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년초에는 연례행사처럼 바닷가를 다녀오곤 한다. 올해도 새해 벽두에 샌프란시스코 바닷가를 찾았다. 금문교 너머로 확 띄인 태평양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여러 세상사및 영적 일들로 실타래처럼 얼키고 설킨 가슴이 한결 시원해지며 한해 무언가 바람직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설렘과 기대감이 생겨서이다. 헌데 그 이상으로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옛말처럼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인생과 삶의 지혜를 듣고 얻기 위해서이다. 바다는 찾아갈 때마다 꾸짖음과 교훈의 음성을 동시에 들려준다. 별것 아닌 일에 제발 속좁고 편협하게 대응하지 말라고 꾸짖는다. 또한 자신과 다른 이들을 포용하고 인정하고 그들과 화평하라고 담백하게 일러준다.
바다는 흘러 들어오는 모든 물들을 차별내지 선별하지 않는다. 그들과 다투거나 배척하지도 않는다. 바다는 산과 강, 호수등 어디서 오건 오는 물들을 모두 받아 준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도 품어준다. 바다는 물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 깨끗한 물, 진흙탕 물, 눈 녹은 물, 이슬, 산성 비등 모두를 담는다. 바다는 늘 넉넉하고 관대하다. 자녀의 모든 것을 받아 주는 어머니 품과 같다.
기독자들이 이런 바다의 정신을 배우고 지녔으면 좋겠다. 자신과 삶의 모습이 다른 이들을 품고 인정하며 그들과 공존하는 화평정신 말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권한다(히12:14). 모든 사람이란 신앙인만이 아니라 불신앙인도 의미한다. 문화인과 미개인 모두를 뜻한다. 우리들이 서로 화평해야 할 이유는 우리 아버지가 화평의 하나님이므로(고전14:33) 우리가 서로 화평해야만 하나님을 닮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이다(마5:9). 또한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도 화평의 복음(행10:36)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본질적인 문제와 비본질적인 문제이다. 본질적 문제라 함은 진리, 즉 옳고 그름의 문제이고 비본질적 문제라 함은 다름, 즉 부수적인 문제이다. 우리들은 죄와 마귀에 맞써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절대 진리와 생명에 관해선 타협하지 말고 죽을 힘 다해 대항하여 그것들을 수호해야 한다. 이유는 그것이 본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비본질적며 부수적인 일에 관해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용납해야 한다. 만약 다름을 틀림, 그릇됨으로 여기고 배척한다면 자신의 곁에 머물 자는 하나도 없다. 우리 모두는 어느 면에서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에서 교인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점심식사에 국수가 나왔는데 전라도출신 교인이 그것을 국시라 했고 이에 서울출신인 다른 교인이 왜 국수를 국시라 하느냐고 따지면서 큰 논쟁으로 번졌다.
위대한 신학자인 어거스틴이 인용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본질적인 문제에는 하나됨을, 비본질적인 문제에는 자유함을, 그리고 모든 문제에는 넉넉한 사랑을 (In essentials, unity; in non-essentials, liberty; and in all things, charity.)" 요한 웨슬리는 교회의 일치를 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했다. ‘먼저 교회가 모든 교회내 문제들을 본질적인 것과 비 본질적인 것을 구별하고, 그 다음에 비본질적인 문제들이 교회 공동체가 추구하는 믿음의 본질을 흐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절대진리에 반대하지 않는 누군가를 인정하고 포용하면 다투고 논쟁할 일이 줄어들고 삶의 터전이 점차 안연하고 평온해진다. 종내는 품어주는 사람도 품음을 받는 사람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행복의 꽃이 활짝 핀다.
바다가 다른 물들을 품는다고 염분기가 덜해지거나 사라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용납한다해서 기독자로서의 본질과 정체성이 사라지진 않는다. 오히려 주 안에서 서로를 품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기독자의 목표인 거룩의 한 양상이다. 주님께서는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비본질적인 문제로 다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넓은 의미에서 다 형제이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다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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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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