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오랜 두 친구가 있다. 하나는 나와 함께 역사를 전공한 대학교 동창이다. 평생을 고등학교 역사 선생을 하다가 은퇴한 친구다. 그는 충청도 시골에서 면장을 지내신 부친과 대가족이 사는 집안 출신이다. 대학 다닐 때 그 친구 시골집에 가면 어머님이 항상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냥 인사말로 하는 친절함이 아니라 옛날 아주머니의 구수함이었다. 한번은 대충 언제쯤 간다고 친구에게 연락해놓고 (그 때는 그런 식으로 살았었다.) 그 친구 시골집에 찾아 갔었다. “안녕하세요. 대현이 있어요?” 불쑥 찾아간 나에게 그 친구 어머님이 “대현이 없는데 며칠 후에 오겠지. 한 며칠 있어 봐.” 그게 다였다. 그러면 나는 여러 날 숙박비도 내지 않고 그 집 식구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그 친구를 만났었다. 친구의 할아버지는 그 당시 96세셨는데 정정하셨다. 장수하는 집안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한 70세 정도로 보이셨는데 90이 넘으신 분을 뵙기는 그 때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 담소하고 장기 두는 노인정에도 잘 나가시지 않으시고 묵묵히 농사일만 하셨다. 그 연세에 지게를 지고 일하러 다니셨다. 내가 그 친구에게 물었다. “할아버님은 왜 동네 노인정에도 나가시지 않고 혼자 지내시니?” 그 친구의 대답이 애들 노는 데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 동네에서 90년 이상을 사셨으니 그 할아버지 젊으셨을 때 다른 할아버지들은 코흘리개였던 것이다. 친구 말에 의하면 그 할아버지께서 동학 난 때 동학군이 이쪽으로 오면 일본군이 저쪽에서 와서 싸웠다는 전황을 말해 주었다고 한다. 동학 난이면 1894년 아닌가? 내가 그 친구 집에 갔을 때가 1976년 쯤 이고 그 때 96세셨으니 그 할아버지는 1881년 생 정도 되셨을 것이다. 그러니까 13세 소년의 눈으로 그 때의 상황을 정확히 보았을 것이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징병으로 태평양 전쟁에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 오셨었다. 그 때 이야기야 우리 부모님께도 들었던 바니 새롭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 집안사람들의 이야기는 곧 살아있는 역사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지내는 총각이니 한국에 가면 편하게 그 집에 머문다. 나는 아직도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그 친구가 좋다. 푸근하고도 오래된 벗이다.
또 한 친구는 중고등부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교회 죽마고우다. 공부를 잘해 지금은 명문대학을 나오고 이비인후과 원장이 되었다. 집이 가난해 중 고등학교 때에는 늘 내가 그 친구를 사주었는데 지금은 한국에 가면 그 친구가 좋은 식당에서 나를 대접해 준다. 앞으로 평생 그럴 것 같다. 내가 항상 교회 회장이었고 그 친구는 총무였다. 내가 회장을 마친 후에 그 친구가 회장이 되었지만. 부회장은 여학생이었다. 둘이 죽이 맞아 참 친하게 지냈다. 둘 다 잡기에 능했는데 바둑은 내가 더 잘 두었고 그 친구는 탁구와 당구를 잘 쳤다. 중고등부 때에는 교회에서,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세속(?)의 세계에서 함께 어울렸다. 늘 시간에 쫓기던 그를 만나려면 밤에 병원 응급실에 찾아가야 했다. 밤 근무하는 그를 찾아가 밤새워 노닥거렸다. 그를 졸지 않게 하는 것도 내 임무였다. 공부 잘했던 그는 대학 다닐 때 고3이었던 내 여동생 가정교사로 우리 집에 오곤 했다. 공부가 끝나면 내 방으로 와서 밤늦도록 기타 치며 바둑 두며 어울렸다. 음식에 소질 있던 내가 야식으로 파전이라도 몰래 해가지고 오면 왜 그렇게 좋던지. 나의 중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그 친구였다. 그런데 참으로 아쉽다. 그 대학 동창도, 교회 친구도 전도가 되지 않는다. 몇 번을 권하고 노력해 보았지만 안타깝다. 때가되면 기회를 주시겠지. 지금은 목사 친구들도 있고 신앙인 장로님, 집사님들도 있지만 나의 마음은 아득한 그들에게 가있다. 얼마 전 내가 한국에 갔을 때 그 대학 동창이 귓병이 들어 이비인후과 친구에게 함께 갔었다. 진료 후 함께 식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나이가 들면 옛날 일을 생각한다고 했던가? 나도 이제 마음은 청춘인데 어쩔 수 없이 그 세대가 되어가나 보다.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