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년째 밸런타인 데이 챙겨주는 배승유^배수자 부부
2012년 파타고니아 빙하 앞에 선 배승유·배수자 부부
2월14일은 사랑의 밸런타인 데이(Valentine’s Day)이다. 젊은이들조차 무심코 지나쳐 가는 이 날을 미국에 이민 온 1977년부터 지금까지 45년째 한 번도 빠짐없이 서로가 챙겨주는 부부가 있다. 의 좋기로 소문난 이들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본다.
▶ 7년간 쉬는 날없이 일해 일찍 기반잡아
▶ 세계여행 하며 노후생활 즐겨… 120여개국 여행
▶ 뉴욕한인회 이사장 등 한인사회 봉사활동도 열심
▶ 옛 이야기 나누며 모닝커피 할때 가장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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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내게 잭팟이야. ”
부부의 아침은 소박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남편 배승유(79)씨는 아내 배수자(72)씨를 위해 커피를 내린다. 몸치장도 미루면서 부부는 롱아일랜드 북쪽, 대서양이 내려 보이는 거실 창가에서 모닝커피의 향을 즐기고 있다.
아이들 키울 때, 비즈니스 할 때 등 지난 옛 이야기와 앞으로 있을 법한 사소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이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1974년 결혼하여 결혼생활 48년째인 이 황혼의 부부는 아직도 ‘당신이 최고’ 라고 대놓고 서로 추어주고 있다.
배승유씨는 이민 오자마자 처음 시작한 편의점에서 생소한 밸런타인 데이 라는 날을 알게 되었단다. 빨강 하트 모양의 화려한 상품들이 쇼윈도에 어마어마하게 진열된 것을 보고 처음엔 좀약 뭉치인 줄 알았단다.
그것들이 초콜릿이었고, 밸런타인 데이라는 명절이 있다는 말도 그때 처음 들어보았다. 그후부터 아내를 위한 밸런타인 데이를 꼭 챙겨 오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빨간 초콜릿을 준비해 두었다고 말한다. 낮에는 초콜릿 선물로 환심을 사고 저녁에는 예약한 미국 식당에서 장미꽃과 카드로 아내의 사기를 돋군다.
“가끔 남편이 바쁠 때는 미리 내 마음에 드는 예쁜 카드를 사다가 남편에게 준다. 그러면 남편은 못 이기는 척 간지러운 사랑의 말을 써 되돌려 준다.”고 하는 아내 배수자씨, 그 카드 읽는 기쁨이 크다.
“당신은 내게 대박, 잭팟이야. 그래서 복권을 살 필요가 없지, 당신 같은 여자는 천국에서도 못 찾아. 당신보다 더 예쁜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 이것이 그의 입버릇이라 한다.
2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온가족들이 모여 남편의 푸짐한 생일잔치를 열어 주었다. 이 날 아내는 ‘남편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 (2019년 한국일보 독자문예난 게재)를 읽었다.
“ 당신은 나의 주치의, 정원사, 운전기사, 강태공, 농사꾼, 친구, 영어 과외선생님. 항상 내 기를 살려주며 경청해 주는, 자주 써 빛바랜 나의 유머에도 번번이 새롭게 웃어주는 얼간이, 알콩달콩 사는 비결을 아는 남자… 한창 경쟁 속 사업에 열중할 때 가장으로의 책임감과 사명 때문에 속으로 울고 있는 남편을 지켜보자면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필요를 느껴가고 있는, 이제는 늙어 힘이 부치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워요. 항상 예쁜 꽃 수 놓으며 여생을 지금처럼 살고 싶습니다.”
9남매 맏이인 배승유씨 가족들은 이 편지 낭송을 들으며 파티장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배수자씨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링컨 대통령도 세종대왕도 아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시어머니 이창순 권사다. 시어머니를 지극히 추앙하는 이런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남편은 없다. 시어머님과 함께 산 15년간 고부간 갈등은 커녕, 시어머님은 며느리를 하나님 다음 순서로 아껴 주셨다.
■ 7년간 365일 생업에 종사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배수자씨, 서울의 한 중고등학교 영어선생인 배승유씨는 친구 소개로 맞선을 보았다. 첫눈에 반한 노총각은 매일 저녁마다 병원 정문에서 기다렸고 1월 만남, 3월 약혼, 5월에 초스피드로 결혼을 했다.
영어 전공을 하다 보니 자연 해외에 대한 견식이 많았다. 미국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드디어 부부는 취업이민으로 1977년 뉴욕으로 와 정착하게 되었다. 한인이민 물결이 쏟아지던 1970년 너도나도 생소한 소규모 자영업을 시작하던 시대였다. 가발, 청과상, 주얼리, 세탁소, 그중 편의점 (문방구)은 인기업종이었다.
배승유씨는 브롱스170가의 편의점에서 1년간 일을 익힌 후 브루를린 펜실베니아 애비뉴에서 직접 편의점을 경영했다. 당시 아내는 간호사로 취직해 2년간 일하다가 남편의 가게로 합류했다. 이어서 아내는 약국을 열어 독립해 나갔고 부부는 7년간 365일 쉬는 날 없이 일했다. 그러다 보니 남보다 일찌감치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
당시는 왜 그리 바쁘게 살았는지 모른다. 젊어서 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했다 한다. 한국에 두고 온 1살짜리 아들이 만4살이 되어서야 꼬리표 붙여 뉴욕으로 데려왔고, 둘째 딸은 근무지 병원에서 공짜로 낳았다.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부부는 ‘이제는 너 자신을 대접하라’는데 의기투합했다. 당시 한인업소 거의가 주7일 24시간 영업을 했고 하루 쉰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때였다. 부부는 겁 없이 업소 문에 ‘Vacation’이라고 싸인을 써붙이고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세계여행은 현재까지 120여개국을 여행했다. 겨울에는 3~4번의 해외 골프여행도 다녀온다.
