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클스, 2차대전 이후 ‘연준 독립’ 기틀…볼커, 금리 20%까지 올려 인플레 잡고 그린스펀은 ‘최종 대부자’ 역할 첫 구현
▶ 버냉키,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적극
옐런, 9년 만에 금리 올리며 출구 마련…파월, 코로나 위기 속 인플레 대응 주목
파월 대처 통해 본 ‘연준 의장의 두 얼굴’
중앙은행은 현대 자본주의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중앙은행은 경제활동에 적용되는 기준금리를 결정하고 경제에서 유통되는 총량적인 유동성의 양을 통제하는 역할도 한다. 경기가 나쁘거나 심각한 위기가 생기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추거나 유동성 공급을 늘린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상식이지만 이런 상식이 현실에 적용되기 시작한 지는 불과 100여 년에 불과하다.
금리는 돈의 가치에 다름 아니다. 돈에 대한 수요가 늘면 금리는 상승하고 공급이 늘면 금리는 하락한다. 금리를 결정하는 힘은 크게 두 가지이다. 경기와 리스크 프리미엄이 그것인데, 두 요인은 금리에 상반된 영향을 미친다. 경기 둔화는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켜 돈의 수요의 관점에서 금리를 떨어뜨리는 요인이지만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 입장에서는 금리를 높이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무래도 경기가 나쁘면 빌려준 돈을 떼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기보다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금리에 더 큰 영향을 줘왔다. 금리에 대한 문헌 기록은 BC 3000년 바빌로니아 때부터 남아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왕조나 공화정이 붕괴될 때 금리가 급등했다. 바빌로니아는 물론 그리스와 로마 시대가 모두 그랬다.
연준, 재무부 산하서 독립적 중앙은행 도약권력이 쇠할 때 경제가 융성했을 리는 없으니, 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금리가 상승했다고 볼 수는 없다. 세상이 어수선해지면서 채무 불이행 리스크가 커지니 돈을 빌려줄 여유가 있는 자산가들이 금리를 높게 책정했다는 해석이 합당할 것이다. 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게 아니라 채권자들의 욕심으로 돈의 공급이 줄어 금리가 급등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는 현대 경제학의 상식에 반하는 일이다. 경기가 나쁠 때 금리가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과거에는 경기 침체가 수십 년간 지속되기도 했다.
중앙은행이 등장하면서 경기가 나쁠 때 오히려 금리가 상승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졌다. 중앙은행을 ‘경제의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라고 부르는데, 경제 위기 국면에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혼란은 조기에 수습될 수 있었고 경기 침체의 기간도 줄일 수 있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1913년에 설립됐다.
100년이 조금 넘는 연준의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중앙은행의 수장들이 있었는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연준 의장을 지냈던 매리너 에클스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연준 의장으로 발탁된 에클스는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중앙은행의 위상을 정립했다. 연준은 설립 이후 미국 재무부 하위 기관의 위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연준은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했고 정부가 지정한 군납 업체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대출을 해줘야 했다. 전시 때야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재무부의 압박이 이어지자 에클스는 반기를 들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부르는 행정부의 정책에 저항했고, 이는 연준의 독립성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현재 워싱턴DC에 있는 연준 이사회 건물은 ‘에클스빌딩’으로 명명돼 있다.
폴 볼커도 연준의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볼커는 미국 경제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신음하던 1979년에 연준 의장으로 지명됐다. 두 자릿수의 물가 상승률이 고착화됐던 시기에 폴커는 미국의 기준금리 격인 연방기금금리를 20%까지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했다. 금리를 급격히 올리자 경기는 곤두박질쳤다. 기업들은 고금리에 죽겠다고 아우성쳤고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워싱턴DC의 연준 이사회 건물로 몰려와 시위를 했다. 2m 키의 거대한 볼커는 이런 대중의 불만에 뚝심 있게 대응하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꺾어 1980~1990년대 미국 경제 장기 호황의 초석을 놓는 데 성공했다.
‘인플레 파이터’ 볼커…‘시장 만능주의’ 그린스펀앨런 그린스펀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에클스와 볼커가 남긴 유산 위에서 주가를 높인 인물이었다. 볼커에 이어 1987년 연준 의장에 오른 그린스펀은 ‘최종 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의 역할을 최초로 구현했다. 대공황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는 심각한 경제 위기라고 부를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시대가 열리면서 시장의 자율성은 존중됐지만 경제 위기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린스펀이 취임하자마자 맞닥뜨린 위기는 블랙먼데이였다. 1987년 10월 19일 다우지수는 하루 동안 22.6% 급락했다. 대공황 때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전무후무한 하락률이었다. 미국 증시의 폭락이 프로그램 매도에 따른 기술적 요인이 컸다고 판단한 그린스펀은 파격적인 금리 인하를 실시한다. 그린스펀이 세 번의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연방기금금리는 7.25%에서 6.5%까지 낮아졌고 금융시장의 패닉은 조기에 진화됐다.
1998년 헤지펀드 LTCM 파산 직후와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직후에도 그린스펀은 시장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전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해 시장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명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추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규제 완화로 상징되는 시장 만능주의가 불러온 참사로 평가할 수 있는데 그린스펀 스스로가 시장의 힘을 맹신한 시장 원리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후 하원 청문회에 소환된 그린스펀은 이 자리에서 “민간 기업의 이기적 동기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저의 믿음은 크게 잘못됐다”는 소회를 밝혔다.
금융위기 넘긴 버냉키·옐런…인플레 닥친 파월금융위기가 터졌던 시기에 연준의 수장이 벤 버냉키였다는 점은 글로벌 경제에 천운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로 평가받는데, 버냉키가 대공황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학자였기 때문이다. 버냉키는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시장의 예상보다 한발 더 나아간 정책만이 패닉을 잠재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글로벌 경제를 건져낼 수 있었다.
양적 완화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신흥국의 긴축 발작을 불러온 2013년 5월의 소위 ‘버냉키 탠트럼’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버냉키는 큰 대과 없이 8년의 임기를 마쳤다.
후임 연준 의장인 재닛 옐런은 버냉키와 비슷한 성향의 경제학자였다. 옐런은 양적 완화의 종결과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출구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볼커 이후 연준 의장은 연임되는 게 관례였지만 2017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깐깐한 경제학자이자 민주당원인 옐런 대신 월가의 사모펀드에서 일했던 공화당원 제롬 파월을 신임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다. 파월은 기준금리를 더 파격적으로 인하하라는 트럼프의 트윗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무난히 연준 의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파월은 미중 무역 분쟁이 한창이던 2019년에 ‘보험용 금리 인하’로 이름 붙인 금융 완화 정책을 써 자본시장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규모가 큰 파격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펴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립된 위기 대응 매뉴얼을 충실히 적용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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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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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아니 좀더 정확히는 서브프라임사태랑 지금은 전혀 다른 양상인데 같은 방법론으로 2020년 판데믹이후 양적완화를 함으로 지금 이지경 된거... 한국에서는 전혀 감이 안오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립된 위기대응 메뉴얼을 충실히 적용한 결과..... 인플레이션 안드로메다행일쎄.. 이 뭣도 모르는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