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는 오래되어 장구한데, 흰토끼 붉은 까마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사람들은 한해가 또 갔다고 한다. 해는 가고 오지도, 뜨고 지지도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정해진 세상 속에서, 그냥 익숙해져서, 맞거니, 회의 없이 살고 있다. 문명을 접하고 있는 한, 올 달력에 남은 날짜가 없으면, 한해가 갔다, 혹은 끝났다고, 당연시 여기며 산다. 마치 달력 없던 세상은 존재 하지 않았던 듯이,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다. 해를 해라고 부르는 세상에서도, 쏠레히, 썬, 존이라고 부르는, 이 전혀 다른 세상에서도, 똑같이, 올 한 해는 갔고, 혹은 끝났다. 한국처럼 갔다,라고 하는 곳도 있고, 여기 미국처럼 엔드라고 하는 곳도 있어서, 한쪽선 타종소리를 들으며 '송년의식'을 하고, 한쪽에선 불꽃을 터뜨리며, '이어 엔드 파티' 를 한다. 사실, 이상하게 보기로 하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지구가 한번 공전한 걸 축하하는 것인가 ? 누가 정한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정해진 대로, 따르며 살기로 하고 있다. '한 달'이 29, 30, 31일로 다 다른데도, 그걸 '한 달'이란 단위로 똑같이 부르는 것도 사실 이상하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보름달이 뜨고 지고, 오차가 어떻고, 그래서 윤달을 넣고, 그레고리오가 어떻고, 배운 지식을 다 가져다 넣는다 해도, 달력은 우주의 천체 운행과 변화를 정확히 담지도, 가르키지도 못한다. 완,벽,한 게 아니다. 많이 허술하다. 달력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는 이는 이미 알 것이다. 달력이 가르키는 날이, 이를테면 해마다 당신의 생일이 똑 같지 않다는 것을. 가령, 윤달이 오지 않으면 생일 자체가 없어지기도 하고, 윤달이 있는 그 이후의 당신 생일은 날짜는 같아도, 전과 비교해서 하루 뒤의 날이 된다. 같은 날이 아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당신이 태어난 그날은 단 한번도 달력과 같은 적이 없다. 당연히 해마다 달력은 1일로 시작하지만, 작년 1일과 똑같은 환경이 아니다. 지구가 작년 그날, 그해, 그 자리에 딱 맞게 있는 게 아니다. 이처럼 달력과 세상만물의 움직임 사이엔 늘 오차가 있다. 당연하다. 흐르고 변하는 것을 고정, 해서 표기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틀린 것이다. 바람 위에 그림을 그리려는 것과 다름 없다. 마찬가지로 삶도 그냥, 이를테면 해와 달처럼, 반복해서 오르내릴 뿐이다. 이 수없이 오르내림이 반복 되는 동안, 삶이 지속되며 변화한다. 해와 달이 번갈아 오르내리는 것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삶 또한, 어디로 가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또한, 오른 것은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혹자가 오르고 있으면, 혹자는 가라앉을 때가 있다. 해가 바뀌면, 당연히 가라앉았던 이 오르고, 올랐던 이 가라앉는 변화가 있고, 당신의 인생에도 변화가 있을 거, 또한 당연하다. 기쁘지만은 않을 것이고, 울 날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달이 차오르면 그믐이 머지 않았듯이, 어둠이 깊고 깊으면 새벽이 머지 않았듯이, 삶도 그러하다. 달과 해 뜨고 지는 것을 보고, 봤구나, 하는 것이 인생 전부다. 보고 있는 그 순간이 그래서 중요하다. 현재 보고 있는, 그것이 다 이기 때문이다. 다시 볼 때는 이미 흘러간 뒤다. 보고, 있는 그자리, 그 순간이 당신의 삶 전부이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것을 보고 보았는가, 그것이 개개인의 생이다. 그 각자의 생을 1년 365일이란 똑 같은 시간 단위로 표기할 수 없다. 아다시피, 정확히 365일도 아니다. 참 이상한 게 이렇게 안 맞는 달력은 굳게 믿으면서도, 당신이 아는 그 세상은 없다,는 진리는 안 믿는다. 생이 있고, 끝이 있다고 믿으면, 끝날 때 슬프게, 그리 사는 것이고, 금오옥토 오르내리는 일처럼 그렇게 오르고 내릴 뿐, 가고 오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면 그저 덤덤히, 생이거나 사이거나, 허허탕탕 사는 것이다. 오고 가지 않음을 자꾸 말하는 것은, 없다는 얘기해서 당신 김빼잔 게 아니라, 당신이 걸림없이 자유롭게 바림처럼 살기를 바란, 부처님의 지중한 가르침을 바로 알아, 행복해지자는 것이다. 가는 해, 오는 해, 끝나는 해, 다 문자에 맡겨 두고, 오고감에 부산 없이, 유난 없이, 여여하기를, 오르고 내림과 희비에 걸림없이, 오늘, 편안하기를, 진심을 담아 축원한다.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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