배수자씨는 2004년 세계일주 여행기를 한국일보 레저면에 연재하기도 했다. 부부는 일할 줄도 알고 놀 줄도 알다 보니 당연히 스트레스도 없다. 그렇다고 자신들만 위해 산 것은 아니다.
■ 이민초창기 봉사활동
브루클린 지역에서 약국을 할 때 이스트 뉴욕 상인번영회를 창립했다. 27명 회원 중 26명이 미국인이고 한인은 배승유씨 혼자로 초대 회장을 했다. 이것이 모태가 되어 1983년 브루클린한인회 창립에 힘을 보탰다.
배승유씨는 동포사회 단합과 한인 권익을 위해 뉴욕한인회에도 참여했다. 이사로 활동하다가 1988~1990년 제20대 이문성 회장 당시 부이사장. 1995~1997년 제24대 이정화 한인회장 당시 이사장으로 봉사했다.
1993년 청소년재단 초대 이사장, 2002년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서 충청도민회 제2대회장, 2002년 월드컵 뉴욕후원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아내 배수자씨도 2011년 제32대 한창연회장 당시 한인회 부회장, 2016년 한국외대 원우회 EMBA11기 회장도 역임한 바 있다.
배승유씨는 1983년부터 1990년 사이에는 이사장만 3~4개 직함을 맡아 정신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도 브루클린 플랫부시 지역에 건물을 구입하여 가구점 ‘IMPORT’를 열었다. 그가 미국에 한국산 비데를 처음 소개한 장본인이다.
10년간 가구점을 하면서 부부는 “이렇게 사는 게 다는 아니다, 일찍 은퇴를 하고 우리 시간을 갖자.”는 마음이 들었다. 1999년 은퇴를 하고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현재 배수자씨는 ‘해바라기,’‘ 울타리’, ‘카타로니아’ 등 골프동우회를 이끌며 회장이자 큰언니로써 수십년간 친목을 다져 오고 있다.
골프는 보기 게임 정도로만 만족한단다.
배승유·배수자 슬하에 1남1녀와 손자 둘을 두었다. 아들은 시카고에서 의사로 딸은 통계학 박사로 애널리스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간 꼼짝 않고 집에 있던 부부가 여행을 다시 시작한 것은 작년11월 남태평양의 진주 타히티, 보라보라 섬이다.
2021년 보라 보라 비행장에서. 신혼여행을 다시 떠났다.
“가난하던 시절이라 신혼여행을 제대로 못했다. 교사 월급날이 25일. 다음날인 26일 월급봉투를 들고 단양8경을 보러갔으나 돈이 떨어져 2경밖에 못보고 온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단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신혼여행을 갔다. 그곳엔 우리 밖에 없는 에덴동산이었다.”고 말하는 부부다. 이들은 벌써 겨울 동안 도미니카, 푼타 카나로 3번의 골프여행을 다녀왔다.
부부가 반백년을 함께 살아오자면 언제나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떠올리면 가슴 아팠던 날이 있다.
“미국 행 비행기를 타면서 한 살 반 된 아들을 한국에 두고 왔다. 온 종일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너무 울어 눈이 부어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부부는 현재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뒷마당 돌담 너머로 낚싯대를 던지면 딸려오는 생선들, 그 자리에서 회를 쳐서 친구들과 먹는 즐거움이 크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김치를 담글 때면 배추를 씻고, 무를 채 썰고 부엌바닥도 닦아주는 남편 배승유씨. 각종 기념일마다 사랑의 꽃과 카드를 48년째 빠짐없이 선물하니 그야말로 한인사회 최고의 로맨티스트다.
‘모든 면에 넉넉한 서방님을 만나 속 안썩고 편하게 살게 해주니 고맙다’는 아내 배수자씨. ‘ 다 할 수 있지만, 연약한 여자처럼 병마개를 열어 달라, 벌레를 잡아달라고 일부러 어리광을 한다.’고, 또 평생 잉꼬부부의 비결은 서로간의 ‘터치(touch)’라고 살짝 공개한다.
1974년 신혼여행지 단양팔경에서.
■ 남편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 ‘소꿉장난’
너는 아빠 해. 난 엄마 할께, 오늘은 무슨 놀이를 하며 놀까? 물놀이하면서 강태공이 되어볼까? 텃밭에 나가 농부가 되어볼까? 아니, 부엌에서 주모가 되어 막걸리를 걸러올까. 소꿉장난하며 놀 것이 너무 많다.
자식들이 다 자라 떠나니 우린 빈 둥지를 지키며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 서방님은 아빠 되어 엄마가 된 나와 집에서 소꿉장난할 때가 제일 행복하단다.
서로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젊은 날, 아이들 키울 때 얘기도 좋고, 친구들 만나 얘기꽃을 피우던 때도 좋고, 우리 건강할 때 건강 지켜가며 좋은 음식 만들어 서로 골라 먹이는 모습은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
역시 부부가 최고라는 것, 자식은 기를 때의 재미. 나중까지 남는 건 역시 배우자밖에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때 잘 해”. ‘후회하지 말고” 서로 기대며 끈끈한 정으로 취미를 즐기며 사는 것이 황혼의 최고 행복이라 여겨진다. 자~오늘은 무슨 소꿉장난을
하고 놀까?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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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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