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자가격리를 나는 세 번째 돌입했다. 첫 번째는 2020년 코로나가 그 해 2월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극심한 여름, 바이러스 덩어리가 잔뜩 묻은 원숭이처럼 한국 땅을 밟았다. 캐리어를 끄는 바퀴 소리만 들려도 집에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처럼 미국에서 온 도둑고양이가 되어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강남구청에서 친히 조그마한 화분과 함께 커다란 가방에 2주 격리 동안 잘 지내라며 마스크며 세정제 등 친절한 격리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두 번째는 작년 2021년 여름이었다. 어김없이 14일 동안 격리를 해야 했고 더욱 치열해진 외국인에 대한 격리 조치가 극에 달한 해였다. 그랬는데 이번엔 정말 코로나에 걸렸다. 걸리리라는 예상은 했었다. 미국인 5명 중 한 명은 오미크론에 걸린다는 통계도 있고 증세가 일반 감기보다 약하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서인지 이왕 걸릴 거면 가장 약한 바이러스에 걸리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얄팍하고도 기묘한 생각을 했더랬다.
어느 날 어떤 미국 남자가 천으로 만든 마스크를 어설프게 쓰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내가 운영하는 샵으로 들어왔다. 거의 ‘금남의 집’ 수준의 뷰틱 샵에 웬 남정네가, 그것도 미국 성조기가 그려진 작은 천 조각 마스크를 쓴 사내가 들어오니 살짝 당황스러워 순간적으로 약간의 방어를 하며 인사를 했다. 그가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와서 “화재가 났을 때 사용하는 소화기가 어디 있냐?”며 내 혼을 쏙 빼놓았을 그 순간에 난 느꼈다. 코로나에 노출이 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다음 날 아침 목이 살짝 따끔했다. 곧바로 코로나 자가테스트를 했다. 아뿔싸!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왔다. 따끔했던 목은 괜찮았지만, 꼭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코가 맹맹했다.
콧물이 나는 것도 아니고 기침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코만 막힌 듯한 느낌이었다. 그저 타이레놀 두 알씩 하루에 세 번 식사 후에 복용했다. 의사를 만난 것도 아니고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을 아는 정부 요인이 없으니 한마디로 미국 질병 통계에 숫자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도 나 같은 무증상이면서 셀프 격리자를 모두 통계에 넣으면 확진자 수는 어마어마 할 것이다.
그날부터 10일 동안 난 아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일단 공부를 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아프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나 자신은 무증상이지만 아이는 심하게 아플 수 있으니 완벽한 자가격리가 필요했다. 바이러스가 잔뜩 묻은 좀비가 되었으니 그 손으로 음식을 할 수도 없고 빨래를 할 수도 없고 가족들은 그저 나를 공포의 바이러스 덩어리로 취급했다. 내려다 주는 밥을 먹고 전화로 근황을 이야기했다. 같은 집이지만 다른 층에 사는 사람처럼 대했다.
공식적인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있는 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간, 내 업무 시간 같은 것인데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빼면 누구도 터치할 수 없다는 일종의 면죄부 같은 시간이라 가끔은 좋을 때가 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이런 황금기를 언제 다시 맞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타이레놀을 시간제로 먹고 있어서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약간의 공포가 있었다. 나 또한 폐 질환이 있었던 기저 질환자라 폐에 치명적인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용에 아주 편한 상태는 아니었기에 살짝은 긴장 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과도한 TV 시청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책도 집중이 되지 않았고 우울감에 빠졌다. 매일 쳇바퀴 도는 생활에 이골이 났다고 골을 내고, 갱년기라 힘들다 하고,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대고 했던 모든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열흘 만에 세상에 나갔다. 말이 열흘이지 참 힘든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두 번의 격리는 아프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지만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수다 삼매경이라는 맛난 양념이 있었기에 힘들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바이러스가 침투한 조금은 혼미한 상태에서 그것도 혼자서만 지하에 갇힌 생활을 하다 보니 사람이 아무 일 없이 하루 24시간을 산다는 건 자아 성찰의 도를 넘어 지나치게 우울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발적인 주체적 삶과 강제성을 띤 제한적인 삶은 하늘과 땅 차이임을 느꼈다.
3년째 접어든 코로나라는 자연적인 재앙을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도리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았다. 감기나 에이즈나 그리고 대머리 치료제를 아직도 개발하지 못한 것처럼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인지한 시점에서 마스크 쓰기와 백신 접종이 강제가 아닌 꼭 필요한 사람만 실행해야 한다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독감 주사가 강제가 아니듯 말이다.
그래도 이미 코로나에 걸린 한 사람으로서 내 몸에 이미 코로나 항체가 생긴 걸 축하하고 싶다. 일하며 자유롭게 행동하는 즐거움을 이제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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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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