 막 뿌려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윤여정은 젊은 선자가 일본에서 김치를 팔며 '마늘 냄새가 난다'고 손가락질당하는 삶을 살아온 점에 대해 "선택권이 없는 상황이지 않으냐"고 했다.
그는 "내가 미국에서 살 때는 일을 안 했지만, 이혼하고서는 살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며 "살려고(생계를 위해) 일을 할 때는 힘든지 일인지 아닌지 모른다. 내가 살아보니 그렇다"고 전했다.
윤여정은 한국 근현대사가 녹아있는 작품에 참여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일본 식민통치가 끝나고 한국전쟁이 벌어지면서 국가가 돌보지 못한 해외동포, 자이니치(일본에 사는 조선인)에 대해 알게 되면서 가슴이 아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재일교포, 재미교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내가 미국에 살 때는 몰랐어요. 직장에도 안 나가니 인종차별도 못 느꼈고 미국인인 친구들도 잘 도와줬죠. 그런데 (솔로몬 역을 맡은) 진하 나이대는 그런 걸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국제고아라고 생각했죠. 한국에 와도 한국말을 못 하니 이상하고, 미국에서도 미국인은 아닌 거잖아요.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 게 그런 마음이 있어서일 거예요."
선자의 손주 솔로몬을 연기한 한국계 미국배우 진하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솔로몬은 선자가 한 희생의 결과물인데 그 세대는 그런 부담감을 갖고 있다"며 "처음으로 많은 기회를 누리는 세대인데, 저 역시 부모님의 희생이 많았고, 그런 희생에 대한 고민 등을 이 작품이 아름답게 그려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민호는 한수 캐릭터에 대해 "처절했던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앞만 바라보는 거친 인물"이라며 "절대 선이었던 사람이 생존의 과정에서 절대 악으로 살아가는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을 하다 보니 늘 멋있고 판타지 같은 인물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기존의 저를 부수고 야생으로 돌아간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하루하루를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젊은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는 할머니에게서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기를 준비했다고 했다.
김민하는 "선자는 어떨 때는 소녀 같고 나약하지만, 자신의 가족을 보호할 줄 아는 누구보다 강하고 현명한 인물"이라며 "선자뿐만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가 모여 시대가 되고, 세월이 되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연기에 대한 집념과 확고한 가치관도 내비쳤다.
선자를 연기하며 경상도 사투리를 써야 했는데, 뉘앙스만 살리고 감정을 전달하는 데 더 집중했다고 했다. 과거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사투리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연기를 망쳤다고 털어놓고 이번에는 촬영장에 사투리 코치가 있었지만, 자신을 내버려 두라고 했다고 전했다.
또 손자 솔로몬 역으로 호흡을 맞춘 진하가 자신을 '마스터'라고 부르자 "나는 늙은 배우다. 마스터라고 부르지마"라며 웃었다.
윤여정은 지난해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배우로서 달라진 점이 있냐는 질문에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똑같은 친구랑 놀고 같은 집에 산다. 그냥 나로 살다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늙는 게 싫은 사람인데 내 나이에 감사한 건 처음"이라며 "30·40대 받았다면 둥둥 떠다녔을 텐데 (나이 들어 상을 받아) 날 변화시키진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시상식) 노크를 했고, '미나리'가 우여곡절 끝에 아카데미에 올라갈 수 있었다"며 "거기에 나는 운 좋게 상을 탔다. 정말 운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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