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한인들에게 낯선 내셔널 풋볼 리그(National Football League·NFL)의 프로 미식축구, 즉 풋볼을 무척 사랑한다. 처음 좋아했던 팀은 덴버 브롱코스다. 미국에 이민 온 1984년부터 1989년까지 5년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살았던 인연 덕분이다. 처음 1년 가량은 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재미없었던 이 스포츠가 어느 순간부터 일요일 붙박이 관전 종목이 됐다. 이후 경기가 벌어지는 마일하이 스테디엄을 찾아 ‘덴버 브롱코스’를 외치게 됐다.
1989년 남가주로 옮겨왔을 때 LA에는 아메리칸 컨퍼런스(AFC) 소속 레이더스와 내셔널 컨퍼런스(NFC)의 램스, 두 팀이 있었지만 덴버의 경기를 더 즐겨봤다. 그러나 LA에 살다보니 LA에 연고를 둔 팀에 더 관심을 갖게됐고 1994년 시즌에는 LA 레이더스와 LA 램스의 일요일 풋볼 경기를 LA 메모리얼 콜로시엄 경기장을 찾아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팀은 1994년 시즌 직후 재정 문제로 북가주 오클랜드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로 한꺼번에 이전해버렸다. 선택권이 사라진 LA 풋볼 팬들은 졸지에 오클랜드 레이더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샌디에고 차저스 등 인근 팀을 응원하는 것으로 설움을 달래야 했다.
20년이 넘는 공백 끝에 지난 2016년 세인트루이스 램스, 2017년 샌디에고 차저스가 나란히 LA로 복귀하며 얼어붙었던 LA의 풋볼 열기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2020년 풋볼시즌에 맞춰 램스-차저스의 새 홈구장 소파이 스테디엄이 완공됐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극성을 부리며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다. 그렇지만 언젠가 이곳을 찾아 두 팀의 경기를 응원하고 싶었다. 마침내 지난달 30일 어느 덧 30줄을 바라보는 아들과 소파이 스테디엄을 찾아 LA 램스-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캘리포니아 시리즈’(NFC 결승)를 보며 소원을 풀었다. 맨 꼭대기 층이지만 상당히 비싼 입장료를 냈다. 그러나 램스가 천신만고 끝에 20-17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수퍼보울에 진출, 경기를 지켜 본 보람이 컸다.
엄청난 바가지 주차료 때문에 가디나의 버스 정류장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잉글우드의 소파이 구장까지 40분 이상 걸려 도착했다.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백신 접종카드를 보여주고 입장해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봐야하는 고충이 컸지만 플레이오프 명승부는 고된 일정을 보상시키고도 남았다. 램스는 시즌 개막전 전문가들로부터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도 성공’이라며 과소평가 됐지만 13일 안방인 소파이 스테디엄에서 신시내티 벵갈스를 상대로 56회 수퍼보울 결전에 나서게 됐다.
1999년 시즌에 세인트루이스 연고팀으로 첫 수퍼보울 우승을 차지했던 램스는 이번에 LA 소속으로 첫 번째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노린다. 램스는 3년전 53회 대회 당시에는 명쿼터백 톰 브레이디가 이끄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13-3으로 완패, LA 연고지로 36년만에 트로피를 가져오는데 실패했다. 램스는 지난해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에 이어 수퍼보울 사상 두번째로 홈구장 소파이 스테디엄에서 결승전을 갖는다. 램스는 사실 이번 수퍼보울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베테런 쿼터백 매튜 스태포드,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와이드리시버 오델 베컴 주니어, 덴버 브롱코스의 라인배커 본 밀러를 대거 영입하며 공수 양면을 보강했다. 기존의 디펜시브 태클 애런 도널드, 와이드리시버 쿠퍼 컵과 같은 올스타급 스타들도 건재하며 도박사와 전문가들은 홈팀 램스의 4점차 우세를 예상하고 있다.
램스의 수퍼보울 진출은 또 로컬 팬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번 경기가 LA 인근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는 4억7,75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미국내 시청자만 1억명을 넘나드는 수퍼보울은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 가운데 하나로 시청률도 50%에 육박하는 최고의 홍보 효과를 자랑한다.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 기아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대기업 62곳이 3시간짜리 단판승부를 위한 새로운 광고를 따로 제작했다.
임인년 수퍼보울은 전국적으로 팬데믹 이후 파티, 공연, 각종 모임이 연결되는 주요 스포츠 행사로 코로나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즐길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2년이 넘게 코로나19 사태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국인들은 수퍼보울 경기와 해프타임 쇼를 통해 가족, 친지,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기회를 맞았다. 램스가 13일 ‘수퍼 선데이’에 수퍼보울 트로피를 들어올려 LA 한인사회에서도 풋볼 붐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Let’s go, R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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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특집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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