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LA램스에 우승을 안긴 제56회 수퍼보울이 경기회복의 신호탄을 쏘았다. 잉글우드의 소파이 스테디엄은 화려한 위용을 과시했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로 꼽히는 수퍼보울 광고는 30초 기준 평균 금액이 650만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 부진했던 시청률도 결승전 경기를 스트리밍한 NBC유니버설의 OTT 플랫폼 피콕(Peacock) 가입자수 증가로 연결시키며 수퍼보울의 화려한 명성을 빛냈다.
다음은 오는 3월27일 돌비극장에서 개최되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순서다. 수년 째 고전을 면치 못하는 오스카 시청률은 과연 얼마나 회복될 수 있을까. 2021년 오스카 생중계 시청률은 전년 대비 시청인구가 58% 감소했다. 지난해 시청률이 수직 하락한 이유를 두고 영화계는 코로나19로 인한 흥행작의 부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할리웃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별로 없긴 했다. 자택 대피령이 길어지면서 제대로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들도 없었다. 그러니 오스카 시상식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가 자연스럽게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는 시청률은? 안타깝지만 벌써부터 고개를 젓고 있다. 개봉 영화를 거의 빼놓지 않고 관람했지만 시상식이 기다려질 만큼 인지도가 있는 후보 지명작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오스카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더 파워 오브 독’(The Power of the Dog)만해도 그렇다. 영화 보기를 삼시세끼보다 좋아하는 데도 집에서 편하게 넷플릭스로 시청하면서 세 번을 끊어서 봤다. 스크린을 압도하는 광활한 자연 풍광을 작은 화면으로 보자니 감동이 없고 숨막히는 긴장감이 이어지긴 하는데 워낙 디테일에 신경을 써야 하다 보니 잠깐 한눈을 팔면 그냥 내용이 흘러갔다.
그래도 영화를 사랑하고 오스카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관전 포인트를 써본다. 우선 영화 제목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더 파워 오브 독’은 구약 시편 22장20절을 인용한 ‘악의 세력’을 뜻하는 동시에 주요 모티프인 ‘개의 형상을 한 풍광’을 가리키는 이중의 의도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웨스턴 장르지만 피터를 내레이터로 하는 심리 스릴러다. 영화의 첫 장이 피터의 독백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난 엄마가 행복하기만을 바랬다. 엄마를 돕지 않으면 난 사내가 아니다. 엄마를 구할 수 밖에”로 펼쳐진다. 그리고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악의 세력에서 구하소서”라는 피터의 성경 구절 읊조림과 함께 끝난다.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터의 독백 대사가 이 영화의 전부다.
관객들 다수가 주연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하는 목장 소유주 필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서부극에 어울리는 외모에 강압적이고 묘한 매력이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필의 좌절감과 자기혐오의 대상은 키어스틴 던스트가 연기하는 로즈다. 그렇기에 로즈의 감정선을 이해해야 제대로 영화의 내용을 따라잡는다. 아들을 키우는 미망인 로즈 고든역을 맡은 키어스틴 던스트는 토마스 새비지의 원작에서는 그림자 같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던 캐릭터의 존재감을 증폭시켰다. 로즈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필이 민속악기인 밴조를 연주하며 그녀를 천천히 압박해가는 장면이 영화의 흐름을 단번에 바꿔버리는데 감독이 원했던 실재하는 로즈를 제대로 표현했다고 한다.
1993년 영화 ‘피아노’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제인 캠피언 감독은 성적 욕망이나 심리, 제도나 관습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요소를 바탕에 깔고 있어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난해함을 준다. ‘더 파워 오브 독’에서도 마찬가지다. 로즈는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를 데리고 목장주 조지와 결혼한 후 카우보이 형 필로 인해 옥죄어 오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알코올에 의존하며 아름다움을 잃어간다. 라디오헤드 뮤지션 조니 그린우드가 영화음악을 담당했는데 그린우드의 어둡고 불안한 음색을 반복해서 들으며 로즈라는 캐릭터에 빠져들었다는 키어스틴 던스트은 새 남편 조지는 물론이고 아들 피터까지 보호 본능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피터는 죽은 아버지의 무덤가를 장식하려고 종이 꽃을 만드는 감성과 증거를 남기지 않고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탄저균을 이용하는 명석한 두뇌를 지녔다.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더 파워 오브 독’이라는 영화제목을 12회 이상 듣게 될 것이다. 후보 지명만 12개 부문인데 몇 개 부문에서 수상할 지가 관심사라고 하니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 정도는 관람하는 게 그래도 시상식을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오스카 생중계 방송을 어떻게 공짜로 보느냐이다. 코드커팅 행렬에 합세해 케이블을 해지하고 OTT 플랫폼 구독만 잔뜩 해놓았다면 지상파 방송을 볼 길이 없다. 스트리밍으로 보자니 라이브TV는 무료 회원에게 월정액을 지불하는 프리미엄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라고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4.99달러를 결제하고 수퍼볼을 시청하긴 했다. 그렇다면 오스카는 또 어떻게 봐야하나. 지난해 로쿠 채널을 이용해 ABC 뉴스 라이브를 무료 시청할 수 있다길래 이리저리 시도만하다가 결국은 랩탑 화면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TV를 틀고 ABC 채널에 고정시키면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볼 수 있던 시절이 벌써부터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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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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